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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Aug 26. 2021

식물 하는 삶

삶이 소란스럽다 느낄 즈음 허전한 공간을 보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뒤덮이곤 했다.  공간에 무언가를 두어야만   같고  공허함을 비슷한 결의 부족함과 외로움으로 채우려 하였다. 시간이 지나 조금의 여유가 생기고  걸음과 보폭이  나긋함과 같은 방향이라는 마음이 선명해졌을  진정한 여백의 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있게 되었다. 비울수록 가득 채워졌고 시야가 깊어졌으며, 보이지 않지만 무한히   있었다.



무한한 여백 속 중앙에 자리 잡은 돌은 별다른 주변 영향이 없는 한 그 자리를 온전히 지킨다. 어디선가 파생된 고즈넉한 자태를 바라보며 조금 떨어져 걷는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돌 자체에 존재하는 공간과 그 틈을 포근히 안아주는 주변의 흐름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처럼 각자 여백의 거리를 두고 자리한 식물들의 잔잔함엔 담백하고 고소한 내음이 풍긴다. 따스함에 이끌려 옮긴 걸음 앞엔 보이지 않았던 흙, 이끼, 가지 하나하나를 세심히 살펴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앙상한 가지나 푸릇한 잎에 비친 나를 천천히 돌아보고,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루터기가 굵은, 즉 줄기 안에 세월을 가득 품은 오래된 연륜의 존재들을 보며 겉모습이 다가 아닌 내면의 나이테를 조심스레 배워간다.



다양한 수형. 다양한 사람. 다양하지 않은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는 왜 그토록 다름 속에서 억지스러운 같음을 갈망하고 쫓아가려 안절부절못하는지. 그 속도에 헐떡이며 괜스레 주변과 비교하여 힘들어하는지. 가만히 뿌리를 내리며 제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식물들을 보며 조금 달라도 된다는 용기와 천천히 가도 된다는 차분한 위로를 얻는다.



조금은 독특한 모양새의 분재를 보면 위로만 솟아오를 것 같은 나뭇가지도 어느 시점에선 바닥으로 힘없이 가라앉지만 다시금 위로 꺾어 힘을 내는 걸 볼 수 있다. 이러한 불규칙한 춤사위가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은 한 발짝 떨어져 보았을 때 내가 계속해 걸어가고 있는 삶과 많이 닮아있다. 그 끝에서 새하얀 꽃이 피고 얼마 못가 지고 마는 짧은 결실 또한 너무나도 아름답다. 경치를 화분에 담는다는 뜻의 ‘분경’이라는 의미를 빗대어 공간과 식물, 흐름과 생각들을 무심히 넣어본다. 분명 언젠가는 시들고 꺾일 나지만 지금 나를 성장시키는 햇살과 수분은 내게 어떠한 존재들인지, 화분 혹은 땅속에 담겨있는 나를 생각하며 잔잔히 흙으로 스며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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