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준 Nov 12. 2020

연희동

환승을 하러 당산역에서 전철을 기다린다. 역의 분위기가 어릴 적 종종 갔던 망월사역과 많이 닮아 있었다. 홍대입구역에 내려 한참을 걸어 연희동으로 간다. 와보진 않았지만 꼭 와보고 싶었던 동네. 인적도 드물고 차분하다. 연희동은 왠지 조용한 성향을 가진 여성의 동네인 느낌이 난다. 근처에 있는 연남동의 “남” 자가 이름 철자대로 조용한 남성의 동네같은 느낌이여서 그럴까. 그냥 아무 의미없는 가벼운 생각을 하며 걷는다. 자그만한 터널 속을 걸으며 작년 밀라노에 도착 한 첫 날을 회상한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선 울퉁불퉁한 돌바닥의 터널을 걸었는데 그 때의 고독함이 조금은 오버랩된다. 근처 김밥집에서 간단하게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적당히 맵고 적당히 짭잘한 게 내 입맛에 맞았다. 연희동에 가게 되면 가고 싶었던 카페를 지도에 찍는다. 조용한 주택가 사이 지하에 있는 카페. 평지에서 두어계단 내려가다보면 익숙한 나그참파향이 인사를 건넨다. 고목나무계열의 원목과 적당한 양의 소소한 백열등들. 고요한 향과 더 지긋한 향의 스피커 속 재즈들. 커피를 시키고 각진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충전시킨다. 이 동네를 오기 전 서점에 들러 산 책을 테이블 위에 꺼낸다. 크지 않고 아늑한 공간이라 큰 데쉬벨의 대화를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가만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주위의 조용했던 손님들이 하나 둘 나가고 조금은 시끄러운 손님들로 교체된다. 코로는 차분한 향을 맡고 눈으론 활자를 보고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양쪽 고막엔 내 취향의 재즈와 그다지 멀지 않은 간격의 양 옆 사람들의 대화가 각기 다르게 공존한다. 바깥 창문의 명도는 낮아지고 공간의 어색함이 친근해질 때 쯤 메모장을 켜 감정을 기록한 뒤 핸드폰의 콘센트를 빼고 밖으로 나선다.

작가의 이전글 마스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