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보니 머리가 띵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컨디션에 갸우뚱하며 기지개를 폈다.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질 못하고 밥그릇은 쓰러져가는 팽이마냥 휘청였다. 잠시 연락처에서 매장 번호를 검색한 뒤 화면을 끄고 한 숨을 깊게 내쉬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살며시 눈을 감았다. 5분쯤 지났을까. 경적소리가 길게 울려펴지고 짧고 둔탁한 파도가 일었다. 커진 동공들 주위를 금새 안정된 사이렌 소리가 뒤덮었다. 터벅터벅 가까워졌다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담배를 한 대 물곤 불을 붙였다. 지끈거리던 머릿속은 한층 더 지끈거려졌다. 뒤이은 버스를 타고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의자를 뒤로 젖힌 뒤 지그시 눈을 감았다.
텀블러에 물을 담는다. 따뜻하길 바라며 한 모금 마셔보지만 적잖이 미적지근하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본다. 적잖이 뜨끈하다. 애꿎은 침대시트만 힘없이 만지작거린다. 여기저기 가출한 듯 흩어진 시트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곤 생각한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영하 18도, 올 해 들어 가장 춥다. 올 해라고 해봤자 일주일밖에 안 지났지만. 영상 18도였어도 추울 몸으로 발목까지 오는 롱패딩을 이끌고 힘겨운 걸음을 걷는다. 37.8도. 평균을 벗어난 수치. 치유를 위해 찾아간 곳에선 더 큰 만약을 위해 한 발짝 양보해야만 했다.
몇 시간 전 탔던 익숙한 버스에 다시 올라탄다. 섣불리 눈을 감아보지만 시야는 더 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두고 편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갈아입는다. 텁텁한 흰 바탕에 검은색을 조금 칠해 넘기고 또 넘긴다. 오로지 벗어나고 싶음에.
전기장판을 켜고 몇 개의 알약을 삼킨다. 공간을 검게 물들인 뒤 이불을 턱 밑까지 덮었다. 덥다. 덥다 못해 뜨겁다. 뜨거운 용암이 온 몸을 적신다. 화산재가 묻은 옷을 몇 겹 벗어던진다. 한동안 얇고 넓은 잠에 빠져 허우적댄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햇빛이 블라인드 틈새로 새어나오는 게 보인다.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본다. 가볍다, 그리고 미지근하다. 일어나 블라인드를 걷어본다. 밤 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하늘은 맑기만 하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한웅큼 마셔본다. 마냥 맑지만은 않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만 원래 맞아야 할 매였나싶다. 아님 새해맞이 신고식이였나. 이런식으로는 싫은데. 그냥 그렇게 넘기곤 화장실로 들어간다. 세면대의 물소리가 또렷하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