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벌레 없는 집에 살래요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다는 인생 노잼 시기가 찾아왔다.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찾아 나설 때였다. 여전히 내 집은 사랑스러웠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가 아까웠고 좀 더 깨끗한 신축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안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고쳐놓아도, 여기저기 틈이 많은 오래된 주택인지라 자꾸만 제3의 생명체가 스며드는 것이다.
프로 자취러답지 않게 나는 벌레를 굉장히 무서워한다. 개미나 모기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데, 초대하지 않은 무언가와 맞닥뜨리면 손발을 벌벌 떨며 말 그대로 집을 버리고 나가는 수준이다. 이럴 때 혼자 사는 게 가장 서럽다. 한 번은 비좁은 화장실에서 바퀴인지 뭔지 모를 녀석과 마주치자 너무 놀라 음소거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와 문을 쾅 닫았다. 평일 아침, 출근 준비 중이었다. 일단 회사는 가야 하니 대충 싱크대에서 씻고 집을 나왔다. 그날 하루 종일 여러 해충 방역 업체에 전화를 돌려 퇴근시간에 맞춰 올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기사님의 등 뒤에 숨어 집에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바로 업체가 올 수 있으면 다행이지, 늦은 저녁 같이 애매한 시간에 나타나면 그야말로 비극이 따로 없다. 자려고 누웠는데, 자꾸 침대 머리맡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이다.
‘까드득… 까득… 까드득..’
나무가 긁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패턴이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한참 귀를 기울이다 그냥 차라리 모르는 척 자자 싶은데 소리는 갈수록 커진다. 결국 몇 십분 후, 나는 침대 아래 구석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호동이를 발견한다.
“호동아, 거기 뭐.. 끄아아아ㅏㄱㅏㄱ!!!!!!!”
그곳엔 곱등이 혹은 여치로 추정되는 엄청나게 큰 거대 생명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호동이를 덥석 안고 후다닥 도망 나온다. 방을 포기한 것이다. 아니 근데.. 잠은 어디서 자라고. 세상에서 가장 서러워진 나는 당시 연락하던 소개팅남에게 메시지로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제가 가서 잡아 드릴까요..? 30분이면 갈 텐데.’
‘헉, 죄송해서 어떡해요.. 주무시려고 하던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면 밤 꼬박 새야 하잖아요.’
아직 말도 놓지 않은 어색한 사이였지만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문 밖 계단에서 오들오들 떨며 그를 기다렸다. 얼마 후 히어로처럼 모습을 드러낸 그는 잠옷 차림에 한 손에는 비닐봉지 다른 손에는 청소기를 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역시 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디 있어요?”
“저.. 저 방에..”
비장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서는 그. 나는 호동이를 안고 조심스레 따라 들어간다. 놈은 그 새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기저기 가구를 들춰보는데, 반대쪽 모서리에서 빠른 속도로 뛰쳐나오는 타깃..!
"껴아아아가악!!!!”
“아아아아ㅏㄱ!!!”
방 안에 그와 벌레 단 둘만 놓고 매정하게 뛰쳐나와 문을 닫는다. 굳게 닫힌 문 너머 긴박한 청소기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정적이 흐른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한쪽 손에는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청소기가 들려 있다.
“잡았어요.”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호들갑스러운 감사 인사를 받으며 현관을 나서던 그가 아 맞다, 하더니 검은 비닐봉지를 슥 내민다. 이게 뭔가 싶어 안을 들여다보자 새콤달콤과 음료수, 과자 같은 주전부리 몇 개가 들어 있다.
“그래도 집에 오는 건데 빈 손은 좀 그래서…”
이렇듯 완전한 타인의 호의로 인해 내 자취방의 평화는 무사히 지켜졌다. 하지만 만일 그때 내가 연락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그 사람이 멀리 살았거나, 내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막막한 하룻밤을 보냈을 것이다. 다음 집의 조건은 정해졌다. 벌레가 나오지 않을 만큼, 신축일 것.
계약 기간을 4개월 남기고 나가는 거니 내가 다음 세입자를 구해야 한다. 사실 이건 내가 꽤 좋아하는 일인데, 내가 사는 집은 항상 시세 대비 평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은 특히 내가 셀프 인테리어로 환골탈태를 시켜 놓기도 했고, 기본 옵션이 단 하나도 없는 집이라 에어컨을 달고 주문 제작해 조리대를 맞춰 넣기도 할 만큼 구석구석 들인 공이 많았다. 그래서 게시글을 올릴 때 권리금이 있다는 부분을 크게 명시해 두었는데, 가격은 고민 끝에 60만 원으로 책정했다. 말이 권리금이지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 가스레인지, 신발장, 옷장, 서랍장 등 거의 모든 가전 가구가 포함되어 있는지라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이 집을 사랑하며 이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정성 들인 설명을 덧붙였다. 글이 올라가자마자 문의가 빗발쳤다. 올린 시간이 이미 늦은 저녁이었는데, 밤늦게까지 대여섯 명이 집을 보고 갔다. 그들 모두 너무 마음에 든다며 바로 계약을 하고 싶어 했고 심지어는 경쟁하듯 권리금을 더 얹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 좀 더 높게 부를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이 집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사실이 무척 뿌듯했다. 마치 내가 키워 떠나보내는 자식인 마냥.
한참 후의 일이지만 월세 권리금 때문에 뉴스에 실리기도 했다. 관련 기사를 작성 중인데,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기자한테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름은 어떻게 하시겠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내 본명 그대로 쓰겠다고 했다. 월세 권리금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기에 기자님은 괜찮겠냐며 재차 되물었지만 나는 내가 한 일이 부끄러운 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0862.html
기사의 반응은 뜨거웠다. 다양한 커뮤니티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바로 친구에게 너네 집 아니냐며 연락이 왔다. 대다수 댓글은 몹시 신랄했지만 나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는데, 욕의 대상은 월세 권리금이라는 새로운 개념 그 자체였고 도리어 내 사례는 합리적인 경우임을 인정하는 댓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딱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지만 내 이름 석자로 시작하며 내 방 사진이 떡하니 실린 기사가 나온 건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회사 앞 가판대에서 종이 신문을 사 보았다.
떠나는 날,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에 서 계신 주인 할아버지가 조용히 손을 흔들어 주셨다. 내가 대문 열쇠를 잃어버렸을 때면 언제든 대신 문을 열어 주셨고, 며칠씩 택배가 제자리에 있으면 꼭 전화로 안부를 물어 주셨다. 가끔 그 관심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타지에서도 어떤 울타리 안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이 좋았다.
그동안 많이 고마웠습니다, 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