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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이번에 읽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고등 법원 판사인 이반 일리치가 마흔다섯 살의 나이에 죽어가면서 겪는 삶과 죽음에 관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기 전 양복을 맞추어 입고 시곗줄에 ‘끝을 생각하라’는 라틴어 레스피케 피넴 메달을 매단다. 그는 병을 얻고 나서야 끝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자신을 마주하면서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가 지나온 인생사는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었다.’라고 평가한다.
첫 장면에 법원 건물의 판사들이 등장하면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해 동료 판사들의 반응이 나온다. 이반 일리치의 법대 동창인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자신이 더 나은 자리로 인사이동을 하리라는 기대를 한다. 동료들은 자기 죽음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반 일리치의 추도식에 다녀온 뒤에 늘 해왔던 카드 판을 벌인다. 이반 일리치도 동료들과 비슷했다. 최고의 기쁨이 빈트판을 벌이고 놀고 난 뒤, 저녁을 먹고, 포도주를 한잔하는 일이었다. 유쾌하고 점잖고 품위 있는 삶을 살고자 했고, 그 삶을 유지하면서 옳다고 여겼다.
이반 일리치는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등 법원 판사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딸, 아들이 있었다. 아내 프라스코비야 표도르브나가 좋은 귀족 가문이고, 인물과 재산도 있어서 이런 아내를 얻어 유쾌하기를 원했다. 그는 상류층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했다. 인간관계에서 공과 사를 통제하는 기술이 능란했던 그는 아내나 가족 관계는 서툴렀다. 결혼 생활에서 부딪히는 아내의 투정, 요구 등의 갈등을 차단하고 업무로 도망친다. 이반 일리치는 결혼한 뒤 17년을 보냈다. 그는 유쾌하고 평온한 삶을 원했지만, 보직 이동에서 제외되자, 연봉 5,000루블짜리 자리를 얻고자 고군분투한다. 마침내 높은 자리로 승진한 후, 즐겁고 흡족한 상태로 돌아온 그는 아내와도 유쾌한 기분을 느낀다. 그는 집에 오는 사람들을 선별했다. 꾀죄죄한 자들이라면 깔끔하게 내쳤다. 상류층 인사와 자제들 등 자신의 사회적 명망을 세워줄 만한 사람들과만 상대했다.
이반 일리치의 유쾌한 삶은 왼쪽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면서 위기를 만난다. 아내 프라스코비야 표도르브나는 트집을 잡고 다투는 남편의 성격을 참고 살고 있어서 불행하다고 느낀다. 남편이 죽기를 바랐으나 남편의 봉급은 필요했다. 이반 일리치는 많은 의사들의 왕진을 받고 결과를 듣는다. 병명이 정확하지 않은 허리 통증으로 유쾌한 삶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그는 죽어가는 자신에 대해 아무도 죽음을 말하지 않는 거짓이 가장 괴롭다. 이반 일리치를 버려둔 채 아내와 딸 리자, 리자의 약혼자 표도르 페트로비치는 공연에 간다. 이반 일리치는 그들의 거짓과 위선으로 인해 증오심에 휩싸인다. 판사들과 사교계와 사회의 부유층, 저명한 의사, 가족은 이반 일리치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다. 소유와 지위를 가진 사람이 공감 한 조각 못 하는 내면의 황폐함을 드러낸다.
이반 일리치는 배변 때문에 특수 용변기를 제작했는데, 그의 배설물을 주방 하인 게라심이 처리해 주었다. 주방 일을 담당하는 하인 게라심만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가엾이 여겼다. 게라심은 따뜻하고 여유로우며, 삶의 원동력과 활기가 넘친다. 이반 일리치를 진심 어린 태도와 행동으로 대했다.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면서 이반 일리치의 다리를 어깨에 올려주었던 것은 죽어가는 자에 대한 배려였다. 그는 사랑하고 수고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의 건강한 육체를 의존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게라심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도 그리로 갈 텐데요.”라고 말한다. 게라심은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를 공감하면서 배려한다.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과 있을 때만 유쾌했다. 게라심의 어깨에 다리를 올리면서 명랑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울어 주고 어루만져 주길 바랐던 이반 일리치는 울고 싶은 감정을 숨긴다. 마침내 그는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목 놓아 운다. 자신은 유쾌하게 잘 살아왔다고 여기지만, 죽음 앞에서 완전한 고독을 맛본다. 아내로부터 자신의 삶이 거짓이고 그 거짓이 삶과 죽음을 숨기고 있다는 메시지를 스스로 듣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난 뒤 사흘간 비명을 지른다.
이반 일리치가 추구한 유쾌함은 무엇일까? 그는 직위와 명예, 소유 등이 주는 유쾌함에 집착하면서 유쾌하지 않은 삶을 피해 다녔다. 그는 업무에서 자존심의 기쁨을 얻었고, 사회생활에서 허영심의 기쁨을 얻었다. 직장도, 삶의 방식도, 가족도, 사교계와 직장의 이해관계도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가 추구한 유쾌함은 자신의 영혼조차 구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졌다. 게라심의 공감을 받은 그는 죽기 전에 아내와 아들을 가엾게 여기면서 용서를 구한다. 마지막 순간에 죽음 대신 빛을 발견하고 기쁨을 느낀다.
인생의 끝에서는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공감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공감 생존 시대이다. 21세기 신조어 중의 하나가 공감 생존이다. 공감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AI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경쟁력도 공감이다. 똑똑한 사람보다는 나의 말에 경청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성경에는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감정과 고통을 공감하는 마음이 서로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