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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Jan 05. 2021

여수

작년 여름 홀로 여수를 갔었다. 여행을 너무 가고싶었던  아니었지만 가보지 않았던 곳에 대한 궁금증과 새로움만으로 시간을 냈다. 시간적 여유가 많진 않았기에 1 2 코스로 빠듯하게 일정을 짰다. 계획을 짜며 알게됬는데 국내에서는 혼자 멀리 여행을 다닌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다행히도 원래 혼자서 걸으며 돌아다니는  좋아하기에 혼자임의 두려움이나 그런건 없었다. 기차표를 예약하며 지도에 여수엑스포역을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부산보다  남쪽에 있는 곳이란  처음으로 알았다. 나의 무지함을 느낌과 동시에 나름 정말  곳으로 떠난다는 설레임이 다가왔다.


출발 당일 서울은 숨이 막힐  태양이 내리쬤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틀 내내 여수엔 비가 내린다고 했다. 현관에서 검정색 장대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여수로 가는 기차의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지역이 바뀔  마다 하늘이 점차 잿빛으로 변해갔다. 자연 앞에선 인간은 정말 작은 존재임을 다시금 각인하며 잠시 눈을 감고 시야도 잿빛으로 적셨다.


왠지 웅장할  같았던 여수 엑스포역은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단조로운 모습이었다. 화장실과 자그마한 편의점 하나가 전부였지만  단조로움이 여수를 정갈하게 대변하는  같았다.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비가 주륵주륵 내렸기에 서둘러 택시를 잡고 미리 알아봐 놓은 식당으로 갔다. 원래 가고 싶었던 게장맛집이 있었는데 최소 2인분 이상 주문을 해야 한다기에 깔끔히 포기하고  근처의 로컬식당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가며 기사님에게 아쉬움을 말했더니 여수는 혼자 여행  만한 곳은 아니라며 애인이랑 오지 그랬냐 하셨다. 여자친구가 있으면 혼자 왔겠느냐만 “, 그럴게요대답하곤 창문을 살짝 내렸다. 빗내음이 비릿했다.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숙소를 들러 짐을 놓고 계획한 스케줄에 따라 이동하고  이동했다. 가는  마다 처음 겪는 새로운 시야들을 눈과 카메라에 꾸깃꾸깃 담았다. 해가 지고 슬슬 다리가 무뎌질 즈음 저녁으로 회를 먹기위해 낭만포차로 향했다. 여행하는 내내 젊은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었는데 여수의 온갖 20대들은   포차거리에 있는  했다. 마치 주말의 이태원에  듯한 그런 젊음이었다. 다들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자 무언가의 낭만을 찾으러 나온 듯한 그런. 이름값 하는 포차거리였다.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모르고 그저 적당한 사람들이 있는 포차거리로 생각했던지라 애당초 계획은 혼자 간단히 소주와 회를 먹고 숙소로 돌아  생각이었지만 막상 마주한 분위기에 그럴만한 깡은  수중에 없었다. 배는 고프고 다른 곳을 찾아 가긴 지쳤고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기엔 1 2일의 마지막 밤이 아쉬웠기에  곳에서 결정을 하긴 해야 했다. 그냥 혼자 가장 구석의 포차에서 후딱 먹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걸어가는데 포차 주변에서 쭈뼛쭈뼛 홀로 서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뭔가 나랑 같은 상황의 사람인  같아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역시나  남자도 혼자 여행을 왔는데 혼자 회를 먹을 자신은 없어서 어찌해야하나 하고 있었던 중이라 했다. 나도 같은 처지인데 괜찮으시면 같이 간단히   하자하니 흔쾌히 고맙다고 했다.


얘기를  보니  남자도 혼자 여행을 처음 와봤다고 했다. 이런저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며 술을 먹다보니 취기가 살짝 돌기 시작했다.  친구는 이것도 인연이라며 어쩌면 처음 만난 사이이기에  시원히   있는 고민상담을 해왔다. 내가 나이가 4  많긴 하였기에  그정도 연식의  주관적인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취기에 감쳐진 모습인지 포장되지 않은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해댔다. 그렇게 적당한 시간을 보내고 먼저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뭔지 모를 텁텁한 향이 알코올 향과 뒤섞여 났다. 뒷좌석 창문을 살짝 내리고 바람을 쐬니 느껴졌다. 외로움이었다. 씁쓸하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이번 여행의 테마가 외로움을 떨치려고 떠난 여행이었다면  물거품인 시간들이었을테니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생각들을 읽은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다행스러웠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신  옅은 잠을 청했다.


다음 날도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던  속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를 타며  가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다음번엔 오로지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겠다고. 어쩔  없이 동행하는 외로움에 말을 걸어보겠다고.   낯선 사람이 아닌 외로움과 술잔을 기울이겠다고.  취기의 고민을 조곤조곤 들어주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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