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주의와 결과주의
요즘 시간이 나서 ‘그날. 우리는’ 통일 염원 뮤지컬(통일과 나눔 주관)을 라이브동영상으로 보았다. 대체 통일이 된 그날, 우리는 무슨 일을 겪게 될까? 하는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뮤지컬을 본 지 몇 분도 안 되어 빠져들었다. 남한의 충청도 사투리와 북한 사투리가 어우러져서 친근한 느낌을 준다. 통일된 후 북한 젊은이가 남한의 충청도 시골 마을에 이사를 간 후 겪는 일이다. 그 마을의 이장과 이장의 딸,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를 만난다.
북쪽남은 컴퓨터를 배우기를 원한다고 이장에게 부탁했는데, 이장의 딸이 가르쳐주기로 한다. 그러다가 서로 다른 의미가 있는 단어의 차이로 인한 오해가 일어나고 이장은 북쪽남과 갈등으로 치닫는다. 결국 이장은 북쪽남에게 자기 딸에게 작업을 걸지 말라고 폭언을 퍼붓고는 딸을 떼어놓듯이 끌고 간다. 이장은 북쪽남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북쪽남은 고개를 숙이고 북한이 남한처럼 잘 살았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정의롭고 차별 없는 희망찬 세상’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오히려 한국 사회가 ‘정의롭고 차별 없는 희망찬 세상’이냐고 되묻는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그다음 장면은 무대의 중심에 북쪽남이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다. 오른쪽에는 ‘I ♡ 평양’이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아들과 그의 어머니가 저자세로 서 있다. 왼쪽에는 이장과 이장의 딸이 굽신거리면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I ♡ 평양’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평양 종합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 최고의 꿈”이라고 북쪽남에게 말하면서 선망의 눈빛을 보낸다. 왼쪽의 이장은 북쪽남에게 자기 딸과 결혼해 달라고 애원하는 게 아닌가. 그때 바바리코트에 선글라스를 낀 세련된 도시녀가 등장하더니 북쪽남의 어깨를 감싼다. 북쪽남이 “저 여자친구 있어요”라고 말한다. 차가운 표정의 도시녀가 “냄새나”라고 한마디 내뱉는다. ‘냄새난다’라는 이 한마디에 담겨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시, 혐오, 빈정거림 등.
이 장면은 뮤지컬 최대의 반전인데 북쪽남의 상상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 상태를 바꾸어 설정했는데 ‘어쩜 이럴 수 있나?’라는 여운이 남으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 생각은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물질 만능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우리는 어쩌면 물질과 소유에 영혼을 팔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로 ‘영끌’이라는 단어도 사용되고 있다. 영혼까지 끌어다가 집을 사고 무엇을 산다는 말이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고 누리면서 명품을 걸치고 명품 가방을 메면 가난한 사람을 냄새나는 존재로 꼬리표 붙이기로 해도 면죄가 된다는 말일까.
‘I ♡ 평양’의 빨간색 하트가 떠오르면서 웃프다.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마치 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혼란해서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모르듯 말이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청소년에게 교육으로 봉사하면서 인생의 비전을 교육에 두고 살아왔다. 지금은 현장에서 만나는 학생들과 학부모가 성적에 집착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성적부터 화살표를 붙여서 계속 단계마다 화살표를 붙이면 어디로 도착할까? 1차 목적지는 대학이다. 2차 목적지는 고수입 직장이다. 결국 돈을 안정적으로 버는 직장을 위해 성적에 목표를 둔다.
자녀의 관심과 재능이 뭔지는 대화도 잘 안 한다. 아들의 재능과 꿈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오로지 성적을 내기 위한 공부를 시킨다. 결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다. 성적 지상주의이다. 철저히 결과주의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 이는 곧 결과지상주의이다. 이 두 개의 끝으로 가면 물질 만능주의와 연결이 된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청소년에게서 발견한다. 꿈 이야기를 하다가 초등학생에게 “돈 많은 백수도 (꿈이) 돼요?”라는 말을 들었다. 청소년들에게 꿈이 건물주라는 말은 직접 여러 번 들었다. 고3 학생에게 “어떻게 살 거니?”라고 물으면 돈을 벌고 모아서 집을 사고 차를 살 거라고 대답한다. 옆의 학생도 나도 그렇게 할 거라고 말한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는 대화와 소통을 잃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네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너의 재능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버는 안정적인 정규직의 고정 수입이 정년까지 보장되는 것이면 된다.
이런 삭막한 모습이 슬프다. 부모와 자녀가 소통이 안 되면 행복하지 않다. 소통이 주는 친밀감에 목말라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청소년은 유튜브, 게임, 스마트폰에 빠진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다 사용은 한국 사회의 특수한 모습이라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교육은 지력, 심력, 체력, 자기 관리력, 인간관계 능력의 전인격으로 사람을 이해한다. 5가지 회복을 위한 훈련은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과제를 매일 조금씩 천천히 실천한다. 인성과 실력을 통한 삶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금방 결과가 안 나온다. 성적이 나오는 것에만 열을 올리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이 교육을 잘 못 견딘다. 눈에 보이는 시험 점수는 빨리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실력이 성적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학생들을 단지 성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신이 가진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학생들의 관심사를 소중히 여기면서 존중하고 소통하고 싶다. 나는 학생들에게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진로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최대로 발휘할 ‘나의 꿈’을 가지라고 격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