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네 웃는 얼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
2017년 2월 12일. 첫 조카가 태어났다. 병원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꽃집을 찾은 나는 잠시 후 장미꽃 두 송이를 들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야... 이렇게 아픈 줄 알았으면 안 낳았을 거야.”
언니의 첫마디였다. 그 대사가 너무 강렬했던 탓에 내게 출산이란 한층 더 신비롭고 무서운 것이 되었다. 다행히 두꺼운 유리창 너머 간호사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는 전혀 원숭이나 외계인 같지 않았다. 너무나 작고 예쁜, 우리 언니의 딸. 나의 조카. 내 가족.
안녕, 아직 이름도 없는 아이야. 우리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쌓아 나가 보자. 이모가 기다릴게. 그렇게 마음으로 첫인사를 건넨다.
동물은 좋아하지만 아이는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반말을 써야 하는지, 짓궂은 장난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아이와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내심 조카가 그리 예쁘지 않으면 어쩌지, 어설프게 시늉이라도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웬걸. 나는 그 애가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났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내 모든 감정의 끝은 눈물샘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데, 심지어 눈물이 반응하는 역치 값은 너무나 낮다. 그러니 나는 기뻐도 슬퍼도 좋아도 싫어도 열이 받든 감동을 받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린다. 감정의 변화와 그에 따른 반응 속도도 엄청나서 15초짜리 CF나 길거리 표지판을 보고도 눈물샘은 터진다. 이 정도면 일상생활을 어떻게 할까 싶지만 의외로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나의 지나간 남자친구들 뿐인데, 애인 외의 모든 사람에게는 필사적으로 그 모습을 숨기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와 달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 감정은 훨씬 방어적으로 변한다. 눈물을 들키는 순간 약하고 여린,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게 싫어서이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미지는 오히려 피도 눈물도 없는 무심, 무뚝뚝의 아이콘에 가깝다.
그런데 어쩌지, 조카만 보면 자꾸 눈물이 난다. 이제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뭉클함이 자꾸 가슴속에 맴돈다. 이게 혈육이라는 걸까, 모성애 비슷한 건가. 남의 애도 이렇게 예쁜데 내 애라도 낳으면 울다 실신이라도 할 판이다. 조카의 존재로 인해 언니 집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는데 가끔 평촌에 가면 언니와 형부, 그리고 조카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완벽해 보였다. 침대를 잡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발걸음마다 박수를 쳐 주며 응원하는 엄마와 아빠. 자지러지게 웃는 해맑은 웃음소리... 이방인처럼 멀찌감치 식탁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들킬 새라 부지런히 눈물을 훔친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웃냐고. 너무 사랑스럽잖아.. 이건 반칙이야..
언니 집을 떠나 내 자취방을 향할 때면, 또 다른 의미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화목하고 따스한 온기가 내 집에는 없었으니까. 내게 언니는 모범 답안 같은 존재이다.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직장 다니다가, 좋은 사람 만나 오래 연애하다 적당한 때 결혼하고, 또 적당한 때 아이를 낳고… 언니의 정답지에는 나무랄 것이 없다. 그 온전한 인생, 보통의 가정을 쟁취한 언니가 눈물겹게 부러웠다. 평생 남다르고 싶다고 외쳤는데, 이제 와서 언니가 가진 평범함이 가장 특별해 보일 줄이야. 절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일까.
방을 구하다 보면 이전 세입자가 결혼해서 나간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게 된다.
“전에 살던 아가씨는 결혼해서 나갔어. 그러고 보니 그 전도 그랬고. 여기가 터가 좋은가..”
물론 나는 실패한 걸 보니 딱히 터가 좋아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사를 할 때마다 내심 기대를 했다. 아, 이 집이 내 마지막 자취방이 될지도. 아,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 되겠지. 상도동 집을 다 뜯어고칠 때도 그랬다. 여기서 딱 2년만 살고, 진짜 인테리어가 된 예쁜 신혼집으로 이사 가야지. 물론 이번에도 나는 헛다리를 짚었고 슬슬 마지막 자취방에 대한 헛된 기대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러다 정말 고양이를 키우는 1인 가구로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비혼과 비출산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이지만, 난 언제나 결혼이 하고 싶었고 심지어 아이도 여럿 낳고 싶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난 결혼 안 해!”를 외쳐본 적이 없다. 그런 애가 제일 먼저 시집간다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빈말로라도 해볼 걸 그랬지.
막연히 언젠가 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겠지, 생각해 왔지만 한 해가 지날수록 그건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에서 만난 첫 남자 친구와 결혼까지 한 엄마, 그리고 언니를 따라 나도 CC였던 남자친구와 결혼할 줄로만 알았건만.. 늘 새로운 걸 찾아 떠나는 내 성질을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꿈이었다. 엄마를 닮은 언니와 달리 나는 아빠를 닮은 것인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아빠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진다. 아빠, 엄마 만나기 전에 몇 명이나 만났어? 왜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어?
나의 자유로움이 부럽다며, 넌 결혼하지 말고 부자 이모로 남아 달라는 언니의 말이 얄밉다. 안 그래도 진짜 그렇게 될까 봐 무섭단 말이지. 일단 부자라도 되면 다행이긴 한데. 눈물겹게 사랑스러운 내 조카는 세상 제일가는 개구쟁이로 잘 크고 있다. 아무리 봐도 나를 쏙 빼닮았는데, 언니랑 형부는 뭐가 그렇게 끔찍한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질색팔색을 하며 고개를 젓는다. 말로만 호들갑 떨지 정작 자주 보러 가지도 않는 나는 랜선 이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역시 애는 멀리서 보는 게 가장 예쁜 법. 애기들하고 노는 건 여전히 내게 어려운 과제다.
그러니 빨리 쑥쑥 자라서 이모랑 엄마 욕도 하고 첫 남자친구 얘기도 하자. 이모는 너 술 먹일 날만 기다리고 있다. 벌써 말도 다 알아듣고 재잘재잘 떠드는 걸 보니, 금방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