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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Nov 12. 2020

달걀이모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였다. 진정한 파리를 느껴보고자 에어비앤비로 실제 파리지앵의 집을 예약하였다. 숙소를 늦게 예약 한 탓에 시내 중심부에서 30분 가량 떨어진 한적한 구에 자리잡은 집이였다. 대문을 펜스를 열고 복합주택식의 입구문을 열면 아주 비좁은 원형의 계단을 4층까지 걸어 올라가야한다. 집은 비좁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이틀정도 지냈을 무렵 빨래를 하려는데 세탁기의 사용법을 모르겠어 호스트에게 연락했더니 와서 알려준다고 하였다. 전형적인 프랑스인의 여성 호스트는 세탁기의 사용법을 알려주곤 근처 공원에 같이 산책도 가자고 하며 낯선 동양인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스케줄이 있었던 지라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보냈는데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오늘 내로 방을 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남편을 부르겠다는 연락이 왔다. 너무 뜬금없어 이유를 물어보니 아까 전 집에 왔을 때 기존의 가구들의 배치가 바뀐 게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방이 비좁았던 탓에 가운데에 있던 큰 식탁을 구석으로 치우고 캐리어를 뒀었는데 그게 그렇게나 맘에 안들은 모양이였다. 가구 배치가 맘에 안들었던 것인지 공원에 가자는 호의를 거절한 게 불만이였던 것인지 인종차별적인 문제인지 문화적 차이인지 사실 이해가 하나도 가지않았고 타협할 맘 자체가 없어보여 일단 방을 빼었다.


여기저기 급하게 집을 알아보다 한국인분이 운영하시는 한 민박집을 알게되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캐리어와 백팩을 끌고 간 “달걀민박”. 달걀이모와의 첫 만남이었다. 도착하여 벨을 누르니 현관에 나와 반가운 얼굴로 반겨주셨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간단히 짐을 푼 뒤 부엌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간만에 먹는 한식이 달래주었다.


급한대로 찾은 집 이였기에 반지하방에만 자리가 남아있었다. 창문도 없고 무겁고 꿉꿉한 습기가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었다. 하루 세끼 식사를 제공 해 주시고, 저녁엔 다른 게스트분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파리를 소개해 주시곤 하셨다. 하루에 30유로였던 숙박비도 깎아주시고 친아들처럼 잘 대해주셨다. 보통의 다른 게스트분들은 여행으로 오신 분들이 많았기에 길어봤자 1주일 내로 떠났는데 난 일정상 2달간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내집처럼 지냈다. 식사 때 마다 새로우신 분들이 있으면 항상 자랑스럽게 내 소개를 해주셨고, 간식도 많이 챙겨주시곤 하셨다.


보통의 나의 스케줄은 오전에 집에서 나와 에이전시들과 미팅을 하고 해가 질 쯤 숙소에 들어왔다. 가끔씩 촬영을 하고, 패션위크 기간에는 브랜드들을 돌며 캐스팅을 다녔다.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혼자 여행도 다니고 지내며 알게 된 사람들도 만나 파리를 즐겼다. 종종 집에서 키우시는 반려견 다미와 놀고 산책도 시켰다. 어느덧 한국에 돌아갈 날이 되어 짐을 챙겨 숙소를 나오던 날 이모와 다미, 스텝분이 다 같이 나오셔셔 배웅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몸 조심히 돌아가고 한국에서의 삶도 응원한다고 해주셨는데 타지에서 받은 큰 사랑에 너무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와 하루하루 보내던 중 카카오톡에 이모의 생일이 떠 안부인사를 전했는데 조만간 한국으로 아예 돌아오신다고 하셨다. 항상 건강하시란 말과 함께 한국오시면 찾아 뵙겠다하고 말을 줄였다. 몇일 전 파리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가 달걀이모를 만난다고 연락이 왔다. 난 일이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가질 못하고 전화로 연락을 했는데 목소리가 여전하셨다. 다미도 잘 지낸다고 했다. 3분여간의 통화를 끝내고 생각을 하였다. 오로지 한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달렸었던 그 시절과 내 취향의 것들로 가득했던 파리에서의 삶.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그 배경엔 항상 그러했던 날 따뜻하게 보듬어주셨던 이모와 주변분들이 있었음을. 지나온 시간들은 어떠한 계기가 없다면 쉽게 꺼내어 추상하긴 힘들다. 그 시간들이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조만간 이모를 뵈러 가야겠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모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싶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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