정규직만큼 일 시킬거면 정규직만큼 돈을 주세요

#21 대기업 파견직, 외국계로 도망가다

by 신재

타칭 파견 계약직, 자칭 알바의 신분으로 훌쩍 10개월이 흘렀다. 어라,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편하게 일하며 적당한 돈을 받고, 칼퇴 후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주말에는 열심히 놀러 다니고… 그야말로 탱자탱자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마음 잡고 글공부를 하는 것도, 경력이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 회사 사람들도 일도 너무 편해졌으니 계약 기간인 2년을 꽉 채울까, 혹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기회 자체도 거의 없지만, 만에 하나 운이 좋아 된다 하더라도 공채 정규직과는 여전히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복지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연봉도 고작 몇 백 오르는 수준이라는 얘기를 듣고 환멸이 났다.


그 회사의 정규직은 최소 서울 중상위권 이상 4년제 대학 졸업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당연히 그중 똑똑하고 멋진 사람들도 많았지만 저 사람이 정말 그 대학을 나왔다고? 면접은 어떻게 통과했지? 싶을 정도로 헛똑똑이인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걸 보면 공부 머리와 일 머리는 늘 일치하지만은 않는 셈인데, 단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면접 볼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냉정한 현실이 서러웠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고착된 학벌주의가 눈물겹게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당당하게 어느 대학을 나왔다고 말하고, 캠퍼스와 축제 이야기로 유대감을 쌓고, 촘촘한 그물망 같은 그 거대한 네트워크의 충실한 구성원으로서 학연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 나는 그토록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이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열등감에 시달렸다. 아무리 남다른 게 좋아도 대학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무난한 국립대라도 갈 걸. 하향 지원이어도 서울에 오기라도 할 걸. 수능이 너무나 무서웠던 열아홉 살의 나를 부단히 원망했다. 대학과 행복한 인생 사이에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건 잘 알지만, 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언제든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회사를 다니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나에게 바라는 것들도 많아졌다. 물론 내 월급에는 조금의 변동 혹은 변동 가능성조차 없었다.


“이거 재미있지 않니? 왜 이렇게밖에 못 해? 내가 해도 더 잘하겠다. 나랑 일 바꿀래?”

“그러면, 월급도 바꿔 주시나요?


부장님은 당황한 기색으로 허허 웃는다. 사람 좋은 우리 팀 사람들에게 내가 점점 열 받기 시작했던 건, 그들은 계약직의 입장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연봉과 복지는 반 토막이고, 여기서 하는 일들은 죄다 소모적인 것들일 뿐 경력이 될 수조차 없는데, 그나마 2년 써먹고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울 거면서 어떻게 정규직과 같은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일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그게 나를 화나게 했다. 자꾸 니들이 해야 할 일 시킬 거면, 야근시킬 거면 돈 더 줘요. 직원이라고 다 같은 직원이 아닌 건 너희가 더 잘 알잖아요. 차별할 땐 칼 같이 하면서, 이럴 때만 다 같은 가족이래. 그런 말들이 목구멍 끝까지 차 올랐다 깊은 한숨으로 빠져나갔다. 00야, 땅 꺼지겠다 땅 꺼지겠어. 그 소리를 하루에 수십 번쯤 듣게 되었을 때 이직을 결심했다.


정규직의 굴레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파견 계약직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되, 기왕이면 더 돈을 많이 주고 더 복지가 좋은 곳으로 가자. 그러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겠지. 아, 그리고 집에서 더 가까웠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오랜만에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거리순으로 정렬을 하니 집에서 버스 네 정거장 거리의 외국계 회사에서 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오, 외국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돈도 좀 더 주고 복지는 정규직이랑 똑같네? 여기 한 번 써볼까? 그렇게 딱 한 군데 써서 냈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


병원 가야 한다는 핑계로 반차를 쓰고 면접을 봤다. 높은 빌딩 전체를 통으로 사용하는 지금 회사와 달리 그곳은 낡은 빌딩 반 층짜리 규모였지만, 쾌적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편안했다. 직원 수는 50명쯤 될까. 회의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두 명의 면접관이 들어왔는데 시종일관 분위기는 좋았다. 왜 계약직으로 일하려 하냐는 질문에 나는 그냥 솔직히 답했다. 글을 쓰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돈도 벌어야 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계약직을 찾고 있다고. 진실성이 느껴졌는지 다행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신 모양이다. 면접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내가 생각해도 아, 이건 잘 된 면접이다. 하는 확신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며칠 안에 연락 주겠다던 파견 회사에서는 묵묵부답이다. 떨어지더라도 일단 결과는 알려 준 댔는데, 나를 아예 잊으신 건가 싶어 기다리다 못해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온다.


“연락이 늦어져서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사실 그게.. 상황이 조금 복잡해져서..”

붙으면 붙은 거고 떨어지면 떨어진 거지 대체 복잡할 게 뭐가 있을까. 수화기 너머로 바짝 귀를 기울인다.


“무척 마음에 들어하셨는데, 최대한 빨리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셔서요. 그 자리는 다른 분이 채용이 되어서 지금 이미 근무 중이세요. 그런데.. 옆 부서에서도 채용 공고가 나서 그 자리에 추천을 해주셨어요. 혹시, 다른 팀으로 한 번 더 면접 보실 의향 있으신가요?”


내가 처음 면접을 봤던 부서는 회계팀이었고, 새로운 부서는 SCM, 그러니까 생산망 관리 쪽이었는데 거의 처음 접하는 분야나 다름없었다. 내 전공이 무역과 영어 쪽이었던 터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추천 해 주신 모양이었다. 사실 문외한이나 다름없지만 딱히 회계 관련 경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보조 자리인 건 매한가지니까 괜찮겠지 싶어 한 번 더 핑계를 대고 반차를 쓴다.


두 번째 면접은 더 수월할 줄 알았는데 웬걸, 척 보기에도 보통이 아닐 것 같은 여자 면접관 세 분이 들어오신다. 나는 바짝 얼어붙었다. 회계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비슷한 걸 지금 회사에서 해보기라도 했는데 물류나 재고 관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영어 면접에 다다라서는 극에 달했는데, 특이한 대학 생활을 하신 것 같은데 어땠냐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하하.. 모교 욕을 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좋은 말만 늘어놔야 했는데 장점이라고는 평소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횡설수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첫 번째와 달리 내가 생각해도 와, 이건 정말 망했다. 하는 느낌으로 면접은 마무리되었다.




놀랍게도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중에야 전해 들은 거지만 내 당락을 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해외 대학 출신의 고학력자나 경력이 많은 후보도 있었고, 당당히 글 쓰는 게 최우선이라는데 하루아침에 그만두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나왔다고. 그럼에도 내가 뽑힐 수 있었던 건, 회계팀 팀장님의 추천을 비롯해 많은 운이 작용한 덕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우연에 우연을 거쳐 들어가게 된 이 곳은, 내가 가장 오래 다녔으며 또 가장 사랑했던 회사가 된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