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파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서, 핸드폰을 하면서, 그냥 왠지 파보고 싶어서 시도 때도 없이 귀를 파곤 했다. 유독 오른쪽 귀를 즐겨 팠는데 자주 파서 그런지 왼쪽 귀보다 면봉이 깊숙이 들어가져 더 시원했다. 어느 순간이 되니 매일매일 귀 파는 것이 마치 하루의 고정적인 일과처럼 느껴졌다. 귀에선 피가 흘렀지만 별 아픔은 없었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루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오른쪽 귀가 간질거렸다. 귀찮음보다 가려움의 크기가 컸기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테이블 위의 면봉을 집어들었다. 침대에 걸쳐앉아 귀를 파는데 온 몸이 찌릿했다. 실수로 너무 깊게 면봉을 넣은 탓에 고막을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더 이상 귀를 파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침대에 누워 곧장 잠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오른쪽 귀가 꽉 막힌 느낌이었다. 간단히 세안을 한 뒤 근처의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의사선생님의 충고와 함께 간단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이후 내 청력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조용한 방안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면 귀에서 삐-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유독한 환자가 죽을 때 나는 심장박동 측정기의 부산하고 일정된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코 앞까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이내 머릿속은 한없이 혼란스러워지지만 묵묵히 견디다보면 한순간 고요해진다. 내 몸이 나에게 적적함을 질투하며 적당히 소란스럽게 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적당히 소란스러운 삶.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보통의 사람이라면 전부 해당되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나 출근을 하고 많은 것을 보고 대화하고 듣는 우린 지친 오감을 위로한답시고 버스 안에서 잠시 눈도 감아보고 음악을 들으며 퇴근길을 지나지만 정작 가장 지쳐있는 건 오감엔 없는 마음이다. 피곤함과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들이 마음 속 어딘가 바닥에서부터 겹겹이 쌓여 귀까지 차오르게 되면 삐- 소리를 내며 더 이상 차오르지 못하게 신호를 주는 게 아닐까싶다. 집에 도착하여 잠들기 전 여분의 음악도 공기의 흐름도 멈춘 듯한 적막한 순간이 되면 찾아오는 이명은 어쩌면 외롭고 지쳐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에 대한 지극히 정상적인 반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