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으면 굿을 하라구요?

#28 됐어요 돈이나 많이 벌래요

by 신재

손금이든 타로든 사주든 신점이든, 내가 항상 물어보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결혼, 즉 남자에 대한 운이고 다른 한 가지는 꿈, 즉 글쓰기에 대한 운이었다. 재미있게도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돌아오는 대답은 신기할 정도로 한결같다. 우선 글 쓰는 건 재주도 있고 운도 따라 준단다.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빛을 발할 수 있으니 절대 그만두지 마라고. 반면 남자 복은 지지리도 없는 모양이다. 이상한 놈이 많이 꼬이니 많이 만나 보고 최대한 늦게 가라는 건 기본, 이혼수가 세서 연애도 잘 안 풀리니 굿을 해야 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믿느냐 마느냐는 나의 자유지만, 그 두 가지가 한 쌍으로 붙어 다니는 거라면 나는 믿는 쪽을 택하겠다. 팔자가 먼저인지 성격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애초에 남자를 비롯해서 누구에게든 기댈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비빌 언덕만 있다면 왜 치대고 싶지 않겠는가. 그저 살아보니 그런 운은 나에게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존 본능처럼 터득하게 된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자라서일까, 부모님 돈 쓰는 게 늘 죄스러웠다. 엄마가 새 mp3 사줬어, 아빠한테 나이키 사달라고 해야지. 그런 말들이 내게는 한 번도 당연했던 적이 없었다. 수학여행이나 급식을 포기해야 할 정도도 아니고 부모님이 나에게 딱히 눈치를 준 것도 아니지만 그냥 혼자서 그렇게 유난을 떨었다.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대단한 자린고비로 통했는데, 말도 몇 마디 섞어본 적 없는 반 친구가 ‘고상한 짠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방학 때 알바를 한 돈으로 학기 중 생활비를 충당했다. 아, 애초에 내가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그 대학에 간 이유 중 하나도 장학금을 많이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4년간 학교에 들어간 돈이라고는 기숙사비가 전부였다. 나의 오랜 짠순이 습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참 이어졌는데, 그나마 연봉이 오르기 시작한 이후부터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자린고비인 것이 자랑스럽거나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대로 너무나 싫었다. 가령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정산을 할 때, 고작 몇 백 원 차이로 마음이 무거웠다 가벼웠다 하는 나 스스로가 그렇게 구질구질할 수 없다. 가끔 택시를 타면 미터기의 말발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식당에서는 제일 저렴한 메뉴에 눈길이 먼저 가며, 누군가 밥을 먹자고 해도 ‘누가 계산하는 거지..?’가 먼저 떠오르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그때 내 눈에는, 동생이라고 턱턱 밥도 사고 커피도 사고 차비까지 챙겨 주는 윗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였다. 그래서 나도 조금씩 여유가 생길 때마다 그들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후배들이 놀러 오면 밥도 술도 사주고, 취준생 친구한테 나 돈 버니까 걱정 말라며 크게 한 턱 쏘고, 택시 기사님한테 잔돈은 괜찮다며 손사래도 쳐보고… 그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돈 쓰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다니. 이제는 더치페이할 때 쿨하게 반올림해서 보내버리는 내가 제일 멋지다.


그렇게 돈 쓰는 맛을 알아버린 나는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마음에 여유도 생긴다는 말에 백 번 천 번 동감한다. 당장 내가 굶어 죽게 생겼는데 남을 돌본다는 게 애당초 말이나 되나.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돈을 많이 벌어야지, 크게 성공해야지, 지금보다 더 큰 허세를 펑펑 부리면서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한껏 행복하게 해 줘야지.. 그런 생각이 머리 깊숙이 박힌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점쟁이는 내겐 부모도, 형제도, 남편도, 친구도 그야말로 덕 볼 곳이 아무 데도 없으니 자수성가할 생각을 하란다. 내가 오히려 주변을 먹여 살려야 할 형국이라고.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땐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그게 정확히 내가 지향해 오던 미래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 그냥 하던 대로 꿋꿋이 밀어붙이기로 한다. 남자에 대한 기대는 고이 접어두고.


그렇지만 그게 어디 접는다고 쉽게 접히는 것이던가. 해가 갈수록 결혼 평균 연령은 높아진다는데, 내 주변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지 가까운 친구들은 너도 나도 우르르 시집을 가 버린다. 나는 결혼식만 보면 그렇게 눈물을 흘린다. 가장 벅찬 순간은 신부가 입장할 때인데, 생전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서도 눈물을 훔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진심 어린 축하보다는 ‘나도 저 자리에 서는 날이 과연 오긴 할까’ 싶은 자아 성찰에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나보다 연애 경험도 없고, 늦게 갈 거라 생각했던 이들까지 앞다투어 결혼을 해버리니 덩그러니 홀로 뒤처진 기분이다. 내가 아무리 감상적인 사람이라지만 사랑이 영원할 거라거나 결혼이 신성한 것이라고 믿는 쪽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데 일단 남들 다 하는 거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꼭 닮은 자식을 낳고 싶다는 제법 현실적인 이유에서 결혼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는 세상에서 제일 비혼일 것 같은데 반전이네”, 그런 소리도 참 지겹게 들었다. 아니, 팔자 펴 줄 왕자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묵묵히 따라와 줄 머슴 정도는 나도 바랄 수 있는 거잖아요.




서른 전에 결혼하는 건 글렀으니, 서른 초반에라도 가려면 지금 만나기 시작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다시 남자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친구의 남자 친구부터 회사 팀장님까지 그야말로 주변 모든 사람을 거쳐 대대적인 소개팅이 재개되었으나 성과는 미진했다. 내가 특별히 까다롭거나 눈이 높은 게 아닌 것 같은데도 그랬다. 원하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그냥, 나랑 비슷한 사람. 도대체 이 넓은 세상에 왜 나랑 톤이 같은 남자 한 명이 없는 걸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누가 봐도 “끼리끼리 만났네” 싶을 정도로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많이 바라는 걸까?


내 팔자에 역시 좋은 남자란 없나 보다,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 해야지 하고 나간 마지막 소개팅에서 그다음 남자 친구를 만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전혀 닮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세속적인 기준으로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고 나에게 무척 적극적이었던 터라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