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러 한 방이면 초미녀가 될 줄 알았는데

#27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초 외국계

by 신재

여초 외국계에는 그 당시 내가 생각하는 ‘높은 레벨’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를 다니며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고가 브랜드 옷을 입었고 해외여행을 일 년에 두세 번쯤 다녔으며, 명품 가방 몇 개쯤은 기본으로 있었다. 더군다나 전부 여자인 우리 팀은 모두가 화보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제각기 어울리는 메이크업과 액세서리, 의상과 구두를 장착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다르게. 어떻게 다들 저렇게 부지런하고 예쁘고 똑똑하지? 내가 처음 보는 부류의 사람들이 거기 잔뜩 모여 있었기에, 그 무리에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도 어떻게든 따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신경 써서 화장을 한 날은 귀신 같이 칭찬이 돌아왔다.


“와~ 오늘 무슨 약속 있어요? 너무 예쁘다!”


새로 산 옷을 입고 가도, 머리 스타일을 바꾸거나 눈썹을 조금 다듬어도 뭐든 재깍재깍 알아보고 반응해 주는 사람이 여럿이니 이보다 신날 수가 없다. 하지만 물론 그 반대도 각오해야 한다. 늦잠 때문에 화장을 제대로 못한 날은 백방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머 00님, 어디 아파? 얼굴이 너무 안 좋다.”


비슷한 또래가 여럿 모여 있으니 점심시간마다 이야기 꽃이 폈다. 애인부터 쇼핑, 화장품, 맛집 등 주제는 다양했는데 그중 가장 새로웠던 것은 성형 관련 정보였다.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직 미용을 목적으로 성형 혹은 시술을 받고 있었고 그 세계에서 그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돈도 아깝고 부작용이 무섭기도 해서 나랑은 거리가 먼 얘기라 생각했으나 한 번 두 번 듣다 보니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울을 보면 부족한 부분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난 왜 이렇게 비대칭이 심하지?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여드름이나 나고…’


그렇게 처음 피부과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족히 천만 원은 갖다 바쳤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미 써버린 돈이니, 그 덕분에 더 나빠지진 않았을 거라고 위안을 삼는 수밖에. 그 돈을 들여놓고도 ‘너 피부 좋아졌다’ 한 마디를 못 들은 건 좀 억울하긴 하다. 사실 피부는 워낙 타고나는 게 크니 그렇다 칠 수 있지만, 진짜 시술을 받았을 때도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가 거의 무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턱에 필러를 넣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음먹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데 비해 필러 시술은 정말 저렴하고 빨랐다. 마취되어 아무 감각이 없는 턱에 주삿바늘로 필러를 밀어 넣고, 찰흙을 만지듯 조물조물 빗어 모양을 잡는다. 그러면 끝! 10분이나 걸렸으려나. 상담 실장님이 “필러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어요~”라고 확신에 찬 말투로 말한 것처럼, 정말 너무나 간단하고 별 것 아닌 일이었다. 거울을 보니 아주 미묘하게 예뻐진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세련돼 보이기도 하고. 나름 만족하며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다음 날, 놀랍게도 아무도 나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콕 집어 “턱에 필러 맞았어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 왜 평소보다 예뻐 보이지?” 라든가 “요즘 다이어트해요?” 정도의 반응은 돌아올 법 한데.... 속눈썹이 1mm만 길어져도 칼같이 눈치채는 사람들인데, 턱에 들어간 1cc의 필러에는 해당사항이 없나 보다. 누군가 조금만 아는 척을 해주면 사실 턱에 필러를 맞았노라 이실직고하고 그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울 셈이었는데, 서운하게도 이 사실이 밝혀지는 일은 영영 없었다. 비단 회사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 친구도 내 얼굴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가족이나 친구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내가 볼 땐 확실히 달라진 것 같은데, 이상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 턱 필러는 그나마 오래가지도 못했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더니, 얼마 못 가 턱부터 시작해서 얼굴 전체가 뒤집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짜도 짜도 끝이 없는 좁쌀 여드름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한 달 만에 다시 병원에 찾아가 맞을 때보다 더 비싼 돈을 내고 필러를 녹여야만 했다. 그러고도 뒤집어진 피부가 돌아오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필러를 제거한 이후에도 “뭔가 달라졌는데…”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정작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작은 변화 때문에, 나 혼자 집착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얼굴에 이물질을 넣었다 뺐다 하는 수고와 돈을 들인 것이다. 거기다 피부는 더 나빠졌고 말이다. 내 이목구비가 몇 mm 달라졌다고 해서 사람들은 나를 특별히 더 예쁘다거나 더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가까스로 외모에 대한 집착에서는 벗어났지만 더 큰 고통은 따로 있었다. 외국계는 금수저들만 들어올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가 참 유복해 보였던 것이다.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처럼 나는 가끔 그들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힘에 부쳤다. 금슬 좋고 노후가 보장되어 있는 부모님,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엄마 카드 찬스, 연애한 지 오래된 능력 좋은 남자 친구…. 모두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데 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질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단 한 번이라도 시기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너무나 무해하고 순수한, 착한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시커먼 마음으로 그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는 내가, 가장 가증스럽고 역겨웠다.


백로들 사이에 껴 있으면 까마귀도 하얗게 물들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회색 빛 정도는 됐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한 회사에서 오래 경력을 쌓고, 나와 비슷한 회사를 다니는 남자를 만나 제때에 결혼하고, 육아 휴직을 했다 무사히 돌아오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교육비도 지원받고, 머리가 희끗해졌을 때 정년퇴임을 하는… 그렇게 좋은 회사와 오래 함께하는 그들의 삶이 어쩌면 내 삶이 될 수도 있으리라, 나도 몰래 조용히 열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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