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천국과 지옥

by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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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단풍이 물든 나무가 평화로운 정경을 자아낸다. 마음도 평화를 즐기면 좋으련만 전쟁터다. 살면서 용서에 부딪힐 때 법률 관련 라디오 방송에 나온 여자 변호사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방송 호스트가 변호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물었다. 그러자 변호사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며느리나 시어머니가 여자이고 나도 여자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그날 이후로 ‘어떻게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못되게 했다. 며느리가 처음에는 참다가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시어머니가 미웠다. 미움은 분노를 일으켰다. 분노만으로 성이 안찬 며느리는 기어이 시어머니를 죽여서 복수하고, 분노를 풀려고 했다.

사람을 죽인다고 미움과 분노가 해소되지 않는다.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어리석다. 평생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비참한 상태로 전락한다. 죽을 때까지 분노와 미움을 품은 채 간다. 이 자체가 분노와 미움의 노예에게 주는 형벌이다. 살인자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매장된 채, 살아있지만 죽은 채로 산다.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차면 마음이 지옥이다. 마음이 지옥이면 몸도 지옥이다. 어제는 가족과 몇 번 통화한 뒤에 분노와 원망, 미움이 치솟아서 밤에 잠이 잘 안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마음도 몸도 찌뿌둥했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로 7세 어린이들과 체험 동화를 했다. 영상에서 아기 돼지가 춤을 추면 아이들도 같이 춤을 추고 기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소리까지 지르면서 말이다. 아이가 가진 순수한 즐거움은 어디로 갔을까. 어른에 비해 아이는 즐거운 기억을 하면서 사는 듯하다.

아이가 사는 세상에도 많은 죄악이 있다. 비난과 경멸, 분노가 가득한 말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들에게 쏟아낸다. 반려견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엄마가 반려견에게는 살갑고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고 귀여워했다. 자신의 딸에게는 말투와 표정을 싹 바꾸고 길거리에서 “너 나가.”라는 거친 말을 하는 걸 보았다고 한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들이 중얼거렸다. “사춘기가 되면 집에 있으라고 해도 안 있는다.”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든 면에서 아직 자립을 못한 자녀에게 “나가”라는 말은 폭력이다. 그런 말을 듣고도 아이가 집을 나가지 않고 부모를 용서하면서 살고 있다.

누구나 기쁨, 평화, 소망이 가득 찬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런데 세상에는 용서해야 할 고통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 기쁨, 평화, 소망은 용서의 관문을 통과한 자에게 주는 축복의 선물이다. 용서라는 관문에는 불, 유리조각, 창살, 등이 찌르고 불태우는 고통이 포함된다. 이 관문은 그냥 통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영화가 피 흘리면서 복수하는 통쾌함을 주제로 삼는다. 복수가 진정한 통쾌함일까.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피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현실에서는 더 그렇다.

죽어서 천국을 가고 지옥을 가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서 용서하기를 선택하면 천국을 산다. 용서하지 않기로 하면 지옥을 산다. 용서는 저절로 잘 안된다. 용서하기로 선택할 때 용서할 수 있다. 신이 옆에서 용서할 힘을 주신다. 용서하지 않기로 하면 용서가 안 되고 지옥을 산다. 성경에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하셨다. 신의 뜻에 순종하는 자와 거역하는 자의 결과는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

신은 용서와 사랑이 해결 방법임을 아셨다.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지혜를 알려 주셨다. 죽이고 미워한다고 해결이 안 된다. 미움과 분노는 용서로 풀어진다. 사람이 용서가 저절로 되고 사랑이 나오는 존재가 아니다. 시간을 두고 상대와 떨어져서 거리를 유지하면서 안 봐도 도움이 된다. 시간 자체가 약이 될 때도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 나를 삼키려 들었던 분노도 옅어진다. 용서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바닥에 떨어진 마음을 잘 다독거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을 보면 마음의 격한 감정이 가라앉는다. 마음을 스트레스로 방치하고 내버려두면 어렵다.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관리하면 마음의 평안이 돌아온다. 뜨개질이나. 사진을 찍기, 그림 그리기 등 취미 생활을 하면서 정신의 여유를 회복하면 좋다. 감정과 기분을 환기하고 전환하면 딱딱한 마음이 누그러진다. 인생에 끝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도 마음을 비우는 데 도움이 된다. 인생의 끝에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한다. 다 두고 떠나기 때문이다. 이때를 상상한다면 용서와 가깝게 지낼 수 있다. 나의 죽음을 맞이할 때나 타인의 임종 앞에서 진정으로 고백해야 할 진심은 용서를 포함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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