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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Jun 17. 2021

쉐어하우스에 살고 외로움은 덜 타요

서른 하나, 결혼 대신 쉐어하우스로 독립했습니다.


무엇이든 혼자 잘 하지만 생각해보면 온전히 혼자 살아본 일은 없다.




1년간의 교환학생 기간 중에도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살았으며, 독립한 지금도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으니까. 독립하기 전에는 일평생 부모님과 본가에서 살았다.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들여다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상하게도 지금 사는 쉐어하우스 운영자 친구가 한 말이었다. 그 친구는 독특하게 본인이 운영자면서도 1인실이 아닌 2인실에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는 외로움도 많고 겁도 많아서 누군가와 같은 방을 쓰는 게 오히려 좋아요. 밤에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자면 무섭더라고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외로움이란 게 '홀로 있음으로 인해 유발되는 두려운' 감정과 일맥상통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외로움을 덜 탄다. 혼자 자는 게 좋고 홀로 있어서 두려운 생각이 들지도 않으니까.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며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있으면 좋은' 것과 '있어야만 하는' 것은 다르다.



작년 7월부터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다.


이 집에서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겪었으니 사계절을 다 겪은 셈이다. 본가도 서울, 직장도 서울, 쉐어하우스도 서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왜 내가 이 곳에 '굳이' 살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된 쉐어하우스 '선녀방'에 살고 있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그렇듯 시작은 로망의 충족이었다.


프렌즈라는 미드를 영어공부 교과서처럼 삼고 유년시절을 보내왔고 지금도 샤워할 때마다 틀어 둘 정도로 좋아하는데,  

그 미드에 그려져 있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직장인 친구들이 거의 하나의 집이라고 봐도 될만큼 가까운 공간에서 넘나들며 살아가는 풍경이 재미있고 정겨워 보였다. 꼭 언젠가는 저런 형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몇 년 전부터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실제로 그렇게 살게된 것이다.


시작이 '로망의 실현', 즉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느낌의 동기였다면, 이렇게 사계절을 다 보낼 만큼 이 생활을 지속하게 만든 건 아무래도 구체적인 편의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쉐어하우스이지만 1인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생활의 니즈가 대부분 충족되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공간이 꼭 필요하고, 가끔은 방 안에서 아예 나오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인간이랄까? 개인주의자와 사회적 동물 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가끔은 개인주의자적 면모가 더 강해지고 그럴 때는 퇴근 후 불까지 꺼두고 방 안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혼술을 한다. 거실에서 하우스메이트들이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눠도 절대 나가보지 않는다.


그런 나를 하우스메이트들도 알기 때문에 아무도 거실에 나와볼 것을 강요하지 않고, 그 점도 마음에 든다.


그런 반면 사회적 동물로서의 면모가 극강에 이를 때에는 각자의 친구들을 불러 하우스메이트들과 파티를 한다. 춤을 추기도 하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인생에 대한 깊은 질문들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쉐어하우스에서 열었던 생일 파티.

양 극단이 아닐 때에는 평범하다.


거실에서 글을 쓰거나 잔업을 처리하고 있다가, 퇴근하는 하메에게 인사하고 밥 먹었냐, 오늘 회사 어땠냐 물어보고, 가끔 같이 술마시면서 밤 늦게까지 수다떨고. 스몰토크를 나누고. 힘든 일이 있었으면 서로 이야기하면서 풀고 각자 방에서 잠들고. 그냥 가족같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나는 지금 이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으며 그 이유가 어쩌면 이 집이 나에게 허용해 주는 적당한 사회성과 개인주의의 균형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것.


나에게 외로움이란 혼자 어떤 활동을 할 때 느끼는 고독감이라기보다는, 같이 흥분하고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같은 주파수대의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감정에 가깝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활동을 혼자 주도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열정을 갖고 있는 대상에 대해 함께 열정을 느끼는 대상이 없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집에서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많지 않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 그와 동시에 내가 '홀로 될' 자유가 있다는 것.


그런 게 내가 느끼는 쉐어하우스 1인실 생활의 장점이며, 이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이다.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와 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은 없다. 그냥 '혼자 살면 재미가 없겠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언제까지고 사람이 재미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삶의 재미, 그러니까 맛과 멋이 결여된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의 미래의  모습도 잘 상상이 가지 않기는 한다.


미래의 내 삶에서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는 것.

언제까지고 사람이 재미만을 추구할 수는 없으니까. 삶에도 빈 공간이 조금 있어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내 깊은 내면의 결핍을 발견하는 것 같다.


 늘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외로움을 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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