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의 허상
세상을 살면서 90프로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감을 깨달았다. 평범하다는 말은 남이 하는데로 따라간다는 의미이다. 주위에서 90프로의 사람이 많이 보이기에 그 수준을 따라가기가 쉽다. 모두 90프로처럼 사는데 굳이 나만 다르게 살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수준이 있는 삶으로 나아가길 포기한다. 소수만이 수준 있는 삶을 향해 가기에 롤 모델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어른 김장하’ 영화가 많은 호응을 받은 이유는 90프로는 따라가기 힘든 삶이기 때문이다. 김장하 어른의 삶에 감동은 할 수 있으나 모방하기는 어렵다. 10프로의 삶은 좋은 책이나 만남, 유익한 영상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평소에 좋은 방향으로 진입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 가능하다. 생각하면서 살면 품위를 지키는 10프로의 삶을 살 수 있다.
어른들의 자살 소식을 많이 접하면서 계속 질문하고 있다. 무엇이 자살까지 이르게 했을까?
90프로의 낮은 수준에서 나오는 악플이나 저평가를 견디지 못한 게 아닐까. 누군가가 내뱉은 비난의 말에 목숨을 끊었으나, 비난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 지는 걸 별로 본 적이 없다.
주위에서 흔하게 보는 90프로는 실체라기보다는 허상이다. 무슨 말이나 평가를 하지만 두리뭉실하고 정체가 명확하지 않다.
90프로의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 절망감을 느꼈을 수 있다. 나도 이런 적이 있다. 90프로의 수준을 몰라서 일어나는 감정의 고통이다. 90프로는 공감을 못하는 사람인 줄 몰랐기에 상처를 받는다. 90프로에게 나를 이해시키려 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지만, 쓸모없는 일이다. 무례한 수준임을 먼저 알아채고 나부터 지키고 돌보아야 한다. 안 그러면 자신만 불쌍한 희생양이 되고 만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 수시로 단톡방의 카톡을 확인하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내가 올린 글에 반응이나 댓글을 올렸는지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집착을 한다고 90프로의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나 애정을 주지 않는다. 결국 90프로가 나를 소외시켜서 상처만 받았다.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아무나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말하는 평가를 받아들이고 자기 비하로 가면 손해와 불행은 나의 몫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돌려주지 않는 냉정한 세상이다.
90프로의 사람은 질서나 규칙도 무시한다. 꼬박꼬박 지키는 사람을 바보 취급 한다. 칼국수를 먹는데 김치가 아주 맛있었다. 옆 테이블의 부부가 칼국수를 거의 다 드신 듯 일어서려는 분위기다. 곁눈으로 보니 식사는 시작이 아니라 끝났는데, 김치가 큰 접시에 가득 쌓이게 담겨 있었다. 칼국수가 비싸지도 않은데, 김치값이 더 나올 것 같다. 먹는 양보다 더 많은 반찬을 남기는 건 처음 보는 일은 아니다. 셀프로 갖다 먹는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반찬을 과하게 남기기에 죄의식이 없다. 한 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비용이 조를 넘어섰다. 환경 오염으로 일어나는 이상 기후를 몸소 체험하면서 문제 의식이 없다.
아주머니들이 서너 명 모인 옆자리에 앉으면 “팔찌가 얼마니? 반지가 얼마니?” 아파트 가격이 올랐느냐 안 올랐느냐, 이런 소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베스트셀러가 때로는 저급한 수준인데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책을 선택하기도 한다. 90프로는 약자보다는 권위나 권력을 가진 자 쪽에 선다. 자신의 손해가 예상되어도 권위자의 눈치를 보면서 할 말을 안 한다. 할 말을 하는 사람을 쫀쫀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자신을 쿨하다고 여긴다. 자기주장이나 감정 표현을 안 하고 얼버무린다. 90프로는 부당한 상황에서 정확한 의사 표현을 안 하고 묻어간다. 비상식적인 부분을 언급해서 환기하는 사람을 언짢은 듯이 바라본다. 왕따를 시키면 가해자 편으로 간다. 사소한 부당함이 시정될 때는 본인도 이득을 보지만 말이다.
90프로는 수다는 떨지만 토론은 안 좋아한다. 타인의 의견을 집중해서 듣고 다름을 인정하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90프로는 혼자 있기보다는 무리 지어 다니면서 떠든다. 자기 정체성을 자기 안에서 안 찾고 주위의 소음이나 밖에서 찾는다. 시작한 일을 꾸준히 하기보다는 중간에서 멈추고, 끝까지 못 간다. 90프로는 유명한가, 유명하지 않은가, 브랜드를 보고 선택한다. 90프로가 사는 삶의 방식이다.
90프로는 무리이다. 무리의 속성은 휩쓸려 다닌다. 이익이 되는 쪽으로 몰려갔다가 이리저리 소신 없이 움직인다. 마치 물처럼 자신이 이익이 되는 쪽으로 붙으면서 주관 없이 산다. 소신과 주관 없이 사는 자체가 무리가 사는 인생 태도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90프로에 들어가서, 인정 욕구를 채우고자 소유를 위해 살기도 한다. 90프로의 반응이 없으면 성취물이 무용지물이라도 되는 듯 좌절 속에 허우적거린다. 무리가 두려워서 자신이 할 말과 할 일도 못 한다면 어리석다.
90프로가 삶을 성찰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대다수라는 점유율 때문이다. 90프로는 역사에서 잊혀진다. 평범해서 단순한 삶은 끔찍하기도 해서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90프로의 사람을 바라보면 그쪽으로 쉽게 넘어간다. 그 수준으로 전락하여 생각 없이 살면서 충동과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나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허상을 붙들다가 품격을 놓치고 저급한 나락으로 안 떨어지도록 말이다. 내가 90프로에 속했는지부터 질문하고 점검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