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과거의 연하남 vs 대기업 직진남 vs 방탕아 점장님
삶의 방향성을 찾아 헤매는 동안에도 연애 사업은 꽤나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연하남과 헤어진 지 수개월 되었지만 여전히 장문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기적인 건 알지만, 연애를 몇 번 해본 나는 실연의 슬픔을 최소화하고자 마음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이별을 미루고 미뤘었다. 그렇기에 내게는 더 이상 남아 있는 감정이 없었다. 반면 첫사랑이었던 그 애는 모든 게 처음이라 너무 낯설고 막막했나 보다. 안쓰럽긴 하지만 나 역시 그랬었고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과정 이리라.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연락을 씹는 것뿐이었다.
나도 이제 ‘서울 남자’를 만나보겠다고 열심히 소개팅을 받고 다녔다. 소개팅은 질보다 양, 확률 싸움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하도 많아 소개남들의 얼굴과 이름, 직업이 분간되지 않으며 언니가 한 명 있고 대전에서 왔다는 사실을 말했던가 헷갈릴 즈음, 드디어 세 번 이상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 나보다 네 살이 많고, 친한 친구의 언니의 직장 동료인 그는 돈 잘 주기로 유명한 어느 대기업의 대리였다. 자취를 했고, 차가 있었다. 세 번째 만남에서 “이 맥주 다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예요.”를 시전 한 그는 크게 모난 것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는, 그야말로 평균 이상의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아직 알쏭달쏭했지만 일단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전의 연애들은 그야말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한테 너무 끌린다’ 싶을 때 시작했다면 이 사람은 완전히 반대였다. 안정적인 연애란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한 번쯤 이런 것도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만날수록 그가 좋아지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가장 좋아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도 엄마도 한껏 들떠 결혼 얘기를 들먹였다. 실제로 그는 결혼이 하고 싶어 진지한 마음으로 소개를 받은 거였고 내게 그런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처음 맛보는 ‘어른의 연애’에 반했던 것 같다. 가령 한 손에는 내 손을, 다른 손에는 핸들을 잡고 여유롭게 운전하는 모습 같은 별 거 아닌 것들에 깊이 감명받았으니까. 내가 정말 경상도 출신의 남자에게 시집가 그의 대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 수도 있겠구나-, 싶을 때쯤 나의 세상은 다시 흔들렸다.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고 온 어느 날, 그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오늘 네가 책 읽는 모습 보니까 좋았어.”
아무렴 그랬겠지, 그 모습이 오죽 지적이고 우아하고 예뻐 보였겠어? 아주 뻔하고 유치한 대답을 기대하며 나는 질문을 던졌다.
“왜요~? 뭐가 좋았는데요?”
그러나 내게 돌아온 응답은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다.
“우리 결혼하면, 내가 야근하거나 회식하느라 연락 안 되고 늦어도 채근 안 하고 얌전히 잘 기다릴 것 같아서… ㅎㅎ”
그랬다. 그가 나에게 기대하는 결혼생활은 정확히 그런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만남을 갓 시작했을 때, 왜 결혼을 생각하는데 백수인 나를 소개받았냐고 물어봤을 때도 비슷한 결의 대답이 돌아왔었다.
“음… 글쎄? 나는 여자 직업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ㅎㅎ”
그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 대답을 듣고 오히려 기뻤을 누군가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지금 백수이고, 돈도 없고, 미래도 불안정하다. 그래서 그와 함께 가는, 어쩌면 가장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하더라도 곧 가장 어려운 길이 될 것이며 결국엔 나도 그도 행복할 수 없으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손안에 잡힐 듯 선명하던 결혼은 한순간에 아주 멀리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그 대기업 남친을 만나는 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알바를 하고 있는 서울역 근처 치킨 집의 점장이었는데, 그래 봐야 나랑 동갑인지라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아 이 자식 뺀질이네’ 하는 생각에 코웃음을 쳤건만 어느새 내가 그 뺀질이의 페이스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머리로는 ‘이런 놈들은 아무한테나 쉽게 작업 걸고 쉽게 만나겠지?’ 생각하면서도 거의 매일 같이 몸을 부대끼며 일하는 와중에 티가 나게 내 편의를 봐주고, 점심시간마다 새로운 요리를 해 주고, 밤에는 청파동 그 언덕 끄트머리까지 데려다주는데 도저히 모르는 척이 되지가 않았다. 분명 교복 입고 담배 피우고, 삥이나 뜯고 다니던 양아치일 거야- 내 오만한 편견을 비웃는 듯 그 애의 장점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야무지게 일도 잘하고, 단골 하나하나 살뜰히 챙기고, 잡상인을 돌려보낼 때도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손재주도 좋아 가게 여기저기 직접 쓴 주의문을 붙여 놓곤 했는데, 평소에는 장난스럽다가도 글씨 쓸 때 보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손은 또 왜 이렇게 크고 길쭉한 거야, 왜 옷 갈아입는데 슬쩍 복근이 보이는 거야, 왜 여자 손님들이 자꾸 메모를 남기는 거야, 왜 대체 왜….!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는 집 앞 골목 계단에 앉아 야경을 바라보며 한 캔 두 캔 맥주를 비우고 있다. 나는 결국 또 이성보다 감성에 끌린 연애를 시작하기로 한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세기의 로맨티시스트였던 그 남친은 단지 나를 옆에 더 두기 위해 한가한 밤 시간에 굳이 알바를 썼다. 내 주 업무는 구석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그가 보여 주는 영화를 보고 그가 차려 주는 저녁을 먹는 일이었다. 물론 점심시간 모두가 정신없이 일할 때도 나는 궂은일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주로 가만히 앉아 휴지를 접거나 수저의 물기를 닦고, 테이블 몇 개를 치우는 게 다인, 바야흐로 알바 전성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리를 비운 남자친구의 대타로 사장님의 따님이 등장했다.
“언니, 점장 오빠가 많이 잘해줘요?”
말투에는 날이 서있었다. 당황해서 어색한 웃음으로 넘겼지만 그 날 나의 근무 태도가 정확한 답변을 돌려준 모양이다. 난생처음 ‘술 박스를 가져다 냉장고를 채워라’ 따위의 요청을 받았고 어디서 뭘 얼마나 가져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교육된 바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 날은 새로운 일을 잔뜩 배우며 그 어느 때보다 보람찬 하루를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들을 써먹을 기회는 영영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몇 번 본 적 없는 사장님께 전화가 걸려 왔다. 당연히 나는,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