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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Feb 03. 2021

살식마

친구가 운영하는 플라워샵에 놀러갔다가 자그마한 율마를 선물 받았다. 식물을 키우는 건 처음인지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침대 옆에 들여다 놓았다. 부드럽게 쓰다듬으니 손바닥에 상큼한 레몬향이 고스란히 베는 게 마음에 들었다.


친구가 율마는 키우기 힘든 아이라고 하였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뭐 물만 잘 주면 알아서 크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일주일에 2번씩 물을 주기로 정하고 아침에 일어나 물을 주었다. 급격히 키가 자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일주일동안 2번의 물을 주었고 이주차가 되었을 때 율마에 대한 흥미를 서서히 잃어갔다. 물을 주지 않고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엔 물 대신 찰나의 시선만 주곤 했다.


몇 일이 지난 뒤 휴일에 방 청소를 위해 테이블을 정리하다가 간만에 눈에 들어 온 녀석을 쓰다듬어 보았다. 처음 내 방에서 느꼈던 부드러운 감촉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도 건조하고 날카롭게 날이 선 녀석만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상큼했던 레몬향 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관심과 사랑이 사라진 자리엔 바스락거리는 가지들만 앙상했다. 싱그럽던 초록색 빛깔은 힘없고 칙칙하기 그지없는 색으로 변질되었다. 말하지 못 할 뿐이지 생명을 가지고 점차 죽어가는 녀석을 보며 인간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난 남몰래 살인을 하고 있었구나. 살식을 빙자한. 찝찝한 죄책감에 물을 듬뿍 먹여주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게 얼마 전이던가. 한 주체에 대하여 자연스레 신경을 쓰고 비례하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던 적이 있기는 했을까. 생각해보면 연인과의 관계에서 그 정도의 사랑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아낌없이 물을 주며 너무 과하지도 또 너무 축약적이지도 않은 관계를 이어가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어느 시점이 지난 관계는 다분히 규칙적이라 클리셰스러워지기 마련이고 그 흐름을 거스르려는 몸짓은 연어의 귀소본능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만약 계획한 대로 일정한 사랑을 꾸준히 받는다면 그 호의를 당연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왜 사람은 나이가 먹어갈수록 기준치에 맞는 길이의 줄자를 구하려 안달일까. 피곤하다. 핸드폰 메모장에 새로운 TO DO LIST를 적었다. “월요일, 목요일 율마 물주기.”


어쩌면 물과 화분은 동일한 존재일 것이다. 일관된 사랑을 주면 상대방은 어떻게 자라날까. 혹여나 지금의 내가 감당하기 힘들어지면 분갈이를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더 큰 보금자리, 더 넓은 아량으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가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힘없이 그댈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화분이 되어 더 크고 넓은 사랑으로 받쳐 줄 것이다. 그리곤 조심스레 쓰다듬어 줄 것이다. 율마인지 레몬나무인지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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