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쉐어하우스의 흔한 일상

#33 여자 다섯 더하기 고양이 하나

by 신재

처음 선녀방을 채워 준 건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동갑내기 친구와, 캐나다에서 미술을 공부하는 휴학생 동생이었다. 2018년 12월 2일. 둘이 동시에 들어온 그 날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선녀방 와이파이 비밀번호로 지정해 놓기도 했다. 처음은 언제나 특별한 건지 아니면 단 세 명이라 관계의 밀도가 더욱 높았던 건지, 나한테는 그들이 참 애틋했다. 큰소리를 쳐 놓긴 했지만 과연 셰어하우스 생활이 괜찮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둘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멋진 하우스메이트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여러 가지를 알게 된다. 과거 숱한 연애사부터 가족 관계, 미래의 꿈까지- 어느새 절친보다도 더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셰어하우스 이름을 ‘선녀방’이라고 짓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할 만큼, 선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두 친구는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제각기의 사정으로 선녀방을 떠나가야 했지만, 함께했던 순간의 진정성은 사라지지 않기에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멀리서나마 서로를 응원한다. 임용고시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을 때 버스 안에 있던 나는 바쁘게 눈물을 훔쳤다. 함께 사는 동안 매일 같이 옆에서 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얼마나 간절했는지 봐 왔기에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낼 수 있었다.

계속해서 선녀방은 좋은 사람들로 채워졌고 대부분은 취직을 한다거나 전셋집으로 옮긴다거나 하는 좋은 이유로 떠나갔다. 한 명 한 명이 떠날 때마다 아쉬움은 숨길 수 없지만 슬퍼하지는 않으려 애썼다. 이 곳은 그저 우리를 만나게 해 준 하나의 계기일 뿐, 인연은 얼마든지 계속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한 명이 떠난 다는 건 또 다른 한 명이 들어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멋진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들어올까-,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건 언제나 설렌다.


대부분 셰어하우스의 최소 계약 기간은 6개월인데 선녀방은 3개월로 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어차피 마음 맞는 사람은 더 오래 있기 마련이니 굳이 계약일 때문에 버티는 마음으로 지내는 사람은 없었으면 했다. 3개월은 서로를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니 일단 적응된 후에 더 살지 나갈지를 선택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평균적으로 반년 이상은 살다 나갔지만 간혹 그 3개월조차 참을 수 없이 길게 느껴졌을 하메들도 있었으리라.


맹세코 선녀방에 왔던 친구들 중 나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다섯 명이 모이면 통계상 한 둘 정도는 서로 안 맞을 수 있기 마련인가 보다. 셰어하우스에 오는 친구들은 대부분 취준생이나 사회초년생이기에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많다. 맏언니인 내가 볼 땐 이 친구도 참 착하고 저 친구도 참 귀여운데, 그 둘이 마주치기만 하면 챙챙 불꽃이 튀니 참 알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런 경우엔 결국 더 섬세하고 예민한 쪽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셰어하우스를 나가는 것이다. 둘이 그냥 다툰 거라든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거라면 나서서 중재를 하겠지만 그냥 사람 자체가 안 맞는 거니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존재만으로 큰 스트레스였던 사람이, 또 다른 이에게는 더없이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는 걸 보면 인간관계란 참 어렵고도 신기하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뤼

집주인으로서 관찰자의 시점을 고집하며 모두와 순조롭게 잘 어울리려 노력했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이유는 주로 술 때문이었다. 당시 개인적인 일 때문에 술자리가 잦았는데 취했으면 곱게 들어와서 자면 될 것을 룸메이트의 단잠을 깨울 만큼 야단법석을 피운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내 행패는 기억에 남아 있질 않았다.


“언니, 오늘 술 마시면 조용히 들어와 줄 수 있어요..? 지난번에 언니가 불 켜고 문 쾅 닫아서 새벽에 깼거든요.. 부탁 좀 할게요.”


내가 진짜 그랬냐며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똑같은 짓을 반복 하진 않았지만 다른 식으로 어떻게든 소동을 부렸던 것이다. 한 번은 늦은 밤 들어와 걸쇠를 야무지게 걸어 잠그고 잔 적이 있다. 한 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는데, 다음 날 핸드폰을 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알고 보니 나보다 더 늦게 들어온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하필 그 날 아무도 깨지 않은 덕에, 그 친구는 결국 집 근처 찜질방에서 선 잠을 자야 했다.


가장 큰 사건은 내가 새벽에 들어오며 문을 바로 닫지 않아 호동이가 집을 나간 거였다. 적어도 삼십 분쯤 밖에 있었으리라. 씻고 나서야 호동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나는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 부산을 떤 탓에 하나 둘 잠이 깨서 함께 찾기 시작했는데, 그냥 어느 구석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아무 데도 없는 것이다. 점점 술이 깨고 피가 차갑게 식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집 밖으로 나갔는데, 다행히 건물 현관 유리문 앞에서 호동이는 발견되었다. 사람이 없는 새벽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내 실수로 호동이를 잃어버릴 뻔하다니, 죄책감과 자괴감이 쏟아져 호동이를 얼싸안고 한참을 대성통곡했다.

모두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호동

결국 내 다양한 술주정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받은 첫 룸메는 예정보다 일찍 집을 나갔다. 그 친구에게는 이 집이 선녀방이 아닌, 악녀방이었으리라. 당연히 그 친구는 나간 이후 연락이 끊겼다. 내가 지은 죄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어야 할 집을 술주정뱅이의 소굴로 만들어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 이후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고 선녀방 친구들에게 술주정 민폐를 부리는 일은 없었다. 새벽에 들어올 땐 살금살금 발끝으로 걷고 핸드폰 플래시 아래 옷을 갈아입은 뒤 슥, 조용히 침대에 들어가 눕는 스킬을 이제야 습득한 것이다.




운영한 지 일 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 열 명이 넘는 친구들이 선녀방을 거쳐 갔고 대부분의 인연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나와도 그렇지만 그들끼리도 낯선 서울에서 찾아낸 소중한 친구가 되어 만남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 환영회, 송별회, 영화 감상, 보드 게임, 크리스마스 파티, 생일 파티… 다양한 구실로 선녀방에는 여전히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거실을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행복해진다. 바닥에 드러누워 호동이의 꾹꾹이를 받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또 행복해지고,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된장찌개 냄새와 함께 나를 반겨주는 얼굴들을 보면 나는 많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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