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내 주위에는 유독 기흉 환자가 많았다. 환자라고 정의를 내리는 건 조금 섣부르지만 아무튼 기흉에 걸린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강 내에 공기가 차게 되어 흉부 통증 및 호흡곤란이 오는 증상을 기흉이라고 하는데 원인은 불분명하지만 보통 키가 크고 마른사람이 잘 걸린다. 모델과를 진학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온 키 크고 마른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기에 심심치않게 기흉에 걸려 고생하는 친구들을 보곤 하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에 놀라 숨을 쉬어보려 했지만 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심장을 부여잡고 짧고 빠르게 숨을 이어가는 게 전부였다. 다행히도 몇 분이 지나자 호흡이 돌아오고 통증이 잦아졌다.
한번은 군 복무시절 야간근무를 마치고 생활관에 돌아와 환복을 하는데 기흉이 재발한 적이 있다. 심장을 부여잡고 생활관 안의 동기들에게 숨이 안 쉬어진다고 간신히 말을 했는데 동기들은 믿지 않았다. 내가 간혹 장난기가 많았던 터라 그저 연기를 하는 줄 안 것이다.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던 내가 호흡이 가빠지고 할 겨를도 없이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판단에 동기 중 한명이 급히 불침번 근무를 하는 선임에게 보고를 했고, 그렇게 난 앰뷸런스에 실려가 군병원에 몇 일간 입원을 했다.
그 이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재발을 겪었는데 다행히도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저냥 이렇게 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괜한 신경쓰임에 숨이 가빠지긴 하지만 여의치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사람들은 대게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정의하곤 하는데 물론 막상 보이는 게 겉모습뿐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살면서 갖가지 압박들을 겪고는 겉은 촉촉하지만 속은 점점 건조해져 가다보면 눌리고 찌그러져 고통받는 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불행은 대게 의도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고 그 아픔을 감당하는 건 오로지 내면의 역할이다. 성곽을 쌓듯 내면의 두께를 한 겹 한 겹 두껍게 쌓아 올리다 보면 더 이상 폐에 구멍은 나지 않을까. 불규칙한 통증은 사라지고 규칙적인 삶을 살게 될까.
만일 그렇다 할지라도 그렇게는 싫다. 규칙적인 삶만큼 따분한 인생이 또 있을까. 그저 가빠지는 호흡과 함께 영영 알 수 없는 순간들을 보낼 것이다. 심장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힘겨운 숨을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