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감정을 메모장에 간략히 적고 무지하게 흐른 시간을 인지하곤 기억을 더듬어본다. 언젠가의 빛바랜 감정선의 뒷모습을 따라 몇 발자국 걷다 이내 조심스레 돌려 잡은 어깨 뒤 마주한 얼굴을 나는 알아볼 수 없다. 내 핸드폰 메모장에 갇힌 몇 줄의 휘발유는 뚜껑이 열린 채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주머니 속에 항시 있는 라이터를 괜스레 만지작거리는 게 전부일 것이다.
할머니, 새벽 4시, 제주도, 선물 받은 필터 커피, 나무껍질과 나이테, 붉어지는 눈시울, 모순된 언행, 그리고 바람의 흐름. 이 조그마한 단어들에서 뻗어나가야 했던 갖가지의 감정들은 이곳에 영원히 기억될 수도 어쩌면 영영 증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흘려보내고, 잃고 싶지 않은 건 좀 더 간절히 붙잡아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