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퇴사 일주일 전 마드리드로 떠난 출장
영화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은 시나리오 검토였다. 수입사이다 보니 모든 대본은 영어였는데, 처음에는 사전을 옆에 끼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찾아보느라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려운 단어 몇 개 몰라도 문맥이나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기 시작했다. 한 편 두 편, 두툼한 A4 뭉치가 책상 위에 쌓여 갈수록 작품 보는 눈도 트이는 기분이었다.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 중심 사건이 파악이 안 되는 작품이 있나 하면 첫 장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빼앗는 작품도 있었다. 잘 나가다 결론이 엉망진창이면 좋지 못한 말로 도배될 댓글창이 저절로 떠올랐다.
출장 가기 한 달 전부터 검토할 시나리오는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한다. 종일 세 편을 읽고 뿌듯한 마음으로 보고서까지 보내고 나면, 새 메일이 열 통씩 쌓여 있는 식이다. 근무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하느라 온전히 작품을 읽을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이든 버스든 길거리든, 그야말로 어디서든 시나리오를 읽었다. 심지어 출장 가는 열몇 시간 짜리 비행기 안에서도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내리읽었다. 제작사 미팅 전에 끝내야 한 번이라도 더 아는 척을 할 수 있다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엄청난 대작이 될지도 모르는 어느 작품을, 무려 감독과 배우도 정해지기 전에 내가 한 발자국 앞서 만난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물론 “어, 나 요즘 시나리오 검토하느라 바빠서…” 와 같은 유니크하고 고급진 멘트를 주변 인들에게 은근슬쩍 날릴 수 있다는 점도 내 허영심을 넉넉히 채워주었다.
가끔가다 ‘와, 이걸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 가장 슬픈 점은 내게 조금의 결정권도 없다는 사실이다. 회사의 재무상태나, 대표의 인맥과 취향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올해의 구매작이 정해지지만 내가 아무리 보고서에 별점 5개를 때려 박고 “대표님 이 작품 정말 좋았어요!!”를 외친다 한들 조금의 영향력도 행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돌아오는 것은 “응 그랬니?” 한 마디뿐. 물론 작품이 좋은 것, 혹은 내 취향인 것과 흥행 여부는 그리 긴밀한 관계에 있지 않으며 회사가 풋내기 신입사원의 말에 의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별점 4-5개짜리 작품은 늘 다른 곳이 가져가고, 우리는 1-2개짜리 작품을 가져와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판매대에 내놓은 후 욕을 먹는, 그 끝없이 반복되는 과정이 내게는 길고 느린 고문과도 같이 느껴졌을 뿐이다.
‘첫 회사인데 적어도 사계절은 겪어보고 신중히 결정해야지’라는 마음 하나로 한 해를 간신히 버텼다. 그런데 막상 일 년이 다 되어가자 업무도 이제 좀 익숙해지고, 업계 사람들도 조금 알게 되고, 회사와 대표님께 미안한 마음도 들어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린터기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 한 장 덕분에 확실히 마음을 굳히게 된다. 누군가 프린트를 하고 가져가는 걸 잊은 게 분명한 그 종이에는 직원들의 이름이 직급 순서대로 쓰여 있었다. 그리고 각 이름 옆에는 깨알 같은 글씨, 아니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헉, 설마 이건… 그렇다. 직원들의 월 급여가 쓰여 있는 문서였던 것이다. 깜짝 놀란 마음에 후다닥 고개를 돌렸지만 동체 시력은 본능보다 빨랐다. 이미 가장 위에 있던 실장님 이름 옆의 숫자를 언뜻 보아버리고 만 것이다.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죄책감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놀라움이 뒤섞여 심장이 쿵쿵거렸다. 실장님의 급여는 내 두 배도 되지 못했다. 내 급여가 거의 최저 임금이라는 사실과 실장님의 경력을 고려해본다면 충격적인 숫자인 것이다. 여기에 계속 있는다면, 실장님 나이가 됐을 때 과연 저만한 경력을 쌓을 수 있을까? 이 업계에서 10년 후의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쪽 일을 하는 지인들의 상황들도 마찬가지였다. 고학력자가 최저임금을 받고, 열정 페이가 기본이고, 더러워서 못한다고 때려치워도 내 자리를 탐내는 자들이 문 밖까지 줄을 선… 이 무시무시한 영화 업계. 열정도 없는 판에 급여까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더 고민할 것도 없다. 하루빨리 벗어나는 게 정답이다.
열심히 키워서 이제 좀 쓸만하니 떠난다며 대표님은 많이 아쉬워하셨다. 몹시 죄송하긴 했지만, 반대로 기립 손뼉 치며 등 떠밀지 않아 다행이고 영광이었다. 퇴사 날짜가 잡히고 이제 좀 편히 다니다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가장 큰 관문이 남아 있었다. 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유명 감독과 배우 인터뷰를 하러 TV 연예방송팀과 함께 스페인에 다녀오라는 것이다. 출장 일정은 불과 퇴사 일주일 전이었다. 마지막까지 일 복이 터졌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지만 한 편으로는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보겠나 싶어 설레기도 했다.
방송 PD, 리포터까지 셋이 함께 한 마드리드 출장은 나름 즐거웠다. 하지만 가장 기대했던, 배우와의 인터뷰는 내 피를 바짝 말렸다. 아마 수명도 조금 줄었을 것이다. 방송팀과 나는 각각 5분씩 인터뷰를 단독 진행해야 하는 상황. 단 5분의 인터뷰를 따는데 지불하는 돈은 몇 백만 원. 거기에 방송팀의 비행기 값과 숙소 값, 내 출장비.. 한 번의 기회에 회사가 투자한 돈은 어마어마했다.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한 나는 질문지를 달달 외우고 넘겨서 보여줄 수 있는 스케치북까지 준비했다. 순조롭게 감독 인터뷰를 끝냈는데, 관계자 측에서 오더니 배우와 인터뷰를 할 때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런 행동’이라 함은 1. 영화와 관련 없는 질문을 한다 2. 사인을 요청한다 3. 한국말을 시킨다 와 같은 것들로, 그야말로 국내 마케팅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였다. 거기다 덧붙이는 말은 요즘 이 배우가 홍보대사인 국제기구 관련 질문은 해도 된다는 것이다. 원하는 그림이 정확하게 그려졌다.
내가 준비한 질문들은 대부분 국내 대중들이 궁금해할 만한, 배우 본인에 대한 질문이었다. 스케치북에는 각 매체에 활용할 사인을 받아가야 했고 간단한 한국말 인사나 손하트까지 받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불과 인터뷰 10분 전에 들었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애초에 인터뷰를 신청하지도 않았을 터. 어찌해야 하나 손을 덜덜 떨다 늦은 시간인 걸 알지만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건걸 보니 비상사태구먼?” 긴박한 통화 끝 팀장님의 결론은 하나였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어쩔 수 없지.”
어글리 코리안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일조를 한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영혼 없는 질문만 던질 수 없는 이유는, 배우뿐 아니라 내 목소리까지 고스란히 녹화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회사가 나에게 맡긴 마지막 일인데 ‘대충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빅 팬’이라 만나서 영광이라며 호들갑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실제로 별 감흥은 없었다. 기본적인 질문이 끝나자 배우가 원하는 대로 국제기구에 관련된 질문도 던져 주었다. 눈썹을 팔자로 만들어가며, 열과 성을 다해 대답하는 저 열정적인 모습. 그래 그럼 내 것도 제발 하나만 해주라. 슬쩍 “혹시 할 수 있는 한국말이 있니..?” 하고 운을 띄우니 팔자 눈썹 그대로 열의를 다해 고개를 흔든다. “오, 노.. 아임 쏘 쏘리…” 예전에 내한했을 때는 한국말 열심히 하더니, 그래 다 잊었겠지. 이번에는 슬쩍 스케치북을 꺼내 든다. “저, 인터뷰는 끝났고 혹시 나를 위해서 사인 하나만 해 줄 수 있니? 제발.. 내가 정말 너무 팬이라서 그래…” 이 한 마디를 위해 시작부터 밑밥을 깔았던 것이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불과 오십 센티, 그런데 마치 몇 백 키로 떨어져 있는 냥 서글프게 고개를 흔든다. “쏘리.. 아이 캔트… 아이 캔트..” 거기까지였다. 옆에서 불만스럽게 지켜보던 관계자가 다가와 제지했고 나는 그대로 쫓겨났다. 그러니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진상이 되었을 뿐이지만 개운했다. 그 숭고한 노력은 5분짜리 녹화 테이프 안에 생생히 담겼다. 적어도 나는 내 역할을 다 한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이후로 그 배우를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그들 나름의 계산과 사정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면전에서 그런 대접을 받고도 좋아하기에는 내 속이 좁았다. 회사는 내가 힘든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름 기분 좋게 퇴사를 했으나, 한 달쯤 후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그 인터뷰의 한/영 대본을 정리해 달라는 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네가 직접 한 거니까 제일 잘 알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 업계에 번역이나 창작 같은 형태로 발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평판을 생각해 묵묵히 해줬다. 그 이후로도 다운로드 기한이 지난 대용량 파일을 재요청해 달라는 등 황당하고 당당한 요청은 일 년 넘게 이어졌다. 기대한 바와 달리 그곳에서 내게 일감을 주는 일은 영영 없었다. 하지만 퇴사 일 년 만에 실장님의 월급을 뛰어넘을 수는 있었다. 나의 결단력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