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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Mar 05. 2022

내 생의 영은과 아영에 관하여

영은과 아영은 각각 2020년 5월 26일, 7월 6일 선녀방에 들어와 2022년 3월 5일 나란히 떠난다. 영은과 아영의 이름에는 유난히 이응이 많고 둘의 엠비티아이는 ENTP이다. 둘은 글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둘은 선녀방에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선녀방에 대한 글을 썼다. 둘은 인생을 춤추듯 향유하는 유형의 인간이고 그런 인간답게 서로를 잘 알아본다. 개떡같이 던져도 찰떡같이 받아먹는다. 나는 둘의 쿵짝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좋아했다'로 고쳐 말할 날이 한 손안에 꼽힐 만큼 다가왔기에 나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니까, 우리에겐 그 위안이 꼭 필요할 것 같아-,




영은 때문에 나는 정세랑, 김초엽, 김혼비를 알았다. 영은 때문에 더 이상 에세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영은 때문에 아침형 인간이던 나는 언제부턴가 새벽에 잠들고 대낮에 일어나게 되었다. 영은 때문에 나는 설거지를 미루거나 지각하는 사람들도 지극히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은 때문에 나는 주변 이들에게 더 관대해졌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졌다. 영은 때문에 나는 아침에 알람이 몇 번을 울려도 무시하고 잘 수 있는 무던함을 얻었고 영은 때문에 "좋아해~", "허얼~"과 같이 평소 나답지 않은 말랑말랑한 말 습관 몇 개를 얻었다. 


영은은 취향이 확고한 사람과 웃긴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영은이 종종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신재는 왜 이렇게 웃겨?"라고 말하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영은은 남의 입으로 듣는 본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글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을지도 잘 안다. 영은은 엔팁이지만 엔프피를 선망한다. 주변의 엔프피들을 지독하게 덕질하며 조금씩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영은이 왜 엔프피를 선망하는지 안다. 그들의 사고 회로는 오색찬란한 꽃들로 가득한 영은의 세계관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영은은 법 없이 가장 선량하게 살 사람이다. 그런 영은이 왜 결국 엔팁의 세계로 귀결되는지도 안다. 영은의 꽃밭은 무지개와 은하수로 가득한 꿈나라에 자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은의 황폐한 흙과 졸졸 흐르는 도랑을 가지고 화려한 꽃밭을 일궈내는 사람이다. 영은은 그게 딱히 힘든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해낸다. 그래서 아마 나는 영은을 더 좋아할 것이다. 냉소적인 동시에 해맑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 괴리감이 말이 되나 싶어 잠자코 지켜보고 싶어 진다. 영은은 사막에서도 똥통에서도 꽃을 피워낼 사람이다. 항상 꽃향기를 찾아다닐 사람이다. 영은은 주어진 환경이나 타고난 기질 따위에 영향받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앞만 보고 걸어간다. 영은은 스스로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아마 그래서 종종 나약한 이들에게 가혹하다. 영은의 세계에서는 이해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은의 마음은 둔해서 주인이 힘든지도 아픈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몸은 예민해서 그럴 때마다 애타게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영은은 주기적으로 텐트 문을 닫고 눈물을 흘린다. 그야말로 눈물을 위한 눈물을. 고인 줄도 몰랐던 상처투성이의 감정들이 흘러나갈 틈을 주는 것이다. 영은만큼 자존감 높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영은은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고 상냥하며, 자신을 제대로 예뻐하고 돌볼 줄 안다. 그 모습이 제법 멋져 보이기에 영은을 만나고 나도 나를 더 좋아하기로 했다. 영은은 유들해 보이지만 가위 한 번 눌리지 않으며, 근육 하나 없는 주제에 면역력은 지나치게 좋다. 여러모로 영은은 외유내강의 사람이다. 영은의 침대에는 늘 고양이가 깃든다. 이불과 옷과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고 종종 정체를 모르는 것이 나을 무언가가 묻어 나와도 영은은 절대 그들을 내치지 않는다. 콧잔등에 빨간 선이 그어져도 금세 잊고 좋다고 다시 얼굴을 들이민다. 영은은 쉽게 사랑하고 어렵게 계산한다. 영은에게 누구나 좀 더 관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영은은 돌고래마냥 날카롭고 높은 데시벨의 음성을 내뱉어 내가 귀를 막고 째려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내게 듬뿍 사랑받는 영은은 그야말로 돌고래처럼 영리하다. 결코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영리한 영은은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과 매력과 재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어디서든, 어떻게든,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방법을 터득했다. 영은은 싫은 걸 말하기보다는 급커브 해 돌아가는 사람이고 와이파이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이와 가장 진하게 연결되는 사람이다. 룸메이트라는 특권으로 영은과 가장 가까이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나는 지금 이 관계가 무척 만족스러운 만큼이나, 어느 날 훌쩍 영은이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니기로 마음먹을까 봐 두렵다. 




아영 때문에 나는 시의 아름다움과 다시 마주쳤다. 아영 때문에 내게도 어느 가을날 캠퍼스 한 켠에 시집을 쌓아두고 해 질 때까지 읽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절로 흐르는 어떤 구절을 가진 특별한 시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영 때문에 이성적과 감성적은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아영 때문에 나는 꿈일기를 쓰게 되었고 아영 때문에 내가 또 누군가를 숨 쉬듯 가스라이팅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하게 되었다. 아영 때문에 항상 나는 더 열심히, 더 시적으로, 더 제대로 살고 싶어져 버린다. 


아영은 좋은 쪽으로 미친듯이 질주하는 사람이다. 아영은 한 번 시작하면 뭐든 끝을 제대로 봐야 한다. 아영은 미온수를 싫어한다. 아영은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폭넓게 포용 가능하지만 뜨뜻미지근한 건 참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아영 앞에서 언제나 분명한 태세를 정하고 기승전결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영은 미괄식보다 두괄식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내가 아영의 후임이라면 언제나 결론을 먼저 말할 것이다. 아영은 생각보다 부드럽고 놀랄 만큼 단호한 사람이다. 아영은 늘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모두가 아영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완벽한 아영에게는 도무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아영은 곧잘 곁을 내주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다만 아영의 마음을 얻으려면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바람이 아닌 햇볕으로. 그러면 아영이 기꺼이 먼저 두꺼운 외투를 벗고 다가올 것이다. 아영은 수동이 아닌 능동이다. 아영은 늘 성취하고 쟁취하는 사람이기에 감히 누구도 아영을 먼저 선택할 수는 없다. 그만큼 아영의 사람이 되는 것은 달콤하고 짜릿하다. 아영은 착하다는 말과 귀엽다는 말을 싫어한다. 아영이 경계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깊이 공감하면서도 종종 아영이 착하고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싫어하니까 내뱉지는 않고 몰래 그렇게 생각한다. 이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아영이 혹여 불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결코 아영의 어떤 성질에 대한 평가가 아닌, 좋아하는 이에 대한 애착을 기반으로 한 감정이니까. 아영은 호랑이처럼 행동하고 독수리처럼 웅크리지만 가끔 비에 젖은 코커스파니엘같은 얼굴을 한다. 그럼 나는 조용히 아영의 그런 얼굴까지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영과 나는 술자리에서 항상 마지막까지 남는다. 흥이 잔뜩 오른 새벽, 팔짱을 끼고 신나게 소주를 사러 간 적도 많다. 아영과 나는 많이 닮은 듯 전혀 다르다. 아영은 누구보다도 엔팁이며 그런 스스로의 정체성을 몹시 사랑한다. 아영이 나보다 훨씬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삶을 영위하지만, 그럼에도 아영은 엔팁이고 나는 엔티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극명하다. 아영에게는 스파크 같은 것이 튀기 때문이다. 파지직, 불꽃 같이 타오르는 아영의 발걸음은 현란한 탱고 스텝 같다. 언젠가 아영의 뒤를 걸은 적이 있다. 난생처음 뒤쳐진 느낌에 부지런히 발을 옮겼으나 아영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아영이 운동을 미친듯이 하는 이유는 열심히 살기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영이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운동도 미친듯이 하는 것뿐이다. 아영은 공부도 미친듯이, 일도 미친듯이, 우정도 사랑도 취미 생활도 자기 계발도 미친듯이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굶주린 듯 지식을 탐독하고 예술을 탐미한다. 아영의 그런 점은 많은 이들에게 열등감을 선물한다. 열등과 선물은 낯선 조합이지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영 때문에 사람들은 시를 쓰고 영어를 공부하고 수영을 시작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영은 진정한 인플루언서다. 나는 아영만큼 생생히 살아 숨 쉬는, 건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영의 주변에서는 모두가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이제 아영과 한층 멀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나는, 내가 다시 이전 버전의 나로 회귀할까 봐 두렵다. 




영은과 아영과 나는 꽤나 죽이 잘 맞았다. 엠비티아이의 4분의 3이 겹쳐서일 수도, 셋 다 술을 좋아해서일 수도, 세상을 향한 태세가 닮아서일 수도, 결국에는 낭만을 믿는 사람들이어서 일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가장 오래 살았기 때문에 모르는 새 많은 부분들이 맞춰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선녀방에서 둘의 빈자리는 순식간에 채워질 것이고 나는 또 다른 이들과 지금까지 그러했듯 어울려 잘 살아갈 것을 안다. 영은과 아영 역시 본인이 선택한 다음 장으로 넘어가 더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쌓아갈 것을 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필연으로 우연으로 결코 적지 않은 교차점을 찍으리라 것도 안다. 우리들의 대화는 선녀방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이어질 것이고, 서로를 필요로 할 때는 기꺼이 달려와 술메이트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잊지 말라거나 자주 연락하자는 말을 구태여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대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언제까지 선녀방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 너희와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너무나 제각각의 삶을 살아온, 또 살아갈 우리가 덕분에 교차점을 찍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내 생에 영영 함께할 영은과 아영을 얻은 것만으로, 나의 서른 초반은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그러니까 2020년의 어느 여름날 너희가 모종의 이유로 선녀방에 들어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어서, 결국 나에게 와주어서 고맙다고.


영은과 아영이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영은과 민지라거나 수정과 아영이었다면 우리가 함께 했던 선녀방은 그때와 같은 색을, 빛을, 향기를 띠지 못했을 것임을 확신한다. 하필 이름에 이응이 많이 들어가고 꿈이 많은 너희들이 하필 한 달 간격으로 선녀방에 들어와 하필 기나긴 시간을 쭉 함께해 주었기에, 그 찬란한 시대는 탄생했다.




나는 그걸 감히 운명이라고 부를래. 우리는 그럴 운명이었다고. 영은과 아영 덕분에 선녀방의 한 시대는 춤추듯, 꿈꾸듯, 노래하듯, 시쓰듯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시절로 기억될거라고. 끝이 있기에 더 황홀하고 아득한 것들이 있지. 나는 그런 것들이 우리 생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그러니 선녀방에서 함께 했던 우리들의 마침표는 여기에 찍자. 그리고 다시 써 나가자, 우리의 새로운 시대에 관하여.


코로나 생활치료센터에 갇혀 있는 2022년 3월 2일 수요일, 영은과 아영이 떠나는 날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 오후부터 저녁까지 거북목과 굽은등으로 침대 위에서 한참동안 키보드를 두드린 신재가. 




by 영은

https://brunch.co.kr/@yumeuni/6


by 아영 

https://brunch.co.kr/@jeonah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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