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재 May 24. 2023

유기동물 문제 해결을 향한 한 발자국

임시보호를 전파하라 

작년 하반기부터 핌피바이러스를 시작하고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반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400건이 넘는 임보 상담을 진행했고, 50건 이상이 실제 임보로 연결되었으며, 입양을 가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https://pimfyvirus.com


핌피가 오직 ‘임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부분이 비어있기 때문이에요. 유기동물의 구조 및 입양의 중요성은 다행히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중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인 임보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임보와 입양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입양이 우선시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핌피가 임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선 살아 있어야 입양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기동물의 절반이 마땅히 지낼 공간이 없어 안락사당해야 하는 참혹한 현실. 보호소에 들어가 2주 후에 안락사당하느니 길에서 살아라도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신고하지 않는 분들도 많죠.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안락사 없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열악한 사설 보호소들이고요.




오랜 시간 보호소 봉사를 다니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봉사를 열심히 다니는 것이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못하는구나.’ 아니,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훌륭한 보호소 시설과 열성적인 봉사자들이 유기범들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거든요. 시설이 잘되어 있는 보호소라는 소문이 나면 우루루 몰려와 아이들을 버리고 갑니다. ‘내가 버려도 이렇게 잘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괜찮겠지, 오히려 잘 된 거야.’ 위안이 되거든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버리고,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구하는 이 끝없는 굴레가 숨 막히게 느껴졌습니다.


그 굴레를 끊어보고 싶어서, 적어도 입양 가는 속도가 버리는 속도를 따라잡게 하고 싶어 핌피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유기동물 문제의 해결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어요.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고, 강력한 법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저는 우리나라의 동물권에 대한 방향성이 선진국의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과도기에 있고,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아직도 한참의 시간이 남았겠죠. 분명한 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유기동물이 0마리인 세상이 저는 언젠가 분명히 오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동물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365마리가 길에 버려졌고, 163마리가 수술대 위에 올랐습니다. 핌피는 당장 그 아이들을 구하고 싶어 임시 보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단 한 마리의 생명이라도 더 구해보겠다고요.


그래서 핌피의 이름 뒤에는 ‘바이러스’가 붙습니다. 우리의 타깃은 이미 구조/임보/입양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아닌, 잘 모르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임시보호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분, 임보가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분, 과거 힘들었던 임보 경험 때문에 다시 시도를 못하는 분. 그런 분들에게 더 쉽고 안전한 임보를 전파해 임보자 전체의 풀을 늘리는 것이 핌피의 미션입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핌피를 운영해오며 느낀 점은 ‘우리의 예상이 맞았구나’ 입니다. 임보는 확실히 필요하지만 비어있던 부분이었고, 핌피 오픈 이후 현재까지 무수한 요청과 상담, 감사 인사, 협업 제안 등을 받아오며 더욱 뼈저리게 실감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핌피는 더욱 열심히 달려가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 손으로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겠구나, 라는 가능성이 조금씩 눈앞에 선명해지는 것 같거든요.



하지만 어려운 숙제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핌피는 비영리로 운영이 되고 있기에 임보 관련 모든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됩니다. 일반적인 플랫폼은 사용자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유지가 되지만, 핌피의 주 사용자는 이미 유기동물 문제에 앞장서고 계신 구조자 및 임보자 분들이죠. 이미 자신의 영역에서 큰 희생과 봉사를 하고 계신 분들이기에 핌피는 그분들께 어떤 방식으로든 부담을 더 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기에 핌피에 대한 수요가 많아질수록 팀원들의 생계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대표로서 제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을 해나가고 있는 부분인데요. 우선은 플래그십스토어를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펀딩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후원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은 자생력을 갖춰보고 싶어 우선 끝까지 버텨볼 생각입니다.



핌피의 두 번째 펀딩이 텀블벅에서 진행 중이에요. 키링, 뱃지, 포스터, 컵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굿즈들을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수익보다는 전파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펀딩이기에 가격도 최대한 방어적으로 책정했습니다. 모든 상품에는 임시보호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는 미니북이 포함되어 있어요. 후원자 분이 핌피 키링을 달고 다니다, “와 귀엽다 이거 어디꺼야~?” 하는 흔한 질문을 들었을 때, “이거 임시보호 전파 굿즈야. 임보가 뭐냐면~” 하며 임보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자연스럽고 쉽게 퍼져나갈 수 있는 그런 그림을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


https://link.tumblbug.com/MEphZI6D3zb


많은 분의 마음이 보태져 핌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내후년, 그렇게 계속 쭉쭉 성장해 나갈 수 있기를, 해마다 치솟는 유기동물 사망률 그래프를 꺾아내릴 수 있기를, 저를 믿어주시는 수많은 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오늘도 다짐하고 바랍니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가 잘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동물이 나오는 책과 마실 것을 팝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