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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Jan 10. 2021

37.8

아침에 눈을 떠보니 머리가 띵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컨디션에 갸우뚱하며 기지개를 폈다.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질 못하고 밥그릇은 쓰러져가는 팽이마냥 휘청였다. 잠시 연락처에서 매장 번호를 검색한  화면을 끄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살며시 눈을 감았다. 5분쯤 지났을까. 경적소리가 길게 울려펴지고 짧고 둔탁한 파도가 일었다. 커진 동공들 주위를 금새 안정된 사이렌 소리가 뒤덮었다. 터벅터벅 가까워졌다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담배를   물곤 불을 붙였다. 지끈거리던 머릿속은 한층  지끈거려졌다. 뒤이은 버스를 타고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의자를 뒤로 젖힌  지그시 눈을 감았다.


텀블러에 물을 담는다. 따뜻하길 바라며  모금 마셔보지만 적잖이 미적지근하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본다. 적잖이 뜨끈하다. 애꿎은 침대시트만 힘없이 만지작거린다. 여기저기 가출한  흩어진 시트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곤 생각한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영하 18,   들어 가장 춥다.  해라고 해봤자 일주일밖에  지났지만. 영상 18도였어도 추울 몸으로 발목까지 오는 롱패딩을 이끌고 힘겨운 걸음을 걷는다. 37.8. 평균을 벗어난 수치. 치유를 위해 찾아간 곳에선   만약을 위해  발짝 양보해야만 했다.


 시간  탔던 익숙한 버스에 다시 올라탄다. 섣불리 눈을 감아보지만 시야는  이상 깊어지지 않는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두고 편하지만은 않은 것으로 갈아입는다. 텁텁한  바탕에 검은색을 조금 칠해 넘기고  넘긴다. 오로지 벗어나고 싶음에.


전기장판을 켜고  개의 알약을 삼킨다. 공간을 검게 물들인  이불을  밑까지 덮었다. 덥다. 덥다 못해 뜨겁다. 뜨거운 용암이  몸을 적신다. 화산재가 묻은 옷을   벗어던진다. 한동안 얇고 넓은 잠에 빠져 허우적댄다.


 시간쯤 지났을까. 햇빛이 블라인드 틈새로 새어나오는  보인다. 손을 들어 이마를 만져본다. 가볍다, 그리고 미지근하다. 일어나 블라인드를 걷어본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하늘은 맑기만 하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한웅큼 마셔본다. 마냥 맑지만은 않다.


매도 먼저 맞는  낫다지만 원래 맞아야  매였나싶다. 아님 새해맞이 신고식이였나. 이런식으로는 싫은데. 그냥 그렇게 넘기곤 화장실로 들어간다. 세면대의 물소리가 또렷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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