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이 싫어 결혼을 생각했다

#30 자취의 다음 단계는 과연 결혼 뿐일까

by 신재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때 결혼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심심해서였다. 심심해서 결혼을 한다니 그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겠지만 찬찬히 뜯어볼수록 그랬다. 당시 나는 홀로 원룸에 살아야 하는 자취 생활에서는 만렙을 찍은 상태였다. 월세에서 전세로 넘어왔고, 집은 신축에 위치도 좋았다. 이보다 더 좋은 자취방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4년 전 서울에 처음 올라올 때만 해도 환상과 모험으로 가득해 보였던 자취 생활이, 이제는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한 레벨을 클리어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가 된 것이다. 사회가 제시하는 답안지는 바로 결혼이었고, 나는 이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 이제는 결혼을 할 단계라며 스스로를 옥죄이고 있었다.




온기가 없는 텅 빈 집에 들어와 혼자 대충 밥을 차려 먹는 것도 지겨웠지만 가장 간절했던 것은 더 크고 더 좋은- 그러니까 원룸이 아닌 넓은 집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집에 피아노도 있었으면 좋겠고, 요즘 유행이라는 건조기도 갖고 싶고, ㄱ자의 넓은 주방도 갖고 싶고, 넓은 거실에서는 호동이가 미끄러지도록 뛰어다녔으면 좋겠고… 물론 혼자서라도 그런 집에 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람과 헤어졌을 때 가장 아쉬웠던 건 못다 한 사랑 따위가 아니라, 넓고 예쁜 집을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기회가 홀랑 날아갔다는 사실이었다. 아, 진짜 거의 다 왔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오직 내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혼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전 남친의 허술함 덕에 나는 인생 최대의 위선자가 될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 만일 그 사실을 끝까지 모르는 채 어영부영 결혼이라도 했으면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아찔하다. 그렇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결혼이 코 앞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에 놓쳐버리고 나니 허무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다. 아, 정말 나는 어쩌면 결혼이라는 걸 못 할 수도 있겠구나- 이제야 뼈저리게 실감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내 인생에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결혼이라는 문이 쾅 닫히고 나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다른 문이 끼이익, 틈새를 드러낸 것이다.


본래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공동체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언제나 적극적으로 나서 동아리를 이끌었을 만큼 어떤 무리에 속해 소속감을 느낀다는 건 내게 무척 중요한 가치이다. <프렌즈>나 <청춘시대> 같은 드라마를 보며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열망하기도 했다.


실제로 대학교 4년 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룸메와 불화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어쩌면 운이 좋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아무튼 나는 그럭저럭 남들과 무던하게 잘 어울리는 성향인 것이다. 침대, 책상, 옷장으로 꽉 찬 손바닥만 한 기숙사 방에 살면서도 불편하다는 생각,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그보다는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룸메가 방에 있었으면, 주말에 집에 가지 않고 나랑 같이 있어 주었으면, 그런 생각들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 나였으니 자취방을 옮길 때마다 셰어하우스를 알아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호동이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뿐더러 기존의 셰어하우스들은 나의 상상과 많이 달랐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것처럼 청춘들이 함께하는 그곳에는 사랑과 우정과 꿈과 희망이 부대끼고, 우울함과 분노, 외로움은 등장하기 무섭게 스리슬쩍 자취를 감출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마주친 셰어하우스의 인상은 오직 금전적인 이유로 공간을 비좁게 나눠 쓰고, 옆 방 사람의 이름도 모른 채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갇혀 보내는 삭막한 장소에 가까웠다. 최대한 조용히, 피해 가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서로의 개인 공간을 존중해 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그런 장소. 그렇게 실망을 맛본 이후로 한참 뒷전으로 밀려 있던 셰어하우스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번뜩 스쳤던 것이다.


‘큰 집에 예쁜 가구, 혼자가 아닌 삶.. 잠깐, 내가 직접 셰어하우스를 차리면 어떨까?’


결혼보다 훨씬 매력적인 답이 거기 있었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찾아 밤새 탐독했다. 셰어하우스 말고도 코리빙, 코하우징, 공유 주택, 컬렉티브 하우스 등등 타인들이 함께 어울려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다양한 주거 형태가 존재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그와 관련된 모든 책들을 검색해 바로 주문했다. 생각보다 흔한 주제가 아닌지 스무 권이 채 못 되었다. 바로 그다음 날부터 한 두 권씩 책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나는 출근 버스에서 한 권, 퇴근 버스에서 한 권. 최소 하루 두 권 씩 착실하게 읽어 내려갔다.




일주일이 되지 않아 모든 책을 완독한 나는 이미 셰어하우스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셰어하우스를 차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큰돈이 들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내가 실행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는 정도였다. 어느새 이별의 아픔은 훌쩍 자취를 감추고, 넘실대는 엔도르핀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