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정도로는 전혀 괜찮지 않아서,

#13 평균 이하의 스물여섯이 완성한 첫 단편 소설

by 신재

일단 회사를 박차고 나오긴 했지만 대단한 계획은 없었다. 그냥 막연히 ‘이제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 테야’라고 생각했을 뿐. 일 년의 회사 생활을 통해 얻은 결론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창작이라는 것이었다. 남의 작품, 남의 이야기를 만지작거리는 대신 내 작품, 내 이야기를 하자.


다만 창작의 분야라는 것이 너무나 방대했다. 시나리오, 문학, 드라마, 웹소설.. 그 다양한 갈래 중 나에게 맞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쓰기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한겨레교육센터 홈페이지에 다다른다. 이런저런 수업들 중 단편소설 관련 강좌에 시선이 꽂혔다. 학창 시절 내가 쓴 소설을 반 친구들과 돌려 보곤 했었다. 마지막 페이지는 비워두어 마치 댓글처럼 코멘트를 달 수 있게 해 두었다. 종종 옆 반에서 빌리러 오기도 했다. 장편 소설에 도전한 적도 꽤 많았지만, 매번 야심 차게 시작했다 제 풀에 지쳐 금세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래, 일단 제대로 된 한 편이라도 마무리를 해 보자. 그렇게 단편 소설 수업을 등록했다.




열댓 명쯤 되는 수강생들이 작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매주 등단작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총 3개월의 코스, 처음 한 달이 지나자 슬슬 각자 작품을 써내려 가야 했다. 그래도 나름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평가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부담이 컸다. 여태까지의 등단작들을 읽어 보면 글이라는 게 참 너무 쉬운 것 같기도, 너무 어려운 것 같기도 했다. 일단 확실한 건 나랑은 아주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역시 자전적 이야기가 첫 소재로는 가장 무난하고 만만했다. 내 첫 단편 소설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스물일곱 살 어느 평범한 취준생의 이야기였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물일곱. 스물일곱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님을 동시에 잃더라도 쯧쯧 안됐기도 하지 저렇게 어린 나이에, 하는 동정을 받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나이이다.


나는 이때 스물여섯의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퇴사한 지 두 달쯤 되었을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치킨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다음 해가 코 앞으로 다가오자 갑자기 숨통이 조였다. ‘스물넷-스물다섯-스물여섯-’ ㅅ받침으로 묶인 20대 중반을 지나 내가 스물일곱이 된다니 게 덜컥 실감이 났던 것이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20대 후반인데 치킨집에서 서빙 알바를 해도 되는 걸까? 이미 취업해서 안정적인 친구들, 심지어 결혼하는 애들도 있는데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개뿔 글을 쓰긴 뭘 써. 너 천재 비슷한 것도 아니잖아.’


내 소설의 주인공 역시 비슷한 불안감에 갇혀 있다. 첫 번째 회사에서 도망치듯 퇴사하고 부모님이 월세를 대신 내주는 그녀는 나보다 조금 더 유복하고 나보다 조금 더 똑똑하고 아마 나보다 조금 더 예쁠 것이다. 현실에 있었더라면 내가 조용히 부러워했을 만큼. 하지만 그야말로 못난 구석, 부족한 구석 하나 없는 그에게도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평균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더 열심히 꾸미고 다니고, 더 열심히 사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쓸 만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괜찮은 정도로는 전혀 괜찮지 않잖아요.


고민 끝에 소설의 제목은 <평균 이상>으로 정했다. 평균 이상으로 사는 게,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통의 삶에 다다르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나 어려웠다. 어떻게 다들 이렇게 쉽게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평균값만 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면 어떡해. 설마 다들 정말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인류는 사실 정말 위대한 것 아닌가, 과연 나는 보편적인 인류의 삶을 쟁취할 수 있을까-, 그 시절 그런 생각을 매일 같이 되뇌었다.


<평균 이상>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쓴 글이 참 좋았다. 나에게는 ‘오랜만에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자’라는 단 한 가지 목표가 있었고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 점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유물처럼 과거에 끄적여 놓은 흔적과 조우해도 대부분 괴롭기보다는 즐거웠다. 과거의 내가 보내는 연애편지 혹은 깜짝 선물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우습게도 나는 내 글의 가장 큰 팬인 것이다. 여하튼 그런 맥락에서 난 엄청난 대작이 탄생한 줄로만 알았다. 작가 선생님과 동료 수강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야심 차게 이런저런 공모전에 내보냈다.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수상하면 어떡하지?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 등단 소감문은 뭐라고 쓰지? 세상 가장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현실은 평균도 따라가기 힘든 내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 아주 큰 공모전부터 아주 작은 공모전까지, 단 한 곳에서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그렇게 단편 소셜에 대한 흥미는 빠르게 사라졌다. 뭐랄까 첫 번째 원고를 더 이상 퇴고하거나, 두 번째 작품을 시작하고 싶은 의지가 전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창작의 과정은 즐거웠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이제 시작이야’ 보다는 ‘음, 이런 세계였군. 해 봤으니 됐다.’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또 한 가지, 나는 평소에 한국 현대문학을 찾아 읽는 편도 아니었고 딱히 좋아하는 작가도 없었다. 같이 스터디를 했던 팀원들과도 거리감을 느꼈다. 나랑은 다른 부류,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들 같다고 해야 할까.


그곳은 너무나 깊고 심오한 세계처럼 보였고 순수문학을 파고 들어가기에 나는 꽤나 가볍고, 대중적이고, 무난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삼 개월간의 소설 공부는 막을 내렸고 나는 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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