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 왕초보가 바다에서 얻는 것
#37 원래 여행은 혼자 가야 제맛
3박 4일, 양양으로 홀로 떠난 서핑 여행. 직장 동료에게 정보를 얻어 서핑 샵도 예약하고 서핑 카페에 가입해 내려가는 카풀을 허겁지겁 구했다. 올라오는 차편은 아직 못 구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서핑이라고는 호주에 있을 때 딱 한 번 배워봤던 게 다였다. 그나마 그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보드 위에 올라서지 못했었다. 어느새 서른이 된 나는 과연 물 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보란 듯 성공해 그 시절 어린 나에게 위안을 건네고 싶었다.
납작하게 배를 보드에 대고 엎드린 채, 시선은 오직 정면을 향하기- ⠀⠀
”Push..!” ⠀⠀⠀⠀⠀⠀⠀⠀⠀⠀⠀⠀ ⠀⠀⠀⠀⠀⠀⠀⠀⠀⠀⠀⠀ ⠀⠀⠀⠀⠀⠀⠀⠀⠀⠀⠀⠀ ⠀⠀⠀⠀⠀⠀⠀⠀⠀⠀⠀⠀ ⠀⠀⠀⠀
쏴아아-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힘차게 나아가는 보드, 코치의 목소리에 맞춰 상반신을 들어 올리고.. ⠀
“UP!!!” ⠀⠀⠀⠀⠀⠀⠀⠀⠀⠀⠀⠀ ⠀⠀⠀⠀⠀⠀⠀⠀⠀⠀⠀⠀ ⠀⠀⠀⠀⠀⠀⠀⠀⠀⠀⠀⠀ ⠀⠀⠀⠀⠀⠀⠀⠀⠀⠀⠀⠀
몰아치는 파도에 섞여 아득하게 들려오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힘찬 테이크 오프-
그리고 또다시 추락, 추락, 파랗고 하얗고 검은 바닷물 속으로의 끝없는 곤두박질. 중심을 잃고 뒤집힌 보드 밑 세상은 잔혹하다. 코는 얼얼 귀는 먹먹, 발목의 리쉬 코드는 족쇄요 그 끝에 매달린 보드는 날 위협하는 장애물일 뿐.
바닷물인지 눈물인지 구분 안 가는 짭짤한 물이 입안에 가득할 때쯤 다행히 우뚝 보드 위에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 그 맛에 빠져 하루를 더 늘려 떠나는 날까지 4일 내내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혼자서 파도를 잡는 건 역시나 어려웠다. 온몸엔 멍이 들었고 아무리 선크림을 치덕치덕 발라도 얼굴과 손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렇지만 사실 그냥 보드 하나에 의지해 드넓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혼자 온 덕분에 서핑 샵 직원들의 식사 자리에도 함께 끼고 이틀 연속 공짜 레슨도 받는 특권을 누렸는데 마지막 날에는 코가 시큰해져 “다음에 꼭 또 올게요.”라는 지키지 못할 약속도 해버렸다.
서핑 그 자체보다도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서퍼들의 여유로움이었다. 까무잡잡하고 근육이 잡힌 단단한 몸, 바다 위에서 꼿꼿이 고개를 들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들. 평소 같으면 부끄러웠을 내 맨 얼굴과 젖은 머리도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반쯤 벗은 서핑복에서는 모래가 우수수 떨어지고, 아스팔트 위를 걸을 때마다 맨발의 물자국이 선명히 찍히는 그곳에서 나는 더없이 자유로웠다.
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 짓기에 완벽한 여행이었다. 나는 나의 서른이 가장 특별하기를 바랐고 실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셰어하우스 사장님이 되었으며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외국계에서 스타트업으로 예상치 못한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7월이었다. 고단한 서른이 끝나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