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꿈 이야기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이날도 그림책 놀이를 하러 돌봄교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학교의 화단에 보일락 말락 피어있는 하얀 들꽃이 눈에 들어왔다. 국화꽃보다 작은 꽃인데 가까이 가니 향기가 은은하다. 작은 들꽃은 흡사 나의 인생과 닮았다. 교육 비전을 품고 배우고 일하면서 걸어온 길이다. 교육 프리랜서라지만 그다지 내세울 게 없다. 꿈은 꾸었지만 삶은 만만하지 않았다. 꿈은 현실이라는 척박한 땅과 부딪혀서 싹을 틔운다. 교육 쪽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학벌과 실력이 모두 필요했다. 나의 학벌과 실력으로는 괜찮은 교육 분야에 이력서도 내기 어려웠다.
현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꿈은 무슨 꿈이야. 당장 빚 갚을 돈 있어? 방세 낼 돈 있어? 너 나이가 몇인데?’ 수많은 부정의 말들이 나의 꿈을 꺾으려 들었다. 나는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오늘 하루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어야 하나. 무얼 해서 돈을 벌지.'라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좀 못 먹어도 먹기는 하고, 좀 못 입어도 입을 옷은 있다. 돈도 필요하면 벌면 된다. 내가 가진 위치에서 그냥 만족하면 꿈을 꿀 수 있다. 나는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많이 버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도 하지 않고 반듯한 직장도 없이 객지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신다고 못마땅해하셨다. 성공과 결과를 중요시하시는 아버지의 처지에서 보면 나는 실패자였다. 아버지는 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셨고, 내가 버는 돈의 액수로 나를 무시하셨다.
어느덧 나는 청춘과 젊음의 시간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어느 해 어버이날에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네 꿈을 이뤄라.’라는 말씀 하셨다. 아버지로부터 인생에서 처음으로 들은 격려였기에 감동했다.
나의 꿈은 교육을 통해서 청소년에게 희망을 주고 회복과 자립을 돕는 것이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은 길기만 했고 끝이 안 보였다. 그러나 인내로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세운 인생 모토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교육을 나누자’이다. 그림책 지도사 자격증이 장롱에서 자고 있어서 재능기부를 나갔다.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상상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책의 매력에 빠졌다. 작은 들꽃에 나의 꿈 이야기를 담아서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새 디지털 드로잉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패드와 펜슬도 카드 할부로 샀다. 처음에는 나름의 재미를 느꼈으나 갈수록 마음과 몸이 무거워졌다. 학원 가는 토요일 아침마다 어렵사리 일어났다. 그리기 연습도 학원에서 명맥을 이어갔다.
늦은 나이에 그림책을 만들겠다고 디지털 드로잉을 배운지 몇 개월이 지났다.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비 지원을 받아서 시작했다. 디지털 기계와 별로 안 친하지만 하나하나 배우면서 적응해 나갔다. 시간과 돈, 에너지를 투자해서 시작했으나 시큰둥해졌다.
다른 그림책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가 그려서 나와 격차가 많이 난다. 어느 순간 비교를 하면서 늘지 않는 그림 실력에 한숨이 나왔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만들기도 어려웠다. 잠자리에 들 때 눈물이 찔끔 났다. 새로운 도전의 기대감은 어디로 가고 의욕을 잃고 펜슬을 놓았다. 때때로 짙은 절망감으로 몰아가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난 이 나이 때까지 뭐 했지?’ 감정이 우울감으로 바닥을 치고 있을 때 다른 질문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언제까지 이런 푸념을 반복하면서 곱씹어야 하나?’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이 못다 산 삶을 덤으로 살고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에는 친한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각을 바꾸니 어두움에 바늘구멍만 한 빛이 들어왔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학원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본 창밖의 햇살이 유난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