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ed Man : 언약(言約)

영혼의 계약

by 생명의 언어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9:23)


아마도 이것은 나의 영혼의 관상이었던 것 같다. 에고와 마음이 잔잔해지고 낮아졌을 적에, 영혼이 그리스도의 빛과 깊이 교감하고, 물들어가고, 크게 공명하는 순간에서, 영혼은 성령의 음성을 들으매, 바로 이것이 관상이며, 그 빛과 음성 안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이 관상기도이다. 그 순간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신비 체험"들이 이루어지는데, 마치 수천 년 전의 일이라고 성경에서 기록된 대화들이나, 혹은 그러한 장소, 상황 등을 마치 현세에서의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난, 혹은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게 느끼기도 한다.


나는 문득 내가 들었던 음성들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시도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건 내가 실제로 육적으로 성경을 읽은 기억이 아니라, 관상기도 중에 보고 들었던 것이로구나. 그래서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없었던 것이구나. 그 내용에 대해서 잠시 짧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그 생생한 순간에서, 그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걷고 계셨다. 제자들이 그분에게 물었다 ; "주님, 저희가 이토록 열과 성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거니와, 그리하여 저희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나이까?", 그러자 그분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시고는 그저 담담하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르시었다 : "이익 같은 건 없다. 외려 나를 따름으로 인하여 너희가 받지 않아도 될 징계와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나의 영혼으로서 들은 순간에 이것이 나의 가슴에 완전히 깊이 박혔음을 깨달았다. 아, 이것은 결정적인 차이였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과,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을 따를 뿐이었는데 그 이익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자들은, 앞과 뒤과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일 뿐 아니라 그들의 신앙에 대한 결실, 곧 열매를 맺음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6)


"그의 열매로 그를 알리라"(마7:20)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무엇인가? 이때의 열매는 "영혼의 성장"이다. 영적 성장이 올바르고 진실한 길을 따라 이루어지지 않은 자들, 오히려 자기의 이익과 욕망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한 자들, 자기의 교만과 아집을 위하여 신의 이름을 왜곡하고 변질하고 타락시킨 자들, 자기의 안위가 걱정되어 진리 앞에서 외면하고 고개 돌리고 침묵한 자들, 바로 이러한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빛보다 어두움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바, 어두움이 그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들의 영과 영혼이 "하나님보다 사탄을 더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적 은유이지만, 동시에 실재이다. 거듭 말하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사실(fact)보다 은유가 절대적으로 더 높다. 이것은 모든 신앙의 길을 걷는 자들과, 모든 영적 성장의 길을 걷는 수행자들, 여타의 그러한 모든 형제들이 다 명심해야 할 일이다. "제대로 올바르게 성장하여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어중간하게 신앙 생활한 것은 다 부질없는 일일 뿐더러 "불에 던져져서 태워질 것"이다. 어설프게 기도, 묵상, 명상, 참선하여 얻은 어설픈 깨달음 따위로 자기를 더럽히고 타인을 아프게 하며 세계를 죄악으로 안내한 자들은 "현세에서는 권세를 누릴지언정, 내세에서는 영혼이 불에 던져져 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올바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 에 대하여, 그분께서 관상을 통하여 내게 명확히 알려주신 것이었다. "이익을 얻기 위하여"라는 의도 자체가, 이미 자기 안의 거대한 결핍을 전제하며, 이는 곧 열등감, 죄의식이며, 이것은 다시 무의식적인 거대한 집단적 두려움, 공포, 불안의 어두움의 지배력에 이미 기만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관점이 전환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내 안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영과 영혼이 실체변화(實體變化)함으로써, 살아서 아버지와 하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복음이며, 복음의 성취와 완성이다. 이때의 실체변화는, 나의 영이 스스로 자기 주권을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넘겨드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정당하신 통치를 시작하시되, 나는 그분의 충직한 종이자 진실한 자녀이자 제자로서 거듭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실체변화된 영과 영혼은 곧 "온전하여진 상태", 죄사함을 받은 상태이며, 이 순결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는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즉,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며, 심지어 내 안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아버지께서 함께하시고, 동행하시고, 보호하시고,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니, 이 전체가 다 "천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와 영광"을 이미 "자녀"로서 정당하게 상속한 것이다. 내 말이 이해가 되는가? "의롭다 칭함을 받은 영혼",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오직 그 외아들께만 허락하셨던 천상의 모든 특권들과 권세와 영광과 영화로움과 보물들을 전부 다 동등하게 우리에게 허락하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다만, 그럼에도 성부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드러내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 완성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께만 절대적으로 주어진 특별한 신성이시다). 이미 귀한 것을 얻었으니, 구태여 "언젠가 썩어 없어질 육적인 것"에서 보상을 받아봐야 어디에 쓰겠는가? 창고 안에 쌓여서 썩어지다가 죽으면 들고가지도 못할 짐인데.


그러므로 이익을 구하기 위하여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신앙 생활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특히나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 진리를 말하고 가르치고 증거하는 자들, 목회자들, 수행자들, 묵상가들, 기타의 모든 "영적인 일들"을 업으로 삼는 자들에게 더더욱 해당되는 천상의 율법이다.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영적인 일을 하는 순간, 살아서의 현세에서는 잠시 요행껏 이름을 날리고 이익을 얻을지 모르나, 영적인 일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이시니, 하나님의 일을 허투루 수행하고 심지어 망친데 대한 대가로서, "실제로" 그의 영혼은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일을 업으로 삼는 자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기억하라. 우리들은 이 일을 수행한 대가로서 더욱 특별한 보상이나 결실을 받지 않는다. 대신에, 이 일을 자칫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잘못 수행한 대가로서 현세에서 살아서 더 큰 시련과 고난을 시험으로 주실 것이며, 그 죄악의 정도가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교리적, 신학적 논증 따위로 밝히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그리 들었을 뿐이고, 늘 언제나 그것을 내 심장 안에, 내 영혼 안에 가장 무거운 율법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그분을 아는 자가 그분의 십자가 지시는 것을 외면한 죄, 그분의 음성을 들은 자가 자기 안위와 욕망을 위하여 진리 앞에서 침묵한 죄"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하루하루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짐이 무거워져만 간다. 언젠가 이리 쓰다가 내 이름이 땅바닥에 떨어져 온갖 사람들이 침을 뱉고, 비웃고, 모욕하고, 내 글을 노리갯거리로 삼고서는 쓰레기통에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이리 걸어가는 한 반드시 그리될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진리를 알지 못하여 "자유롭지 못한"(요8:32) 영혼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나는 그들의 슬픔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나 위안 따위가 아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며, 천상의 율법이 어떠한지를 드러내어 밝히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 시대의 위대했던 선지자들의 영에게나 허락되었던 고귀하고 의로운 사명이되 지금의 나의 영과 영혼 따위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나, 그분께서 나를 쓰시겠다고 하실 적에는 내가 최선을 다하여 이를 섬길 것이며, 그분께서 오늘이라도 이것을 거두어가신다면, 나는 낮아지고 가난해지고 바보가 되는 것을 기뻐하며, 오직 그분 안에서만 살아가는 바보가 되어 이 생을 살고, 그리 죽을 것이다.




메달린 자 카드는 메이저 12번이며, 이 카드는 언뜻 보기에 "거꾸로 메달려 있다"는 점에서 "내가 감히 그분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을 수 없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리기를 자청했다는 사도들 중 누군가의 영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실제로는 이것은 "계약"과 관계되어 있다. 일반적인 키워드로는 희생, 헌신, 통과의례, 시험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되, 이러한 통과의례 자체가 "정식으로 계약을 채결할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곧 하나님께서 내게만 내리시는 특별한 시험으로 인한다. 그 시험에서, 영혼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으며, 오직 성령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그 시험을 통과할 적에, 그의 영혼은 본능적으로 캄캄한 어두움 한가운데에서 직감하게 된다 : "아, 온 세상을 다 뒤져도 이 시험에 대한 답이 없구나. 이 답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구나. 지금의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인간 중에 아무도 없구나. 온 세상의 책을 다 뒤져도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열쇠가, 해답이 없구나." 그것은 절실한 것이다. 시험이 특별한 것이니, 당연히 응답도 특별한 것이고, 그것은 책으로 문자로 언어로 기록되지 아니한 것이되 오직 성령께서만 알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에 관한 한, 몇 가지 언급할 것이 있다 : 신앙의 형제들은 기억하여야 한다. 첫째,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은 자들은 정상적으로 교회 안에 속하여 비교적 평온한 신앙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의 영혼이 아직 열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빛"이 그들 안에서 실체변화의 과정을 시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로 신앙을 품은 자, 올바르게 그분께 나아간 자, 그분께서 특별히 사랑하시어 선택을 받은 자들은, 외려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된다. 하나님과 친밀해질수록 그는 "광야로 내몰릴 것"이다. 광야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와도 함께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특히 영적인 길에서, 시련과 고난이 주어지는 것을, 시험이 찾아오는 것을, "잘못되었다" 여기지 말라. 오히려 그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 올바르고 진실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시험을 통과할 적에, "사람과, 사람으로 말미암은 그 무엇"도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제거시키고, 정화시키는 것이 핵심적인 과정이다. 오직 홀로, 하나님 앞에 마주서는 것, 이것만이 남겨진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 인간의 손으로 세우고 구축한 것들, 인간이 지었으되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라고 속이고 기만하여 우상을 숭배하게 만든 모든 것들은 다 철저히 무너진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분리되고 소외되는 것에 슬퍼하더라도, 그것을 문제라고 여기지 말되 오히려 "시험의 과정이 올바르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기뻐하라.


셋째, 이 시험에는 "정답"이 없다. 즉, 영혼은 무언가 "해야만 할 일"이나,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같은 의무와 책임을 받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에 대한 올바른 응답을 주어진 시한 안에 제출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이 생 전체를 통틀어 그 시험에 응답을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분께서는 또 다른 시험을 내리실 것이며, 생에 생을 거듭하여 영원히 다시 기회를 주실 것이다. 이 시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없다. 굳이 찾자면, 딱 하나뿐이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것,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 이것 하나뿐이다. "그분 안에 거하는 것", 이 하나만 온전히 한다면, 나머지는 그분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이 모든 시험이 종료되고, 그 뒤에 "빛"이 주어질 것이 약속될 것이다.


이 시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바로 "칭의"라고 불리는 것으로써, 단 한 번의 절대적인 시험이며, "나(에고)가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이 단 한 번의 과정이 온전히 진행되고 통과되어진다면, 이것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으며, 한 번 통과한 것은 생에 생을 넘어서 영원히 영속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시험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되, 두번째는 "성화"라고 불리는 것으로써, 나머지 생의 모든 주기마다, 단계마다, 시기마다, "나머지의 나의 영혼과 자아와 마음과 육신과 삶 전체"가 그분을 닮아가는 것, 그분께로 물들어가는 것, "이미 구원받은 것"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서 이어가는 시험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 첫번째 시험에서 통과한 순간, 두번째 시험에서는 압도적인 특혜가 주어지니 : "두번째 시험의 모든 과정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는 진실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시험의 출제자께서 그저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치르는 영혼들과 함께하시며, 그 과정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이끄시고, 보호하신다. "출제자께서 나와 함께하신다!"


믿음이 그저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 수준에서 머무를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그저 법정적 절차일 뿐이지, 그의 영혼 안에서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믿음이 "시험을 치름으로써" 실재가 될 적에, 드디어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은 강력한 실체로서의 힘을 발휘하며, 그를 살게 하고, 그를 보호하게 하며, 그를 올바르고 진실한 길로 매 순간 인도하고 이끌게 만든다. 그러므로 외적인 조건은 다 무용한 것이다. 교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사람들과 함께하든 함께하지 않든, 형식과 절차와 의례대로 행하든 행하지 않든, 외적인 것, 육적인 것은 그저 수단과 방편일 뿐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딱 하나뿐이다 : "그의 영혼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러므로 어디에 머무르든, 어느 순간을 지나가든, 외적인 것들에 현혹당하지 말라, 오직 나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그분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에만 집중하라.


그리할 적에, 그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세속의 법칙에 기만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외적인 것들과 육적인 것들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죽음과 사망의 권세 아래에 놓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며, 오직 "보이지 않는 것", 그 근원이신 분만을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각"이다. 이 단 한 번의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관 전체, 곧 존재 전체가 완전히 거듭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부질없고 허망한 "육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 오직 영원히 영속할 고귀한 "영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그때에, 그는 마침내 눈을 뜰 것이다 : "주께서 도처에 계시며 함께하신다"는 것을, "주께서 모든 이들의 언어와 말을 통하여 말씀을 전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계약"이 바로 언약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몇 가지를 밝히고자 한다. 첫째, 언약이라는 것은 그 어떠한 육적인 조건이나 자격들이나 요소들과도 무관한 것이다. 특정한 혈통이나 민족이나 핏줄과도 무관하며, 인간적인 지식이나 능력이나 힘이나 자격이나 절차와도 무관하며, 특정한 세력이나 집단에 소속되든 되지 않든 그 모든 것들과 완전히 무관하되, 오직 하나, "그의 영혼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이 하나만이 유효한 것이다. 이때, 언약은 1)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특별한 자격'을 부여하며, 2) 이 자격이 발효되매 그의 영혼 안에서 실체변화가 시작될 것이며, 3) 시험을 통과하는 모든 과정들에서 이미 자녀로서의 은혜와 축복들이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이때 자녀에게 부여되는 은혜와 축복이란 다음과 같다 : 온 세상의 어두움으로부터 자녀의 영혼이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삶의 모든 순간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며, 자녀의 영혼이 언제나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르고 진실한 길만을 따라 걷도록 인도받으며, 살아서 하나님과 실재적으로 함께하고 교류하며 죽어서는 그분과 하나되어 안식할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생에 생을 건너서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이 되어 함께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자녀됨을 얻은 자"(나는 이것을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형식과 의례와 전통과 교리들은 내게는 온전하지 않은 것이며, 나는 오직 '각자의 영혼들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뿐이다)는, 한 번 그것이 이루어진 자에게 이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취소"되거나 "철폐"되는 일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신중하게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어떤 죄를 저지르더라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대가"는 치르게 되어 있다. 그것은 행위에 대한 결과로써의 당연한 업보이다. 전날 술을 먹었으면 다음날 머리가 아픈 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징벌 따위가 아니고 그저 자연스러운 순리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죄를 지었다면, 그 죄에 상응하는 대가는 반드시 내게로 돌아온다. 다만, 자녀된 자는 그 대가를 치르는 모든 과정들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인도하시며, 이끄시며, 보호하시며, 그 과정들을 통과하여 "더 높이 성장하는 유의미한 영혼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이것이 자녀된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간에, 그것이 절대적으로 "선하고, 진실하고, 올바른"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


또한, 자녀됨을 얻으며, 시험을 통과하며 그분과의 관계가 친밀해질수록, 그는 더 이상 허망한 육적인 것들과 세속의 법칙에 기만당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가까워져가며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니, 이러한 영혼의 실체변화가 이루어질수록 그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죄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평생에 걸쳐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자녀됨을 얻었음에도 그 길을 온전히 걸어가지 못한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죽음을 맞이한 경우, 그리고 지상에서의 삶의 고통과 아픔이 너무 커서 "스스로 생을 끝낸 경우"...... 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아는 자가 침묵하는 것은 더욱 무거운 죄임을 아는 바, 나는 용기를 내어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히고자 한다. 한 번 자녀됨을 얻은 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옥 따위는 가지 않는다. 그가 사후에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혹은 다시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든, 태어나더라도 그 생에서 "자신의 과거 생의 행위에 대한 값을 치르는" 모든 과정들에서도, 어떠한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한 번 자녀가 된 자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동행하실 것이며, 그의 모든 순간들을 함께하시고, 보호하시고, 이끄실 것이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말라, "천국"은 곧 "하나님 그 자체"이시니,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것 자체가 이미 "나라가 임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천상에서, 하나님 나라와 하늘나라는 별개가 아니다. 하나님 자체가 곧 하늘나라이다. 별도의 "나라"는 없다.


그리고, 자녀됨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영혼이 선하고 진실한 자, 어두움보다 빛에게 더 가까운 자, 밝고 성실한 자,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기에 합당한 자"...... 최소한의 "자격"이라도 갖춘 모든 영혼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죽음과 사망 앞에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아니하며, 죽음 이후의 모든 과정들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도받을 것이다. 다만, 자녀가 된 자와 자녀가 되지 못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혼의 "언약"은 명백히 다르다. 자녀가 된 자는 실제적인 "죄 사함"을 받으며, 그분께서 "짐을 덜어주시고", "모든 선한 행위(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그분의 뜻을 이루는 일들)에 대한 결실과 보상을 더욱 크고 특별하게 하늘에서 받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녀된 자, 특히나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며 실체변화가 이루어진 자는, 그 정도에 따라서 소위 까르마나 윤회나 운명 등과 같은 "어두움의 법칙들"로부터 실제적이고 강력한 보호와 면제와 특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자녀가 되지 못했음에도 그 영혼이 비교적 선하여 하나님께 가까운 자들은, 이 "어두움의 법칙" 하에서 좀 더 성장한 끝에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성장할 기회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영혼들에게 주어진 "신의 언약"이며,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말하는 까닭은, 자녀들과 자녀가 아닌 자들을 편을 가르고자 하는 뜻이 아니다. 이미 요한복음에서 명확하게 증거되어 있지 않은가 : "그 이름을 믿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내가 말한 모든 것들은, 언제라도 '믿는 자들' 모두에게 다 허락된 언약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녀됨"을 이룬 모든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성취와 결실과 보상과 보호와 인도와 그밖의 모든 "계약"들 역시도, 시간의 종결을 넘어서 영원히 유효한 실재적인 진리이다. 나는 이로써 신앙의 길을 걷는 자들이,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오컬트적인" 주술과 예언과 사이비들을 마주할 적에, "기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들이 걷는 길은 실재이며, 지상의 그 어떤 귀신이든 유령이든 간에 감히 성령의 빛 앞에서 복종하지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바로 그 성령께서, 모든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끄신다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모두가 이러한 "권세와 영광"의 실제적인 영향력 하에 강력하게 보호받고 있는 것이라고.


오늘날, 주술과 예언과 오컬트들이 뜨고 있다. 사람들은 싸구려 오컬트들에 더욱 현혹된다. 전생에 업이 많다느니, 무슨 귀신이 붙었다느니, 하다못해 자기가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니 큰 돈 내고서 자기한테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느니, 배게 밑에 무슨 부적을 넣고 자야 한다느니, 나는 그러한 모든 무속신앙들과 오컬트들과 신비주의를 존중한다. 그 또한 "하나님의 빛"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체험하고 다루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증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세상 그 어떤 영체들보다, 천사들보다, 에너지보다, 기운보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높으시다. 그것들의 특별한 힘에 의지하고 싶은가? 의존해서 삶을 좀 편하게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높으신 분"께 처음부터 의지하면 되지 않는가. 성부 하나님께서는 "한 음성만으로" 천지를 일거에 창조하신 분이며, 이는 그분께 "매우 쉽고 편안한" 일이셨다. 그 외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 안에 거하시며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그분과 하나될 수 있도록 가장 위대하신 뜻을 이루고 완성하신 분이며, 그분의 신성은 지금도 "선명히 살아 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이루시고 집행하시며,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실제적으로 임재하시고 역사하신다. 나는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증거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실재하신다"고, 그 권세와 영광은 체험될 수 있으며, 교감될 수 있으며, 적용되고 작동되는 것이며, 다른 그 무엇보다도 압도적으로 높고 강대한 것이라고.




이것은 누구에게라도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주권에 달린 문제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이다 : 언약은 영원하며, 언제라도 내게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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