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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Oct 29. 2021

두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마가 지끈 하다. 어제 맞은 백신 탓인지, 조금 전 마신 오래된 와인 탓인지, 와인 뒤에 섞어 마신 맥주 탓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골치가 아프다.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어떤 향을 풍기고 싶은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고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길을 막연히 택하여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항상 드는 의구심은 감추어지질 않는다. 백신을 맞는 것과 비슷한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뒤따라왔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들지만 나는 400만 원이 채 안 되는 덫에 자꾸만 내 발목을 밀어 넣으려 한다.



선물 받은 와인의 코르크를 빼내어 바로 잔에 따라 마셨다. 강한 타닌 탓에 바로 먹는 건 아니겠다 싶어 시간을 두고 브리딩을 한 뒤 마시기로 하였다.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마신 와인의 맛은 전보다 확연히 풍부했고 달콤했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했고 한 병을 다 마시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아서 진공 세이버를 꽂은 뒤 날짜를 기록했다. 19일이 지난 오늘, 와인은 아직 병의 2/5 가량의 양이 남아있다. 적잖이 미지근한 와인을 따라 마셔보았지만 향만 어슴푸레 남아있을 뿐 전에 느꼈었던 풍부함은 찾아볼 수 없다. “마셔야지”, “해야지”, “찾아봐야지”하며 속절없이 흘려보낸 귀찮음의 시간들은 맛으로 솔직하게 표현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두려워하는 머뭇거림이 그렇게 답답해 보일 수가 없다.



목이 탔다. 애가 타기도 했고. 함께 먹은 나쵸칩이 너무 자극적이게 느껴졌다. 적당한 밸런스와 함께 시원한 목 넘김이 필요했기에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 한 캔을 땄다. 선반을 열어 맥주잔을 꺼내 잔을 기울여 맥주를 따랐다. 다섯 모금 정도를 거품과 함께 한 번에 꿀꺽꿀꺽 넘기고 나서야 만족감이 들었다. 기다릴 필요 없이 즉흥적이고 도전적인 맥주는 확연히 와인과는 다른 결을 띄었다.



사실 난 맥주를 먹었으나 먹지 않았고, 오로지 와인만 홀짝댔을 뿐이다. 와인을 마신 직후부터 두통은 미세하게 시작되었고, 와인잔을 손에 쥐지 않았을 때에도 두통은 항시 내 관자놀이를 찔러댔다. 독감도 한 번 세게 앓고 나면 그만인데 난 왜 통증을 피하려만 하고 단기적으로 알약만 처방받고 있는 건지. 또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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