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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Feb 02. 2021

기흉

20,  주위에는 유독 기흉 환자가 많았다. 환자라고 정의를 내리는  조금 섣부르지만 아무튼 기흉에 걸린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강 내에 공기가 차게 되어 흉부 통증  호흡곤란이 오는 증상을 기흉이라고 하는데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보통 키가 크고 마른사람이  걸린다. 모델과를 진학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크고 마른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기에 심심치않게 기흉에 걸려 고생하는 친구들을 보곤 하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에 놀라 숨을 쉬어보려 했지만  수가 없었다.   있는 거라곤  자리에 주저앉아 심장을 부여잡고 짧고 빠르게 숨을 이어가는  전부였다. 다행히도  분이 지나자 호흡이 돌아오고 통증이 잦아졌다.


한번은  복무시절 야간근무를 마치고 생활관에 돌아와 환복을 하는데 기흉이 재발한 적이 있다. 심장을 부여잡고 생활관 안의 동기들에게 숨이  쉬어진다고 간신히 말을 했는데 동기들은 믿지 않았다. 내가 간혹 장난기가 많았던 터라 그저 연기를 하는   것이다.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던 내가 호흡이 가빠지고  겨를도 없이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판단에 동기  한명이 급히 불침번 근무를 하는 선임에게 보고를 했고, 그렇게  앰뷸런스에 실려가 군병원에  일간 입원을 했다.


 이후로도   없이 많은 재발을 겪었는데 다행히도 수술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저냥 이렇게 살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괜한 신경쓰임에 숨이 가빠지긴 하지만 여의치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사람들은 대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정의하곤 하는데 물론 막상 보이는  겉모습뿐이니 그럴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살면서 갖가지 압박들을 겪고는 겉은 촉촉하지만 속은 점점 건조해져 가다보면 눌리고 찌그러져 고통받는 폐와 별반 다를  없다. 불행은 대게 의도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고  아픔을 감당하는  오로지 내면의 역할이다. 성곽을 쌓듯 내면의 두께를     두껍게 쌓아 올리다 보면  이상 폐에 구멍은 나지 않을까. 불규칙한 통증은 사라지고 규칙적인 삶을 살게 될까.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그렇게는 싫다. 규칙적인 삶만큼 따분한 인생이  있을까. 그저 가빠지는 호흡과 함께 영영   없는 순간들을 보낼 것이다. 심장을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아 힘겨운 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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