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백만 원으로 자취방 환골탈태시키기

#18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셀프 인테리어, 네이버 메인에 오르다

by 신재

대망의 이삿날, 남자친구는 물론이거니와 함양에서 냉장고, 가스레인지, 세탁기를 싣고 온 엄마 아빠까지 총출동했다. 우리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남자친구는 부모님 차가 도착하자마자 저 앞 골목까지 뛰쳐나가 맞이하고 13kg 통돌이 세탁기를 혼자 등에 업어 가며 과한 부지런을 떨어 댄다.


“아버님,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형님이랑 저랑 누가 더 잘생겼나요?"


몇 시간 후의 식사 자리, 고생 많다고 사주신 오리 고기가 잘 넘어가기만 해도 다행이련만 능청을 떠는 여유까지 부린다. 우리 식구들은 그런 천연덕스러움에 면역이 없는 터라 ‘어라, 이 당돌한 놈 좀 보게’ 하는 눈빛을 조용히 주고받는다. 못내 당황했을 게 분명한 아빠는 괜히 허허 웃으며 “아 뭐, 둘 다 다르게 잘생겼지-”, 가장 무난하고 재미없는 답을 내놓는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데 필요한 능력은 뭐가 있을까. 실행력, 기획력, 창의력, 손재주, 섬세함… 앞의 세 개라면 자신 있지만 뒤의 두 가지는 나와 너무나 먼 얘기다. 그런데도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겠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남자친구의 능력치 덕분이었다. 요리하기, 그림 그리기, 조립하기, 수리하기.. 그야말로 손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 뚝딱 잘한다. 그러니 일단 일을 잔뜩 벌려 놓으면, 그야말로 수족이나 다름없는 그가 깔끔한 뒤처리를 해주겠지 싶었던 것이다.


“자기, 생일선물 뭐 받고 싶어?”

“필요 없어. 대신 나 집 인테리어 도와줘!!”

“알았어,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생일 선물로 확실하게 딜까지 마쳤다. 사실 이 집의 처음 모습은 제법 흉측했다. 10평 남짓한 투룸인데도 불구하고 보증금 천에 월세 35라는 저렴한 가격이 납득이 갈 정도로 말이다. 3층짜리 벽돌로 된 낡은 다가구 주택, 철로 된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 2층 현관문이 나온다. 문을 열면 비좁은 현관이 반기고 오른쪽에는 작은 방, 앞 편에는 큰 방, 그 사이에는 화장실이 있는 구조다. 작은 집 안에 방이 두 개나 있다 보니 거실과 부엌은 거의 통로나 다름없다. 평수로 따지면 비슷하지만 구조가 확실히 분리되어 있어 이전 집보다 훨씬 넓은 느낌이 들었다. 보자마자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반면 치명적인 단점은 화장실에 세면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태껏 세면대 없는 집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건만.. 때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처음엔 당연히 세면대도 직접 달 생각이었으나 막상 살아보니 일주일 만에 적응이 돼버린 탓에 예산 목록에서 금세 지워졌다.


가장 끔찍했던 부엌의 비포 vs 애프터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세 가지였다. 체리색 몰딩과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낡은 문짝, 분홍&자주&주황색 세로 줄무늬가 현란한 싱크대, 방마다 무늬가 다 다르고 들어 올리면 시멘트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누런 장판. 몰딩과 문은 무조건 하얀색 페인트로 통일하고, 싱크대는 흰 시트지로 대체, 손잡이도 흰 페인트로 칠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닥은 흰색 계열의 데코타일을 구매해 직접 시공하기로 한다. 여러 옵션이 있겠지만 작은 집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인테리어는 역시 화이트 톤이지 싶다. 집이 훨씬 환하고, 넓어 보이니 말이다.


인테리어 시공 기간은 넉넉하게 한 달로 잡았다. 말로 하니 쉽지만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지옥 같은 한 달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반겨 주는 것은 진한 페인트와 접착제 냄새, 그리고 먼지 묻은 호동이. 문짝은 떨어져 있고 여기저기 비닐이 감싸진 채 짐을 풀지도 못한 박스들은 한 가득. 누군가 도와준다 해도 결국 집주인은 나, 가장 많이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도 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일 저녁도 거른 채 페인트 칠을 하고 바닥을 붙이다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이불 한 장으로 몸을 돌돌 말고 웅크려 잠이 들었다.


안 그래도 좁아터진 집구석에...


나름 열심히 알아봤다 해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게 다이니 실전은 화면 속과 다른 경우도 많았다. 젯소를 칠하고 페인트칠을 했는데도 마르고 나면 누런 나무색이 그대로 올라왔다. 아무리 덧발라도 헛수고. 집 근처 페인트 가게를 돌아다니며 자문을 구하는데 또 사람마다 말이 다 다르다. 결국 시공 일을 하는 남친 친구의 조언에 따라 그라인더로 이제까지 칠한 페인트를 다 갈아버린 다음에 재작업을 해야 했다. 그라인더 소음과 그로 인한 먼지도 엄청났지만 너무 대대적으로 일 벌이는 걸 티를 낸 덕에 주인집으로부터 걱정스러운 잔소리가 돌아왔다. 다행히 그 날 바로 건강 음료를 사 들고 찾아가 약간의 아부를 한 이후로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나중에 완성된 모습을 보고는 아주 흡족해하셨고 말이다.


약속한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공사가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체기에 빠져든 것이다. 남자친구도 큰 소리는 쳤지만 막상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남의 집에서 무보수 노동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전화로 쉴 새 없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마치 현대판 노예가 된 기분이었을지도. 자꾸 이런저런 핑계로 작업은 미뤄졌고 매일 공사 현장에서 잠들어야 하는 나는 짜증이 쌓여갔다. 내 일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왜 해준다고 해놓고 똑바로 마무리를 못해? 하는 불만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둘이 함께 힘을 합쳐 집을 꾸미다 보면 사이도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싸움은 늘어만 갔다. 열 받아 죽겠는데 이대로 헤어지면 마무리는 누가 하나 싶어서 슬쩍 먼저 꼬리를 내린 적도 많았을 것이다.


다행히 두 달이 되기 전에 공사는 그럭저럭 완료되었다. 표를 만들어 정리해 보니 얼추 들어간 돈은 백만 원 정도였다. 옵션이 하나도 없는 집이라 중고 옷장이나 책상 같은 가구 값도 포함되어 있으니, 가성비는 제법 나쁘지 않았다. 이때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되며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여정을 블로그에 기록했었는데, 비포와 애프터를 비교하는 총 결산 게시물이 네이버 메인에 오르기도 했다.


https://deepestgreen.blog.me/220967803598


창고방에서 나만의 멋진 홈바로 변신!


그만큼 결과물은 제법 그럴듯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뿌듯했던 것은 원래 옷방으로 쓰이던 작은 방을 서재 겸 바로 변신시킨 것이었다. 작은 방은 원래 세탁기로 꽉 차 있었는데, 비좁은 욕실에 어떻게든 밀어 넣고 나니 활용할 공간이 생겼다. 그 방의 한쪽 벽은 내 로망이었던 큰 책장으로 가득 채웠다. 드디어 부모님 댁에 쌓여 있던 내 책들을 가져와 맘껏 전시해 놓을 수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와인 선반을 달고 바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그 공간을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는데, 정작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웠던 덕에 많은 활용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불러들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미끼가 되어 주었다.



공이 많이 들어간 만큼 나는 그 집이 참 좋았고 자랑스러웠다. 월세 35, 서울 한복판에 이런 투룸이 있다며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뿐만 아니라 동네도 더없이 마음에 들었는데, 장승배기역 근처 도깨비 시장길을 걷다 보면 꼭 시골 어느 장터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인심도 그랬다. 갓 이사와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돈은 나중에 갖다 달라, 아가씨가 착해서 하나 더 주는 거다-, 들어서는 가게마다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이때의 기억 덕분인지 동작구 상도동은 서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가 되었다. 나름 서울의 중심지라는 울타리 안에 속하면서도 구수한 사람 냄새가 지워지지 않은 곳. 완벽한 중간지대를 찾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변덕이 심한 나로서는 예외적으로, 이 집에서 무려 1년 8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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