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보건소에서 처음으로 치료 이용을 시작했다. 동네 보건소에서 물리 치료를 받고 있다. 3회째 허리 치료를 받고 있는데, 오늘 가니 다른 여자 직원이 있었다. 교대 근무인가 보다 했는데, 누워서 들려오는 말을 듣자니 직원이 휴가를 가서 1층에서 대신 올라와서 일을 하는 중이란다.
기존의 직원이 해주는 치료와 차이가 많이 났다. 다 끝나고 내려오는데 장판에 불이 꺼져 있었다. 왠지 추웠다. 찜질 들어가기 전에 장판을 확인하지도 않은 것 같다. 파스도 휙 조금만 발라 주었다. 전기 찜질 기구를 잘못 붙였는지 떨어졌다. 못한다기보다는 성의 없이 대충 했다. 내가 치료를 받은건지 누워있다가 나온건지 헷갈렸다.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나의 신발이 안 보였다. 신발을 발로 차서 안보이는 곳으로 밀어 넣었나 보다. 신을 꺼내서 신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치료를 받은 상쾌한 기분이 아니다. 이 분이 50분을 때운 느낌이 확 들었다. 뒷 느낌이 씁쓸해서 오전부터 기분에 먹구름이 낀다.
교육 일을 하면서 수업이 있는 날은 교재를 붙들고, 여러 시간 생각하고 집중하면서 준비한다. 그러다가 대충 시간을 때우고 싶은 피곤한 날들이 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수업 준비를 충실히 안 하기도 했다. 이런 날 하필이면 자세히 확인 안한 내용이 질문으로 나와서 버벅거리는 실수를 한다. 내가 경계하는 부분인데, 인간이다 보니 이런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런 태도가 몸에 배면 처음에는 잘 못 알아채도 서서히 남도 알아채는 무성의한 사람이 된다. 신뢰감을 얻지 못한다. 나와 남이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면 심각하다.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도 안 찾는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분을 보면서 이렇게 안 사는 게 나와 남에게 무해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분에게 다시는 치료를 안 받고 싶다. 이 분은 같은 여자지만 피부도 좋고 날씬하면서 외모와 목소리, 패션 감각은 있었다.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속모습이 좋아야 한다. 겉모습이 아무리 좋아도 속 모습이 안 좋으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한번은 식당에서 화장실에 평소보다 조금 오래 있었다. 사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빨리 나오는 편이라서 그리 오랜 시간이 안 흘렀다. 갑자기 처음에 노크도 없이 문을 확 열어젖혔다. 문을 잠가둔 상태라서 다행이었다. 내가 안에서 노크를 하고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 금세 문을 두드렸다. 내가 분명히 노크를 했는데 말이다. “왜 이리 안 나와.” 이런 말이 들렸다. 다시 문을 부수듯이 두드렸다. 화가 올라왔다. “나갑니다.”라는 말을 하고 나가니 젊은 여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키도 크고 예쁘다. 겉모습은 아름다우나 마음에서 악취가 난다. 화려한 외모에 비해 내면이 텅 빈 사람을 보니 안타까웠다. 예쁜 얼굴이 아니어도 좋으니 공감하면서 조금 기다리는 배려가 있는 사람이 이웃이면 좋겠다.
두 경우를 보면 인생은 외모보다는 내면이 좌우한다. 외모가 단정하지 않거나 깔끔하지 않다면 손질을 하면 볼만하다. 내면이 구겨져 있으면 금세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내면을 먼저 알아야 하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도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남이 내면을 바꿔줄 수는 없고, 본인의 의지가 발동해야 한다. 내면을 보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면을 보기를 원해야 내면이 보인다. 나는 일기 쓰기를 하면서 하루를 다시 돌려볼 때 내면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본 나의 내면에는 자격지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격지심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격지심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도 있으나, 별로 도움이 안될 때가 있다.
지갑을 안 들고나오는 일이 나이가 들면서 발생한다. 보건소에서 수납을 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지갑이 없다. 모바일 카드나 계좌이체가 안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에게 500원을 빌리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지갑에서 빳빳한 1000원짜리 지폐를 꺼내더니 “써세요.”라며 나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셨다. “500원 잔돈은 받으셔야죠.”라고 말하면서 500원을 드렸다. “500원을 보내 드리려고요.”라고 아주머니의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는 그냥 걸어가셨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보내드린다는 말은 했지만 정작 해야 할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못 했다. 아주머니가 원하신 건 500원이 아니라 감사의 말이었다. 아주머니의 친절한 호의를 받아들이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 한마디면 족했다. 이 말은 입 밖에서 나오지 않았고 머쓱해하면서 떠나왔다.
내면의 자격지심이 펄펄 살아서 감사의 표현을 막았다. 다시는 못 만날 수 있는데 그 순간을 놓쳐서 아쉽다. 앞으로는 자격지심을 내세우지 말자고 반성한다. 내면을 돌아볼 때 나와 남에게 무해하고, 행복한 감성으로 살 수 있음을 나는 안다. 외모 가꾸기도 좋지만, 내면을 돌아보고 가꾸라고 말하고 싶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