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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Mar 18. 2021

갑작스레 그리고 여유롭게

한번도 가본  없는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시간상 당일치기로 가야했기에 약간의 귀찮음을 배제하고 그보다 조금  부지런함과 모험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바다를  본지 반년이 지났던 터라 그나마 가까운 동해 쪽을 생각했는데  시기에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는지 괜찮은 시간대의 버스 좌석이 남아있질 않았다.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하던 찰나에 같이 가게  친구의 입에서 낯선 이름이 들렸다. “그럼, 청주갈까?” 서울에서의 거리를 찾아보니 오히려 동해보다 거리가 가까웠다. “그래, 청주로 가자.”



술보단 커피를, 게임보단 사진을 좋아하는 우린 그렇게 다음 날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났다. 간단히 마실 물만 산 뒤 버스에 올라타 친구는 금새 잠에 취했고 난 뜬 눈으로 두 시간을 지새웠다. 28년 만에 처음 접한 청주의 풍경은 실로 아날로그적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의 분위기와 과거 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은 컬러의 시내버스들은 마치 내가 80년대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근처 돈가스가게에서 배를 채우고 미리 알아봐 둔 카페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께서 우리를 보시고선 지금 가는 곳이 청주의 끝 쪽이라며 청주의 끝과 끝을 가시는 거라고. 어디서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겐 vip분들이시라며 말씀해주셨다. 가는 길 내내 뒷좌석 창문으로 본 풍경에는 건물도 인적도, 명사도 그 어떤 목적어도 찾기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해 미터기를 보니 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잠실에서 신사만 해도 만원으로 가기 쉽지 않은데 시대도 시세도 멈추어버린 듯 했다.



도착한 카페는 또 한번 놀라움을 주었다. 바깥의 사뭇 올드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너무 넓고 쾌적하며 또 세련되어있었다. 인테리어와 커피의 맛 두 가지가 모두 상향선을 타기는 쉽지 않은데 아르바이트 분에게 추천받은 시그니처 크림커피는 정말이지 너무 풍부하고 부드러웠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낸 뒤 택시를 타고 산 중턱에 위치한 다른 카페로 이동했다. 산 중턱쯤 위치한 카페였는데 도착하니 노을이 이쁘게 지고 있었다. 청주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테라스카페였는데 간만에 높은 곳에서 노을다운 노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적당히 세련된 음악과 공간, 최신 유행하는 인테리어 의자와 조명들은 서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의자에 털석 기대 앉아 창밖의 도심을, 노을의 그림자에 서서히 묻혀져 가는 건물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서히 조여오는 배고픔도, 피곤함이 만들어 낸 눈가의 침침함도, 서울에서 가져온 숱한 걱정들까지도 모조리 노을과 함께 지고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은 깜깜했다. 버스 안과 밖의 명도는 그저 유리창이란 가판을 사이에 둔 사무실과 같았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잠을 청하려 했지만 커피 2잔을 연달아 마신 탓인지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당일이 아니라 청주에서 하루를 묵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카페인이 무력하게 깊은 잠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 깊고 어두운 그림자에 빠져 허우적댈 필요 없이 가라앉았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가끔씩은 내 의지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날도 있을 것이다. 떠나 보아야 보일 것이고, 해 보아야 알 것이다. 그리곤 눈을 떠 햇빛을 보았다. 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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