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32 '셰어하우스 선녀방'의 탄생

by 신재

인테리어만큼, 아니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름이었다. 금전적인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더 행복해지고 싶어 차린 셰어하우스인 만큼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을 채워 줄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 건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재미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 화끈한 사람..?


‘… 착한 사람,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이랑 같이 살고 싶다.’


그중에서도 ‘선하다’는 표현에 마음이 확 꽂힌다. 선한 사람들, 선한 여자들이 사는 곳이라…


그렇게 ‘셰어하우스 선녀방’이 탄생했다.




선녀방의 슬로건은 ‘나에게, 타인에게, 세상에게 선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정했는데, 말로만 생색을 내는 대신 선녀방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만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싶었다. 고민 끝에 ‘착한 선서문’을 만들고 입주할 때 동의 서명을 하면 관리비를 만 원 할인해주는 정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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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항목은 본인이 직접 어떤 선한 일을 할지 고민해 써넣도록 구상했다. 물론 나 역시 완벽하게 지키기 힘든 내용들이고 이를 어긴다고 해서 돈을 다시 뱉어내라고 하진 않겠지만, 한 번씩 환기를 하는 것 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이 곳이 그런 착한 공동체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선녀방 홍보를 위해 블로그를 재정비하고 인스타 계정도 만들었다. 그럴듯하게 찍은 사진과 함께 애정을 가득 담은 소개 글을 여기저기에 올리니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첫 번째 연락이 왔다. 이 큰 집에 나와 호동이 단 둘만 살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바와 달리 문의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얼마 되지 않아 첫 입주자들이 모두 정해졌다.


10월 말에 집 계약을 했고 약 한 달 동안 집을 꾸몄으니, 12월 첫 입주자가 들어올 때까지 약 일주일의 시간이 남았다. 그 일주일간 나는 주변 사람들을 모두 초대하기로 한다. 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동기들, 회사 사람들… 대대적인 집들이가 시작되었다. 주변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이런 일을 벌이다니 진짜 간도 크다” 그리고 “남이랑 같이 사는 거 불편하지 않겠냐”. 셰어하우스가 완성되고 입주자가 정해지기 전까지 내가 대다수 주변에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내 마음은 확신으로 가득한데, 주변 사람들이 별 의미 없이 한 두 마디씩 얹는 말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생각해서 걱정하고 조언해 주는 고마운 마음이야 알지만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나 스스로를 더 잘 아니까 애초에 논란의 여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레 가장 많이 걱정하고 가장 많이 잔소리할 우리 가족은 이 사실을 가장 늦게 알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셰어하우스 오픈 사실을 알리기 위한 나의 계획은 이랬다. 마침 엄마의 생일 파티 때문에 서울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는데, 선녀방으로 초대하기로 한 것이다. 언니와 형부에게는 이 사실을 미리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평소와 달리 음식점이 아닌 웬 집 주소를 알려주며 이리로 오라니 부모님은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큰 의심은 하지 않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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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뭔가 기대는 하라고 내가 큰 중대 발표를 하겠다는 사실만 밝혀 두었는데, 결혼, 임신, 이직, 퇴사 등 엉뚱한 추측만 흘러나와 한층 더 나를 즐겁게 했다. 하기야 회사 잘 다니고 있는 막내딸이 갑자기 셰어하우스를 차렸으리라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는가.


“엄마, 내가 엄마를 위해서 오늘 하루 이 집 빌린 거야~ 좋지?”


선녀방에 발을 들여놓은 엄마와 아빠는 영 어리둥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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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그런데… 왜 호동이가 여기 있니? 이건 엄마가 택배 보내준 거 아니니?”


역시 엄마는 예리하다. 전날 끓여 놓은 미역국과 주문한 아귀찜을 대접하며 사실 내 집이다, 다음 달부터 여러 명과 함께 살 거다 사실을 밝히니 깜짝 놀란다. 보증금은 어떻게 구했냐부터 집 꾸미는 데는 얼마가 들었냐, 정말 같이 산다는 사람이 있냐 등등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몰래 큰 일을 벌였냐고 서운해도 하시지만, 만일 내가 진작 말했더라면 걱정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이루셨으리라. 자녀가 그저 평범하고 무난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건 모든 부모의 바람인가 보다. 애석하게도 나는 확실히 그런 딸은 못 되었다. 고맙게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가족들은 나를 인정해 주었다. 이제는 보란 듯이 잘 살 일만 남은 것이다.




"직접 한 번 살아보면 환상이 깨질 걸? 드라마에서 보던 거랑 완전 다를 거야"


셰어하우스 오픈 사실을 알린 이후로 부정적인 이야기로 겁을 주는 이들도 많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느낌을 더 믿었다. 그들이 살 곳이 아니라 내가 살 곳, 내가 어울릴 사람들이니까. 이 넓고 넓은 세상에 나처럼 혼자 사는 삶이 지겹고, 고양이를 좋아하고, 집 같은 집에서 선한 사람들과 살아가고 싶은 누군가가 최소한 네 명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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