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가는 마음'을 읽고
느리게 살고 싶어서 윤성희 작가의 ‘느리게 가는 마음’책을 읽었다. 인공지능 시대라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느리게 가는 여유가 없다. 사람들은 빠른 변화로 인한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쫓기면서 살고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산다. 멍 때리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고 숨 막히게 달린다. 멍 때리기를 각 도시에서 대회로 개최하고 있는데, 느리게 가는 여유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인 몸부림처럼 보인다.
이 책의 표지는 산책하고 싶은 고즈넉한 풍경의 하늘이다. 책장을 넘기고 이야기로 들어서면 땅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총 8편의 글이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체가 간결해서 읽기가 쉬웠다. 어느새 이야기 안으로 쏙 빠졌다. 8개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공통점은 죽음과 상실이다. 망한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 짝짝이 양말을 신고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을 둔 엄마. 졸음운전으로 죽은 아내, 이혼한 가정에 엄마와 같이 사는 아이, 해고, 자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 등이 그려진다.
‘느리게 가는 마음’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아빠와 병원에서 항암 투병 중인 엄마가 가족이다. 나는 날씨가 찌푸린 날이면 편도가 붓고 몸살을 한다. 엄마의 동생인 이모가 와서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주고 요리를 해 주었다.‘쟤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준 거야.’라는 별명이 있는 이모는 일을 잘 벌인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앞 분식집이 어떤 학생의 모함으로 문을 닫는다. 사장님에게 돌아오라는 연락을 하기 위해 사장님의 고향 중학교 경비 아저씨에게 편지를 쓴다. 결국 사장님이 돌아와서 분식집은 문을 다시 연다. 그런데 이모가 떡볶이를 싫어하게 된다. 사장님이 이모에게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잔소리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모는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하다가‘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떠올랐다. 이모는‘느리게 가는 우체통’에서 남자 친구에게 청혼하는 편지를 보냈다. 1년 뒤에 편지가 도착하는데 남자 친구는 다른 여자와 이미 결혼했다. 다음 달이면 1년이 된다. 남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찾으러 주인공과 함께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 편지가 도착하지 않도록 도로 찾기 위해서다. 나는 이모에게 편지를 그냥 보내서 복수하라고 한다. 이모는 갓 결혼해서 행복한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우체통 직원의 도움으로 결국 그 편지를 찾는다.
주인공 나는 이모의 편지를 찾으면서 자신에게 쓴 많은 엽서를 읽게 된다. ‘지금처럼 잘하자’,‘지금까지 잘해왔다.’나는‘지금까지 잘해왔다’라는 말을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나에게 해 줄 수 없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인정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일까.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나를 인정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외롭고 슬픈지 모른다. 서로에게 예쁜 말을 해 주면서 살면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청소년의 마음이 회복하도록 예쁜 말을 해 주고 싶다.
‘느리게 가는 우체통’ 안에 들어가면 통유리로 된 유리창이 있고, 바다가 보인다. 주인공 나는 천 원짜리 엽서를 사서 엄마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으나, 시간만 흐르고 한 줄도 못 쓴다. 나도 부모님께 손 편지를 보내는 건 손에 꼽을 만큼 몇 번뿐이다. 바다를 보면서 편지를 쓰면 기분이 어떨까. 얼마 전 어버이날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손 편지를 보냈다.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나 또한 용서하는 편지였다. 편지를 쓰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조금씩 하고 있다.
편지를 무사히 찾은 후 나는 이모와 이름도 모르는 식당을 찾아간다. 그 길 사이에 망한 절, 망한 보건소, 망한 학교를 지나가는데 이모는‘하지만 안 망한 식당’이라고 망한 이야기의 마침표를 붙인다. 이모는 검정 그림에 노란빛을 넣는다. 유머 감각도 있고 긍정적이다.
이모와 나는‘느리게 가는 우체통’옆의 등대 쪽에 있는 ‘느리게 가는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신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느리게 가는 트럭’도 만난다. 그 트럭은 탁구채, 아이용 젓가락, 손 선풍기, 생일 케이크 등, 없는 게 없는 만물 트럭이다. 이모와 나는 똑같은 꽃무늬 잠옷 바지를 네 장 산다. 오는 여름에 엄마, 아빠, 나, 세 명이 같은 잠옷을 입고 수박을 먹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추억의 사진첩을 꺼내보는 느낌이다. 상실감을 맞닥뜨린 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은 상실감과 외로움의 정서를 건드렸다. 감정을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힐링 감성을 느꼈다.
‘느리게’라는 말은 빠른 문화와 부딪히면서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 여유를 준다. 걸음이 느린 나는 지하철에서 늘 앞질러서 개찰구 카드를 찍는 사람을 겪는다. 다른 게이트를 두고 굳이 내가 향하는 곳을 잽싸게 걸어서 통과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다.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는 한 사람이 지하철을 끝까지 타려고 만원 지하철을 억지로 타다가 지하철이 고장이 난 기사가 나왔다.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 켜져서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검정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나의 앞에 아가씨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차가 획 지나갔다. 순간 아찔했다. 아가씨의 걸음이 느려서 다행이었다. 만약에 빠르게 걷거나 뛰기라도 했다면 차에 치였을 수도 있었다.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빠르게 내달려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느리면 그 과정과 시간을 낭비라고 여긴다. 내가 하는 교육은 인성과 사고력 함양에 중점을 둔다. 인성이나 사고력은 매일 조금씩 천천히 실천하면서 오랫동안 올바른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학생들은 빠른 결과를 보여달라고 한다. 결과가 성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지속하려는 의미를 못 찾는다. 부모님들도 자녀가 느리게 배우고 시간이 걸리면 답답해하신다. 빠른 문화가 중독을 부추긴다는 기사가 있다. 학생들은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내고 지루함을 잊고 싶어한다. 빠른 문화는 생각할 시간을 안 주기에, 생각을 안 하면서 산다.
그림책으로 초등학생과 책 놀이를 하면서, 그림책을 만들어서 나의 꿈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디지털 드로잉을 6개월가량 배웠으나 늦은 나이에 시작한 탓인지 실력이 늘지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었으나 쫓겼다. 강사님이 조급하게 그림을 그리는 나를 보고 “천천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빨리 실력이 늘어서 예쁜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림은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그려야 실력이 생기는 법이다.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친한 언니가 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갔다. 객지 생활하면서 못 먹고 외로웠던 젊은 시절에 따뜻한 밥을 지어 밥상을 차려 준 언니다. 언니는 갔지만 나에게 베푼 친절과 나눔은 영원히 남는다. 인생의 끝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아옹다옹 살고 싶지 않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평안을 잃고 싶지 않다. 빠르게 간다고 행복하지 않다.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속도를 달리고 갈 때 결과에 따라서 좌지우지된다. 느리게 가는 길 속에서 구경도 하고,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내면을 성찰하면서‘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고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