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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Jul 16. 2021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머리 위로   마리가 날아가고 있었고,   아니  ,   번의 날갯짓으로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그것을  그저 가만히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멸종된 새를 제외한 지구상에 현생하는 1 종류가 넘는 수많은 새들  나와 같은 색깔의 렌즈를  존재는 없다 생각했다.



새들은 거의 360도에 달하는 시야각을 가지며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의 범위보다 훨씬 넓은 영역의 색을 인지한다. 보다 선명하게 세상을 보며 자외선과 자기장까지 볼 수 있는 그 들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과연 어떠한 실루엣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인간의 시선으로 돌아 본 그곳에는 항상 턱이 당겨져 있었다. 턱 선이 사라진 옆모습에는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더불어 경멸스러운 미간의 주름과 눈매가 숨겨지지 않은 채 삐져나와있었다. 새들과는 다른 좁은 시야 속에서 걸음의 보폭마저 좁진 않으려 했다. 한정된 움직임 속에서도 항상 저만치 뚫려 있었기에 그다지 두렵진 않았다. 지금 두 발이 닿아있는 이곳, 흰색과 검은색의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다른 색들을 떠올려본다. 내 색은 극과 극인 명도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나. 적당히 합리화를 하며 돌아본 눈동자 위로 무채색의 시점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새장을 이루는 직선처럼 간혹 우선적으로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민 뒤 그 기준에 부합하는 명제를 만드는 인간들이 있다. 자기만의 관점을 벗어나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항상 빛을 흡수 또는 반사시켜 사물을 바라보지만 그 사물들을 바라보는 간격에는 적절한 흡수와 반사가 지켜지지 않곤 한다. 더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또 다른 3인칭의 시점에서 우린 고스란히 내려다보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질 수 없고, 필요로 하지 않았던 그 관점을 새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니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지 못해 힘들 때에도 새는 그저 하늘 어딘가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며 내려다볼 뿐이다. 어쩌면 더 좋은 시력으로 무채색 어딘가 우리들의 내면까지도 꿰뚫어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새와 인간은 측정할 수 없는 두께의 벽을 지녔지만 벽의 색은 한없이 투명하다. 버드 스트라이크같이 새의 시점에선 보이지 않았던 투명한 벽은 어쩌면 단지 투명해 보이고 싶은 인간들의 거짓스럽게 투영된 시선은 아닐까. 각자의 시선과 시선이 겹쳐져 조금은 둥그런 새장을 만들고, 그 안과 밖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알록달록한 색의 존재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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