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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Jun 18. 2021

스물, 다섯살

언어는 너무 무겁다

사람이 변하기는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생각해보니 난 참 그대로이면서도 뭔가 많이 변했다 뭐가 변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난 내가 누군지 가끔은 정말 알수가 없다 과거의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장면마다 중앙에는 내가 있었다. 사진들도 가만히 들여다본다.

 수백 번씩 봤던 사진들인데 사진이라는 건 참 뭘까. 잊어도 괜찮기 위해서 저장하는 걸까. 그게 정말 나였을까?

이상하다


스무살의 한 재수생은 가출을 하기 위해 가방속에 문제집만을 넣고 집을 나갔고 공원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울었고 수학학원에서 자면서 스무 살이 가기 전에 꼭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마음이 답답해서 도서 열람실 바닥에 앉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 때 책 속에서 발견한 '틴에이저'라는 단어에서 묘한 괴리감이 들어 가만 생각해보니 난 그때 이미 20살이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10진법이란 건 놀라운 것이었다. 그때 느낀 상실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난 20살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소설을 꼭 쓰기로 다짐했다. 그 때 도서관에서 연습장에 한쪽 두쪽 적은 소설들을 엄마가 못보게 하려고 피아노 의자 밑에 숨긴 채로 난 대학에 왔다. 대학에서의 사회는 소설 말고 다른 많은 것들을 나에게 요구했고 나는 삶을 끌고 다니는 대신 끌려 다니면서 이런 저런 일을 했다.

 미국에 갈때도 그 종이들은 나와 함께였다. 난 많은 것을 하면서 20대의 반절을 보냈지만 그 종이들은 그대로 남았다. 내 20대 속에는 다른 어떤 것들은 있었지만, 소설은 없었다. 그리고 난 이제 스물 다섯살이 되었다. 내 삶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걸까.


나의 내면이 가진 진실을 도무지 알수가 없다는 것에 눈물이 난다.


삶에는 제동장치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나는 생의 많은 부분에서 오로지 충동에 기대어 결정을 내리기도 했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놀랄 만큼 이상한 절제력을 갖게 된다. 쉽사리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두려운가 하면 지나칠 만큼 헛점을 보이기도 한다. 내 자신에게도 난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가 없기 때문에 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아주 많이 원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에 대한 예감 때문에 그것을 향해 한발 내딛는 것조차 두려워져 영원히 꿈으로만 간직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나 혼자만을 위한 글쓰기는 쓸쓸해 싫으면서도 동시에 모두에게 낱낱이 내보일 글을 쓴다는 일 또한 한편 두려운 것일까


생각한 일을 글로까지 쓰면 진짜가 되어버릴 까봐 두렵지만 가끔 나는. 글과 나와의 관계가 이 상태로 계속 유지되면 평생 글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하곤 한다. 나에게 글이란 너무 내밀한 정서와 감정 그리고 보이기 싫은 내 결함까지 모두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엔터키가 없는 기분, 이지만 두리안이 그랬듯이 이것도 이거대로 좋다-고 난 말하기가 힘들다 글이 아닌 말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조금 나을 것도 같은데

언어는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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