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은 이제 그만 안녕

#17 새로운 운명의 집을 찾아 떠나다

by 신재

홀로 자취 생활을 하며 나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나는 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앞서 나는 사람이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시기는 약 3개월이라고 말한 바 있다. 딱 그 3개월이 내게는 가장 흥미롭고, 즐겁고, 열정적인 순간이다. 사람이든 일이든 집이든 일단 적응이 되고 나면 심드렁해지는 것이다. 그 이후의 안정감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에게 보통 그건 평화로움보다는 견딜 수 없는 무료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음 변화를 찾아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연애와 직장이 안정되니 잘 살고 있던 집으로 타깃은 돌아왔다. 벌써 일 년쯤 살았는데, 보증금을 올려도 될 만큼 돈도 모였고 아무도 오기 싫어할 정도로 언덕이 버거운데 집이 넓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는 아무래도 호스트로서의 기질이 있는 모양인지 사람들을 내 공간에 초대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여하튼 이사 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다시 부동산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부지런히 부동산 매물 카페를 들락 거리며 올라오는 모든 게시물을 훑어보았다.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언덕이 아닌 평지에 있을 것

둘째, 뻥 뚫린 원룸이 아닌, 분리된 최소한의 공간이 있을 것

셋째, 셀프 인테리어가 가능할 것


가로로 널찍하기만 한 원룸에 살아보니 크기만큼 중요한 게 공간 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슷한 평수라도 방이 따로 구분되어 있으면 느낌이 확 달랐다. 훨씬 집 다운 집 같달까. 드디어 ‘원룸’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더불어 예쁜 집에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는데, 이제까지는 먹고 자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 ‘나만의 취향’을 주거 공간에 담아내고 싶었다. 물론 처음부터 깔끔하고 예쁜 집에 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에 내 자산은 턱없이 부족했고 호동이가 함께 있는 터라 선택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낡고 저렴한 집에 들어가 내가 직접 뜯어고치겠어!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아직 계약 기간이 1년 넘게 남았으니 급할 건 없었지만, 그저 내 마음이 급했다.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처음엔 대궐 같던 청파동 집구석이 그렇게 구질구질해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 부동산 거래 카페에 올리니 생각보다 연락이 많이 왔다. 그중에는 언덕을 올라오다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집이 워낙 큼직한 데다 저렴하고, 또 내가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 덕에 금세 다음 입주자를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들어갈 집이었다.


회사에서 새로고침을 하며 새 매물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게 하루의 주요 업무였다. 그러다 괜찮은 집을 발견하면 바로 연락해 그날 저녁에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매일 퇴근 후 밤이 어둑해질 때까지 부동산을 순회하는 나날들이 몇 주 동안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사진 몇 장과 설명 몇 줄만 보고도 어떤 집일지 제법 선명하게 감이 잡혔다. 그러다 그 집을 발견한 것이다. 마당 있는 주택에 저렴한 월세, 널찍한 평수, 애완동물은 물론 셀프 인테리어도 가능! 심지어 회사에서도 가깝다. 이 집은 완벽해, 확신에 차 스크롤을 내리니 이미 댓글이 여러 개 달려있다. 허겁지겁 글을 올린 세입자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퇴근 후 바로 가겠다고 약속을 잡는데, 비슷한 시간 대에 보러 오기로 한 사람이 있다며 애매한 대답이 돌아온다. 뭔가 불길하다. 아, 나 진짜 이 집 아니면 안 되는데… 애가 타 오늘 같이 집을 봐주기로 한 형부에게 전화를 건다.


“형부, 저 퇴근하고 바로 갈 건데 차가 막힐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먼저 도착할 수 있어요?!”


최선을 다하겠지만 차가 막히는 건 매한가지라 비슷할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여섯 시가 땡, 울리자마자 인사할 새도 없이 가방을 들고 뛰쳐나간다. 출발하려는 버스에 기세 좋게 올라타기는 했는데, 퇴근 시간 한강대교의 정체는 살인적이다. 몇십 분을 다리 위에 묶여 있다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미 내가 약속한 시간은 지나 있다. 결국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와 집을 보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려 달란다. 닭 쫓던 개처럼 대문 앞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근처에 주차를 한 형부가 합류한다.




에이 아무리 집이 좋아도 보자마자 계약을 하겠어, 설마 몇 분 차이로 정말 눈 앞에서 놓치려고.. 아닐 거야, 아니겠지. 되놰 보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다. 잠시 후 대문 위 계단으로 세입자와 집 보러 온 사람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는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가장 위층인 주인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잠시 후 문자 한 통이 도착한다.


‘집까지 오셨는데 죄송해요. 이 분이 바로 지금 계약하신다네요…’


아… 정말 느낌이 왔는데. 오늘 바로 계약할 생각에 등기부등본까지 미리 떼보고 왔는데… 대문 안도 못 밟아보고 그대로 돌아서야 한다니 이렇게 분하고 허망할 데가 없다. 형부만 옆에 없었더라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눈물을 참느라 시뻘게진 얼굴을 눈치챘는지 형부가 달래듯 입을 연다.


“그래도 기왕 온 김에 부동산도 가볼까? 분명 비슷한 집 또 있을 거야~”


그렇게 아무 부동산이나 들어가 대충 조건을 말하고 몇 군데를 둘러보는데 진정되기는커녕 대성통곡을 하고 싶다. 그 가격에 그런 조건의 집은, 절대 있을 리가 없었다. 계단 몇 개만 내려가면 돼서 사실 반지하도 아니라는 구차한 설명을 들으며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아무 소득 없이 되돌아가는 길,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아, 여기까지 오셨는데 너무 죄송해서요.. 혹시나 하고 집주인분께 여쭤보니까 바로 위층도 곧 비는데 아직 부동산에 안 내놓으셨다네요! 괜찮으시면 2층이라도 보시겠어요?”


그럼 그렇지, 분명 여기가 내 집이다 싶었다니까. 그렇게 나는 그 날 1층보다 더 좋은 2층을 계약하는 데 성공한다. 입주일은 공교롭게도 내가 1년 전 청파동에 이사를 왔던 바로 그 날짜였다. 내가 운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이 대학은 2년제예요, 3년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