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에 살며 테니스를 치는 그 여자
#26 전세 대출은 처음이라
그다음 나의 자취방은 1억 2천짜리 전셋집이었다. 10평 남짓한 신축 원룸이었는데 구조가 특이했다. 커다란 붙박이 옷장이 방 중간쯤 위치하고 있고, 거실 끝의 짧은 복도를 지나면 주방이 나온다. 방문 없이도 뚜렷하게 부엌-거실-침실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인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예산을 살짝 초과하기도 하고, 회사에서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였지만 집을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바로 예약금을 걸고 빠르게 계약이 진행되었다.
계약서를 쓰는 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모든 걸 알아보고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건만 어른의 세상이란 꽤 만만치 않다. 마음이 급해 최대한 빠른 날짜로 이삿날을 정했는데 대출 심사 기간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잔금을 이삿날에 맞춰 입금할 수 없는 상황. 혹시 며칠 늦게 드릴 수는 없는지 여쭤보니 그러고 싶어도 돈이 다 묶여 있어 이전 세입자한테 보증금을 내어 줄 수가 없단다. 허겁지겁 이전 세입자에게 연락을 해 보니, 그쪽도 바로 보증금이 필요해서 단 하루도 기다려 줄 수가 없다고. 내 거래 은행에 전화를 해서 아무리 애원을 해도 돌아오는 건 기계처럼 정해진 답변뿐이다.
“빨리 될 수도 있지만, 늦어질 수도 있어서 확실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대로 계약을 날려야 하나 실의에 빠지려는 찰나 주인집 아저씨가 쿨하게 한마디를 던진다.
“내 은행에 함 알아봐 줄까? 거기는 내 단골이라 바로 해줄겨.”
아무것도 없는 사회초년생과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자산가의 차이란 이런 것인가. 통상 2주는 걸리는 대출 심사 기간은 단 3일로 단축되었다. 그렇게 나는 또 타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첫 전세 계약을 완료한다.
월세에서 전세로 한 단계 올라오고 나니 대체 왜 여태까지 월세를 살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전세 보증금이 부족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넘은 지 오래지만 난 여전히 애 같은데, 은행이 나한테 돈을 빌려 줄까? 아니 그보다 빚은 무조건 나쁜 거 아닌가? 그런 모호한 생각들 때문에 애초에 전세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제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세 이자가 월세보다 훨씬 저렴하고, 전세 대출금은 갚을 필요 없이 계약이 끝날 때 그대로 돌려주면 된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여하튼 이때부터 나는 대출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았으며 흔히들 말하는 ‘빚이 곧 자산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집에 꽂혔던 이유는 집 자체도 있지만 연희동이라는 지역적 특성도 컸다. 전 대통령들이 거주할 정도로 부촌이자, 연남동과 더불어 점점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동네. 사실 연희동이라 불리는 구역은 생각보다 넓어서 내가 사는 집은 둘 중 어느 쪽과도 가깝지 않았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았다. 누군가 내게 어디 사냐고 물었을 때, “연희동이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거였지. 그렇게 말하면 실제로 “와, 좋은데 사네요”, “돈 많나 벌었나 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딱히 둘 다 사실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좋았다. 나는, 우리 집은 단 한 번도 중산층 이상에 속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비슷한 맥락으로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잘 산다는 사람들은 죄다 골프 아니면 테니스를 쳤다. 음, 부자일수록 어릴 때부터 배우는군. 나는 그렇게 결론을 냈다. 잠시 스쳐 지나갔던 어느 귀한 집 아들이 내게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난 나중에 아내랑 꼭 같이 골프 치러 다니고 싶어.”
“오빠가 나 알려주면 되겠다 ㅎㅎ”
“아니, 골프는 처음부터 전문가한테 제대로 배워야 돼. 자세가 중요하거든.”
발걸음까지 멈추고 정색하던 그 사람은, 어릴 때부터 제대로 배워 스윙 자세가 완벽한 어느 부잣집 딸과 지금쯤 결혼했으리라.
현실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계급이라는 게 존재했다. 우리는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어”, “사람은 다 평등해” 같은 말들로 애써 불편한 진실을 모르는 척해보지만,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일수록 현실과 거리가 먼 법이다. 기왕 끝없이 타인에게 분류되고 평가받는 세상이라면 가장 꼭대기로 올라가고 싶었다. 한 번도 원망한 적은 없으나 나는 흙수저에 가깝고 그런 만큼 목적지는 아득하다. 다만 내 자취방 보증금이 5백에서 시작해 1억 2천까지 늘어난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당장의 최선을 하다 보면 한 단계씩 더 올라갈 수 있으리라, 그걸 믿었다.
연희동에 살고, 외국계에 다니고, 테니스를 치는 스물아홉 살 여자. 그게 내가 생각한 당장의 최선이었다. 그 타이틀 덕분에 사람들은 이전보다 나를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얼마나 쉽고 빠르고 재미있는지. 나는 그 행위의 제법 큰 수혜자였고 그걸 만끽했다. 실제로 내가 얼마짜리 적금을 붓고 어떤 책을 읽는지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 것들로 인해 진정 내 가치가 올랐다고 믿는 것 자체가, 실은 내가 거대한 열등감 덩어리라는 반증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