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대기업 파견직은 진보일까 후퇴일까
그렇게 월 백만 원 버는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스물일곱을 맞이했다. 단편 소설 수업이 끝난 이후로 아직까지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경력을 쌓는 것도 아니고… 덜컥 겁이 났다.
‘어차피 알바를 할 거라면, 몸은 덜 힘들고 돈은 더 주는 곳을 찾아볼까?’
종일 서 있어야 하거나 모르는 사람을 웃음으로 맞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날씨가 춥기에 따뜻한 실내에서 일하고 싶고, 당연히 시급은 지금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조건을 따지다 보니 결국 남는 건 사무직 아르바이트뿐이었다.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던 터라 망설여졌지만 급여 수준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일은 쉬워 보이는데, 내 첫 직장 월급을 가뿐히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 기왕 회사로 돌아갈 거면 돈 많이 주는 데로 가자!’
본격적으로 비교해가며 찾아보니 제목에 ‘파견직’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곳들이 대체로 급여가 높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알바가 아니라 계약직 직원을 뽑는 자리들인데, 어차피 하는 일은 사무 보조니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계약직이더라도 대기업 소속이다 보니 연봉이나 복지 수준은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훨씬 낫다. 아,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머슴살이를 해도 대감집에서 하라더니. 그렇게 자본의 유혹에 넘어가 월-금, 9 to 6의 쳇바퀴에 다시 올라타기로 한다.
청년 실업 백만 시대는 아마 계약직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인가 보다. 이력서를 뿌리자마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고 몇 번의 면접을 거쳐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용산에 있는 어느 통신사였다. 더 조건이 좋은 곳도 있었지만,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번듯한 그 본사 건물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휘황찬란한 로비, 사원증 찍고 줄 서서 타는 엘리베이터, 내 자취방보다 따뜻하고 깨끗한 화장실.. 이래서 대기업 대기업 하는구나. 그제야 공채에 목을 매는 주변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렇게 파견회사와 계약서를 쓰고, 본격적인 두 번째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알바보다 돈도 많이 주고, 일도 쉽고, 팀 사람들도 편하고… 아, 사내 식당도 훌륭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부장님이 나를 뽑은 결정적인 이유는 마지막 한 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저기, 밥은 맛있나요?”
열 명쯤 되는 우리 팀은 한 명의 무기 계약직, 한 명의 파견 계약직, 한 명의 디자인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아마 나머지 정규직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면접 때의 기대에 걸맞게 나는 그중 ‘뭐든 잘 먹는 애’ 캐릭터로 굳건히 자리를 잡는다.
내 주된 업무는 마케팅이자, 교정 편집이자, 팀 총무이자, 일종의 비서이기도 했다. 홍보 브로셔에 들어갈 내용을 기획하는 것부터 문구류나 간식 같은 팀 비품을 주문하는 것, 하루 두 번 가습기에 물을 채우는 것, 엑셀 자료를 돌려 통계를 내고 오류를 찾아내는 것 등 온갖 잡무를 도맡아 했다. 내 예상대로 업무 폭은 넓고 강도는 낮았다. 옆자리 친구와 메신저로 노닥거리고, 차장님께 커피도 얻어 마시고, 인터넷으로 쇼핑 좀 하고… 그렇게 해도 시간이 남아 돌아서 퇴근 30분 전부터 자리를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마쳤다. 몸도 편했지만 무엇보다 정규직이 아니니 회사가 내게 기대하는 바도 적고, 내가 책임질 일도 없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소위 말하는 ‘워라밸’, 직장과 삶의 균형이 완벽하게 지켜졌던 셈이다.
직장 스트레스도 없고, 칼퇴도 가능하고, 돈도 넉넉해졌고. 그렇다면 이제 남는 시간에 글만 쓰면 될 텐데 그게 또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안정적인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순조롭다 보니 이번엔 간절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예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고 나는 순식간에 대기업의 톱니바퀴로 순응했다. ‘잠시 방황할 동안 돈 벌 목적으로 잠깐만 있는 거야’ 라던 처음의 다짐은 점차 잊혀 갔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계약직이라 멸시받고 인격적으로 차별당하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다정했다. 하지만 물론 정규직과 계약직 사이의 차이는 만연했다. 가령 상여금이나 복지 포인트 같은 것들은 계약직에게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고, 사내 식당에서도 돈을 내고 점심을 사 먹어야 했다. 중요한 일이 논의되는 팀 미팅에 들어갈 일이 없다는 점은 대체로 장점이지만 가끔 내가 시킨 일만 묵묵히 하는 기계가 된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수십 장 명함을 찍어 어플에 대신 업데이트를 하거나, 아드님의 축구부 일정표를 문구점에서 코팅해 오거나, 지하 주차장에 구두 수선을 맡기는 그런 잔심부름을 할 때 가장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대학은 2년제예요, 3년제예요?
부서의 높으신 분께 처음 인사를 드릴 때 그런 질문을 받고 잠시 말을 잃었었다. 작은 규모의 신생 대학교라 99%가 잘 모르는 현실에는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당연히 전문대로 여겨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전임자도 불과 스물둘, 셋 밖에 되지 않은 아주 앳된 친구였다.
모든 일이 내게 너무 쉽게 느껴졌던 이유, 이력서를 보내는 족족 연락이 왔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속도와 상황에 맞는 적합한 단계가 있는 법이다. 이 곳의 화려한 포장에 속아 넘어간 나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