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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준 Feb 08. 2023

만남과 헤어짐의 무게는

작년 여름, 살짝 미적지근했던 날씨에 우린 처음 만났어. 이름도 나이도 어디에 사는지 아무 정보도 없이. 먼저 도착해 티켓을 뽑아 기다리고 있던 내게 커피를 사들고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는 넌 바로 눈에 띄었지. 우린 기억도 나지 않는 얘기를 하며 한 층을 더 올라갔어. 뭐 팝콘 줄이 너무 길다던가 언제 도착했냐 하던가 하는 어색하고 시시한 이야기들. 사실 그때 본 영화 제목이 뭐였었는지 기억이 안 나. 스크린에 집중하는 네 옆모습이 더 기억에 남거든. 영화가 끝나고 나와 담배를 피우려는데 너도 같이 핀다길래 좋았어. 난 아직 담배 피우는 여자가 더 매력 있거든. 석촌호수 바로 앞 가게의 테라스에 앉아 넌 사이다, 난 맥주를 마셨을 거야. 감자튀김 하나 시켜놓고 처음 보는 사이에 참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했지. 인생 얘기, 전 애인 얘기 등등... 그리곤 호수를 한 바퀴 돌았어. 한 쪽이 어디론가 튀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잔잔하게 물결치며 말하고 들어주고 하는 게 너무 좋았어. 나와 닮은 사람, 차분한 사람을 좋아하거든. 나와 결이 참 비슷하구나 생각했어. 너도 날 그렇게 느꼈고. 걷다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 먹었지 지금이나 그때나 이런 면에선 우린 크게 달라지지 않았구나 싶어. 참 슴슴했는데 우리.



어디서부터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그때부터 였을 거야. 네가 내게 큰 잘못을 했던 그날 이후로 난 한순간에 신뢰가 무너졌거든. 그렇지만 참고 넘어가기로 했지.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다 생각했고, 그 이후로 내게 하는 네 모습이 기특했거든. 주위에 말하니 오히려 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어떻게 그걸 참냐고 자기는 절대 그렇겐 못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더라. 사실 나도 내가 어색했어 이런 내 모습 속에서 나를 계속 잃어가는 기분이었거든. 그래도 우린 잘 만났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세 가지의 계절을 함께 보내며 이런저런 이뻤던 기억이 많네. 넌 운전하는 걸 참 좋아했지 그런 널 만나면서 나도 참 운전이 많이 늘었다. 마지막은 항상 쉽지가 않네. 나쁜 기억은 조금씩 미화가 되고 좋은 기억은 잔상이 그대로 남아버리거든. 우리가 만나는 동안 넌 세 번의 이사를 하지만 난 이 자리에 그대로 서있어. 매일 출퇴근길엔 잠시 차를 대놓고 함께 담배 피우던 도로를 항상 쳐다보곤 해. 그 장면의 우리가 아직은 너무 선명해서, 그렇지만 그 공기와 연기가 가슴에 아른거리는 것도 서서히 무뎌지겠지.



너에게 말하지 못하고 조금씩 정리를 해왔어. 당연히 잘 맞는 부분이 있으면 안 맞는 부분도 있는 법인데 너를 담은 내 눈에 비치는 시야가 점점 좁아져가는 게 느껴졌거든. 그러다 보니 끝이라는 게 보이더라. 너는 모르고 나만 아는 벽이 조금씩 세워졌어. 갑갑하더라 내 마음이 막히니. 그래도 무시하려 했어 그런데 그게 아무래도 잘 안되더라. 그 와중에도 너를 보며 최선을 다하는 연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 나도 너에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하긴 했는데 넌 어땠을지 모르겠다. 참 이기적이지 미안해 노란 꽃을 좋아하던 너에게 난 무슨 색 꽃이었어.



할 말이 너무도 많은데 이렇게 글로나마 조금이라도 말하려고. 책이 나오면 내 글을 제일 먼저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은 지키지 못하겠지만 아마 제일 먼저 생각날 거야. 이 글은 온전히 너를 담은 글인데 네가 보지 못할 수도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비겁한 말이지만 휴지 잘 부탁해. 참 귀엽고 나를 많이 좋아했는데 아직 새끼니깐 건강하게 잘 보살펴줘. 꽤 긴 시간 동안 생각 많이 날 것 같다. 너도 더 아프지 말고. 행복하고.



잘 지내, 어디서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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