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인생의 큰 기로에 서다
내 앞에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첫 번째, 홍콩에서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
두 번째, 다른 외국계 SCM 경력직으로 이직하는 것.
세 번째,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
그야말로 서른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인생의 중대한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것이다. 세 가지 모두 진지하게 고려될 만큼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늘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문제이지, 그 반대인 적은 없었다.
회사 사람들 중에서는 홍콩에 무조건 가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 기회가 어디 흔한 줄 아냐며, 자기 같으면 무조건 감사합니다 하고 달려갈 거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또 흔들렸다. 제안받은 조건도 나쁘지 않았고, 영어 실력이 느는 건 물론 내 인생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해지겠지. 홍콩의 높은 빌딩에서 다양한 국적의 팀원들과 함께 일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면 너무 멋져서 가슴이 뛰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도 꽤 괜찮은 옵션이었다. 대리급이니 딱 적당하게 경력도 쌓였고, 무엇보다 착실하게 회사를 다니면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할 테니까. 이력서를 올려놓자 헤드헌터들에게 연락이 쏟아졌다. 내가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세상은 넓고 좋은 회사는 많았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일단 면접이라도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정성껏 업데이트해서 여기저기 뿌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항목은 가장 불확실하지만 매력적이었다. 일단 취미 삼아 시작한 브런치 작가 활동이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셰어하우스 선녀방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글도 쓰면서 셰어하우스를 사업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간 운영 노하우가 쌓이기도 했고, 다른 셰어하우스와 확고한 차별점이 있기에 제대로 마음먹고 시작하면 몇 개월 만에 지금 월급 정도는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하는 자신이 있었다.
많은 고민 끝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선택은 고사하기로 했다. 모든 걸 뒤로 하고 해외로 떠날 만큼 나는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또 막상 면접을 보다 보니 내가 이 일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와 닿았다. 나는 오직 그 회사, 그 사람들이 좋아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에 SCM이란 다시는 없는 것으로 확고하게 마음을 굳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뿐인데, 인생은 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다. 창업 정보를 찾다 스타트업 관련 사이트에 프로필 업데이트를 했더니 여러 곳에서 면접 제안이 오는 것이다. 대부분 마케팅 관련 분야로 몇 년 전 영화사에서의 짧은 경력보다는 브런치와 선녀방 운영 경험 덕이 큰 듯했다. 막연하긴 하지만 한 번쯤 스타트업에서 일해보고 싶긴 했다. 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함께 회사를 키워가는 경험이 꼭 필요할 것도 같았고. 그래서 제안이 오는 대로 모든 면접을 보기로 한다.
세상에 이렇게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다니-. 대부분 스타트업 대표들은 내 또래였고 나는 감히 명함을 내밀지도 못할 만큼 부지런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온 듯 보였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만족하며 사는 샐러리맨의 세계에 흠뻑 젖어 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 다양하구나 싶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이미 내가 많이 뒤처진 것 같아 조급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여러 곳과 대화를 나눈 끝에 나의 다음 여정을 어느 한 회사와 함께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만나본 곳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대표가 운영하는 여행 플랫폼 사업이었는데, 구상한 지 몇 년 되어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이었고 내가 맡게 될 일도 몹시 흥미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대표의 화려한 경력과 뚜렷한 비전이 믿음직스러웠다.
“스타트업? 어휴, 거기 뭐 월급은 제대로 준대?”
“네? 지금보다 더 많이 주던데요?”
전 회사에 그렇게 말하고 나올 수 있어 속이 다 시원했다. 스타트업이다 보니 당연히 훌쩍 낮아질 월급을 각오했는데 오히려 월 실수령액은 조금 더 높아진 것이다. 물론 성과급까지 고려하면 연봉 자체는 낮아졌지만,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직원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는 대표라면 일 년 후가 걱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회사의 입사일이 확정되고 나서야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는 말에 홍콩 권유, 스타트업, 급여 인상 같이 듣기 좋은 단어들만 쏙쏙 골라 나열했다. 쫓겨나는 게 아니라 오직 내 의사만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린 것처럼 둘러댄 것이다. 물론 과정은 참혹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나에게 정말 잘 된 일이었다. 등을 떠밀리지 않았다면 나에게 더 맞는 일을 찾아낼 시도 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어느새 아쉬움은 저 멀리 사라지고 퇴사일이 애타게 기다려졌다. 하루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실업 급여를 받으며 당분간 쉬어갈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는데, 바로 출근을 해야 하니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새 회사에서는 최대한 빨리 나와달라고 했지만 그랬다간 내가 펑 터져버릴 것만 같아 열흘의 여유를 간신히 지켜냈다. 그 소중한 열흘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산으로 갈까 강으로 갈까 한참을 고민하다 역시, 바다로 떠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