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구상부터 오픈까지, 딱 43일

#31 나만의 꿈의 집을 완성하다

by 신재

점심시간에는 은행에서 대출을 알아보고, 퇴근 후에는 적당한 매물을 찾아 나섰다. 집에 와서는 노트를 펴놓고 셰어하우스 컨셉과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이 집이다” 싶은 매물을 만났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동네인 상도동에 위치한 신축 빌라였는데, 방이 세 개에 화장실이 두 개이고 각 방의 크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아이가 두 명 있는 가정집이라 잘 꾸며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수선했지만, 집 전체에 따스한 온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구석구석 둘러보며 여자 다섯 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사는 삶을 그려 보았다. 완벽했다.




그래도 막상 덥석 계약하기란 겁이 나는 일이라 더 고민해 보겠다며 돌아갔는데, 그 집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잠이 오질 않았다. 늦은 새벽에야 간신히 잠들었더니 꿈속까지 쫓아왔다. 다음 날 하루 종일, 혹시 다른 사람이 그 집을 채갈까 봐 초조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 바로 부동산에 연락해 내가 계약을 하겠다며 허겁지겁 예약금을 걸었다.


두 번째 대출은 첫 번째보다는 한결 수월했지만 서류에 사인을 할 때 손이 덜덜 떨렸다. 이로써 내 앞에 쌓인 빚은 통산 1억이 훌쩍 넘는 것이다. 직장인 대출의 금리는 전세 대출보다 두 배쯤 높았고, 새로 계약한 집의 월세 90만 원도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갈 것이었다. 너무 일을 크게 벌리는 것 아닐까, 내가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오만 생각을 하다 보면 숨통이 턱 막혔지만 이미 한 번 꽂힌 이상 난 이걸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 해보고 안 되면 접으면 그만이지. 대출은 보증금으로 갚으면 되고 월세 몇 백 정도야 인생 경험 치고는 저렴한 편 아닌가? 하자. 하고 싶은 건 해야지!’


얼마 후 이삿날, 빈 집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하얀 전자피아노였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 피아노 한 대. 그걸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고민하며 벌써부터 행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바라던 대로. 환상 속의 그 집은 내 손 끝에서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노가 처음 들어왔던 날, 그리고 한 달 후

큰 집에 가면 피아노를 꼭 놓고 싶다던 로망을 드디어 실현했다. 어렸을 때 조금 배웠을 뿐 피아노는 사실 잘 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없어서 못 치는 것과 칠 수 있는 데 안 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뭐 나는 아니더라도 새로 올 누군가 한 명쯤은 잘 치겠지, 집 안에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면 참 좋겠다. 그 바람은 불과 한 달 후 바로 현실이 된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침대… 큼지막한 것들은 중고로 산다고 해도 나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매일 인터넷으로 적게는 몇십, 크게는 몇 백을 긁고 퇴근하면 집 문 앞에 쌓인 택배 더미를 수거하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변의 누구에게도 셰어하우스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택배 기사가 문 앞에 두고 간 옷장 다섯 개를 끙끙대며 들여다 놓고, 거대한 종이 상자를 뜯고, 조립에 몰두하다 보면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매일 집에 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책상, 의자, 책장, 화장대, 선반 등 그야말로 어느 것 하나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나중에는 조립 설명서를 볼 필요도 없이 척척이었다. 그렇게 저녁도 잊고 정신없이 일하다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호동이가 기다리는 연희동으로 돌아가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런 생활이 3주쯤 이어지자 어느 정도 집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거실에는 티비와 소파 대신 커다란 6인용 식탁과 모두 다른 디자인의 의자 다섯 개를 놓았고, 한쪽 켠에는 푹신한 안락의자와 협탁을 놓았다. 성격도 취향도 제 각각일 다섯 명이 이 공간에서 함께 밥도 먹고 휴식도 취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한 가족의 공간에서, 셰어하우스의 공간으로-

부엌 벽 한 면을 차지한 주황빛 모자이크 타일은 집 전체에 온기를 더했다. 두 개의 2인실과 하나의 1인실은 각 방의 특성에 맞는 가구로 채워졌는데, 게스트하우스처럼 잠깐 들르는 곳이 아니라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진짜 ‘집’의 느낌을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화이트 우드 톤의, 포근하고 따뜻한 셰어하우스가 완성되어 갔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 내가 처음 ‘셰어하우스를 차려볼까..?’ 하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첫 입주자를 받을 때까지 걸린 기간은 딱 43일이었다. 불과 두 달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내 인생에 엄청나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남들 다 한다는 이유로 무의미한 결혼을 하려 했던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다른 쪽으로 돌아섰다. 그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새로운 길,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 만으로 심장은 쿵쿵 뛰었다.


이럴 때, 인생은 내게 너무나 즐거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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