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체질이고 천직입니다

#40 백수예찬론

by 신재


쉬는 것도 잠깐일 때 좋지, 조금만 지나면 좀이 쑤실 걸?



아니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몇 개월이 지나도 백수 생활은 질릴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거의 7년 동안 출퇴근하는데 익숙해졌던 신체 리듬은 일주일 만에 와장창 깨져버린다. 몇 주가 지나 드는 생각은 "아, 심심하다.."가 아닌, "이제까지 어떻게 출근했던 거지?!"




사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싫었던 부분은 업무 내용이나 사회생활이 아닌, 출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날 밤부터 내일 아침 일찍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얽매여 무거운 솜같이 축축해진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고, 혹여나 늦잠이라도 잘 까 봐 잔뜩 긴장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고, 피곤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머리에 물을 묻히고 새로운 옷을 골라 입고 얼굴에 이것저것을 펴 바른 뒤 현관문을 나서고, 대중교통에 몸을 실은 채 모르는 이들과 몸을 부대끼며 혹시 지각하진 않을까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고, 회사 입구에 다다라 옷매무새를 다듬고 상쾌하고 활기찬 척 회사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내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을 때까지의 그 모든 과정 말이다.


생각해보면 출근 후부터 퇴근 전까지 회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그렇게까지 진절머리 나게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을지도.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정해진 계획에 따라 내 업무를 처리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이런 과정에서 나는 대체로 작은 성취감이나 즐거움을 얻었던 것이다. 물론 일이 보람차지 않다거나 종종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 있긴 했지만, 전날부터 '아 회사 가기 싫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강력한 촉매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출근 파트만 어떻게 해결이 된다면 회사를 조금 더 오래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떠서 손뼉만 치면 뿅, 하고 내 자리에 풀셋팅 된 모습으로 앉아있을 수 있다면, 혹은 코로나가 없던 그 시절부터 재택근무가 도입이 되었더라면, 나는 회사에 좀 더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출근하는 게 그토록 싫은 이유는 내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삶에 면역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싶다. 업무 내용이나 대화 내용은 매일 조금씩 바뀌기라도 하지, 출근 시간은 항상 고정되어 있지 않은가. 내가 일어나야 하는 시간도, 씻고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도, 버스를 타러 가는 길도, 타야 하는 버스 번호도 모든 것이 매일매일 똑같다. 나는 끝없이 그 반복되는 굴레를 무려 7일 중 5일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것에 신물이 났던 것 같다. 내 인생 잘 살려고 돈을 버는 거고, 돈을 벌려고 회사를 다니는 건데, 왜 인생의 70%를 빼앗겨야 하지? 왜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토요일부터 우울해지는 거지?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회사를 탈출한 이후 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과연 케이지에서 탈출한 다람쥐가 되었을까? 아침잠이 없는지라 8~9시쯤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지긴 하지만 10시를 훌쩍 넘길 때까지 침대에서 마음껏 뒹굴거리며 밀린 웹툰이나 넷플릭스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 배가 고팠지만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또 넷플릭스를 보며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이 있다면 씻고 나갈 준비를 하겠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텅 비어있다. 뭘 할까 고민하다 테이블 위 노트북 앞에 앉는다. 특별히 뭐 할 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웹서핑을 하기도 하고, 연관 검색어나 떠오르는 뉴스를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다 또 넷플릭스로 빠지기도 하고, 삘 받는 날에는 글을 쓰기도 하고, 구글 포토 속 10년 전 사진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저녁을 먹고, 잠이 오면 자러 간다. 그냥 그게 기본적인 백수의 하루 일과이다.


이런 일과가 반복되면 또 그건 그대로 숨이 막혀오긴 한다. 그건 아마 내가 생산성과 효율성에 미쳐버린 계획형 인간이기 때문일 텐데, 이런 무기력한 감정은 내게 또 새로운 일을 벌일 때가 되었다는 신호탄과도 같다. 꼭 회사에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새로운 일들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 수도 있고,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고, 책을 쓸 수도 있고, 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그렇게 매번 새로운 사건을 벌이고 한 땀 한 땀 해결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인생이 조금씩 앞으로 굴러간다. 회사에서 버티고 버티다 보면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는 것처럼, 회사 밖의 삶에도 그 나름대로의 진급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물론 백수의 삶에도 서러운 순간이 있다. 꼬박꼬박 들어오지 않는 월급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고, 세상에 내가 속한 곳이 하나도 없나 싶어 허무해질 수도 있다. 커리어를 멋지게 쌓아 가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 부럽기도 멋지기도, 내가 모난 사람이라 사회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는 건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백수의 삶이 가진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백수 생활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유는, 적어도 언제 쳇바퀴를 굴리고 멈출지 그 결정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이든 시작할 수 있고, 내가 한계를 느끼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아가도록 채찍질하는 것은 상사도 월급도 성과도 아닌 나 자신뿐이라는 것. 내 삶의 주도권이 내 손안에 쥐어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하고도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아마 앞으로도 오래오래 백수로 살 것이다. 물론 틈틈이 사업가이고 기획자이고 작가 일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손'이라는 백수의 뜻처럼 나는 영영 자유롭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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