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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Mar 07. 2021

어떤 색을 좋아하시나요

혼자임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나지만 요즘엔 어쩔 수 없이 공생하는 외로움 탓에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적이 없었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일회용 필름카메라와 책 한권을 가방에 넣고서 집을 나섰다.


봄이 아주 잠깐 얼굴만 비추고 떠나버린 탓에 다시금 추워진 날씨였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코트 대신 패딩을 입을 걸 그랬나 생각하던 차에 도착한 빨간 버스를 타고 잠실역으로 향했다. 가고 싶었던 쇼룸이 있었기에 버스에서 내려 2호선을 타고 성수동으로 향했다.  코트의 단추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여매며 도착한 쇼룸엔 새햐안 카페가 붙어있었다. 평일 낮이었지만 통유리로 이루어진 창가는 사람들의 눈동자로 가득했다.


걷다보니 배가 고파 가까운 근처의 김밥집을 들어갔다. 김밥집의 수많은 메뉴들 중 실패없는 메뉴는 당연 김치볶음밥이다. 따뜻한 된장국과 함께 끼니를 떼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 없이 성수동을 그냥 걸었다.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려했고 어느 이름 모를 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초등학교와 그 옆 빌라 사이에 있던 도로의 가로등 조명이 노을 색과 제법 닮아있었다. 가방에서 필름카메라를 꺼내 플래시를 터뜨렸다. 춥고 다리도 아파와서 그런지 지금 내 모습이 쓸데없이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혼자임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큰 길가로 나와 압구정로데오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탔다.


영동대교를 지나며 한강을 마주하니 외로움에 더 짙게 물들어갔다. 버스 안 사람들을 보니 핸드폰을 하는 몇 명을 제외하곤 전부 노을에 빨갛게 물들어가는 한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처럼 외로움에 물든 각기 각색의 뒷모습인 것 같아 동질감에 작은 위안을 삼았다.


로데오거리도 성수동과 별 다를 건 없었지만 그저 걸었다. 근처의 카페에 올라가 따뜻한 모카를 시킨 뒤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과 책 장 넘기는 소리에 취해 읽다보니 외로움의 형태가 다르게 보였다. 없어지진 않지만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는 녀석이 밉다가도 한없이 애틋했다.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는 무엇일까. 잘 모르겠지만 고독이 외로움보다는 조금 더 깊고 무거운 느낌이랄까. 외롭다는 게 더 가볍고 휘발성이 강한 감정인 것 같은데 성수동 길거리에서 느꼈던 고독함과 로데오의 카페에서 느낀 외로움을 비교 해보면 단지 무게나 깊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카페에서 느낀 외로움이 더 짙게 느껴졌다. 비슷한 감정이지만 동시에 수용하고 싶다거나 회피하고 싶은 것엔 분명한 구분점이 있는 매력적인 감정임에 틀림없다.


집으로 돌아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생각했다. 난 새까맣거나 새하얀 무채색의 감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아마 앞으로도 쭉 그럴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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