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어두운 밤

고요한 지옥, 십자가의 신앙

by 생명의 언어

보편성과 개인성은 서로 병행될 수가 없는 듯하다.


출발선 앞에 100명이 선다. 그 중 90명 이상은 "굳이 왜 빨리 가야 해?" 하고서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산책하듯이 걷거나, 여러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자리 펴고 앉아서 점심도 먹고, 그렇게 나아간다. 그들은 여정에서 뒤쳐졌으나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라는 집단성과 보편성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홀로 있을 때, 정체와 퇴보는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하나, 여럿이서 함께 정체되고 퇴보된다면 오히려 편안함과 익숙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중 10명 미만의 소수의 사람들은 그 집단성 안에 어울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자기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하면서, 또 시험받으면서, 그렇게 과거의 껍데기를 벗고 또 새로운 빛을 향하여 가까워져 간다. 그렇게 나아갈 적에, 주변을 돌아보니 함께 나아가는 이들이 거의 없다. 선두의 그룹들은 필연적으로 혼자다. 그들 각자는 고유하고 독립적인 영혼들이므로, "집단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두의 그룹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한참 앞선 영혼들이 있음을 그들은 그들 자신의 진실함과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말미암아 어렴풋이 느끼고 자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두에 속한 외로운 한 영혼이, 세속의 삶 속에서 나머지 90명의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마주할 적에,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허락된 말보다 허락되지 않은 말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는 것도. 침묵 속에서 그는 외롭다. 그 집단성을 무기 삼아서 마치 "다수는 정의이고, 소수는 돌연변이이고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심판의 칼을 휘두르는 것을 그저 묵묵히 지켜본다. 성실히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그들은 "너무 빨리 가지 마라"고 조언한다. 그럴 거면 왜 출발선 앞에 섰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서는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반드시 죽음이라는 끝을 마주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출발선 앞에 선 것이다. 서로 함께 의지하며 정체되고 퇴보되면 죽음이 오지 않는가. 오히려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을 적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죽음과 사망의 충격 앞에서 허무히 무너지게 될 뿐.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고, 재단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길이 다를 뿐이다.


홀로 묵묵히 나아가는 자는 언제나 외롭다. 언제나 이해받지 못한다. 언제나 의지할 곳이 없다. 언제나 막막하고, 쓸쓸하며, 영혼의 빛과 함께 흐르는 "고요한 슬픔"이 있다.




세속의 세계에서 재능의 유무가 불평등을 야기하듯이, 영적 세계에서도 재능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심지어 세속에서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나 노력하면 동등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그 말을 하는 영혼의 순수성을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타락해본 적 없어서 구원받은 적도 없는" 순수한 이상주의자의 공허한 말일 뿐이라고 여긴다. 노력한 만큼 성장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성장에 비하여 노력의 양과 질은 정비례하지 않으며, 정량적이지도 않다. 누군가는 단 1%의 성장을 위하여 지독한 고통과 희생을 치러야 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적당히 견딜만한 시련을 통하여 100%, 200%의 성장을 이루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진실로 영적 세계에서 재능이란 특별한 힘이나 능력이나 지혜 같은 게 아니다. 명상 중에 빛을 본다거나 전생을 본다거나 미래를 읽는다거나 귀신을 부린다거나 하여튼 이런 것들은 신비주의이자 오컬트이며, 그것들은 "가장 높은 곳"이 될 수 없다. 다만, 진실한 재능은 :


1. 진리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

2. 진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마음.

3. 진리와 신성에 경외하고, 감동하며, 평생을 다하여 열망하는 마음.


오직 이것이며...... 이렇게 타고난 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진리에 관심을 갖고, 신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하며, 다른 세속의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으되 오직 진리를 말하고 신성을 말하는 자에게 이끌리게 된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다. 그저 그들 존재의 고유한 진동수이고, 영혼의 이끌림이고 공명일 뿐이다.


나는 분명히 영적인 재능과 자질과 지혜를 타고났다.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음에도 성장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부모 뻘 되는 어른들에게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풀이하여 설명하고 해설하고 안내하는 것에 능숙했으며, 한 번도 지금까지 수업이나 강의를 진행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껴본 일이 없었고, 글쓰기에 있어서 "사전 준비와 계획"이라는 것을 해본 일이 없었으며, 그저 나의 영이 고요해지는 순간, 나의 영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신과 교감하고 신성에 몰입할 적에 내 안에서 그러한 것들이 흘러나왔을 뿐이었고, 그 순간에 나는 행위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서 그 신성한 과정에 동참할 뿐이었다. 나는 이것을 "신성한 수동태"라 이름하였으며, 신성한 수동태에 관한 한, 나는 태어나자마자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물고기와 같았다. 그것이 내게 한 번도 어려운 적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시련이 오면 도망쳤고, 고난이 오면 외면했으되, 나는 시련이 올수록 더욱 간절하게 진리를 찾았고 고난이 올수록 더욱 절실하게 신을 찾았다. 다른 이들은 약해지고 낮아지는 것을 죄악시하고 이를 트집 삼아서 타인을 비판하고 심판하려 들었으나, 나는 나 자신의 약해지고 낮아짐을 토대로 하여 더욱 깊이 몰입하였고 또한 타인의 약함과 결점에 대하여 똑같이 심판하려 드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토대 삼아서 주님께 더욱 절실히 나아가고자 하는 동력으로 삼았다. 그것이 나의 특별함이었다. 나의 특별함은 능력이나 힘에 있지 않았고, 오직 어두움에 속지 않되 어두움 가운데에서도 어떻게든 빛을 향하여 이끌려가고 가까워져가려고 하는 이 영혼의 이끌림, 이것이었다. 결국,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느리게 성장하는 영혼에게는 친절하시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는 영혼들에게는 그만큼의 더욱 무거운 시험을 허락하신다. 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은혜나 사랑으로 만나지 않았다. "이 지상에서는 감히 나의 존경과 경외를 받을 자가 아무도 없었으되, 진실로 내가 경외하고 존경할 분은 천상에 계셨다." 나는 그분의 엄격함과 의로움을 사랑했다. 내가 아무리 울며 발악을 하더라도 이 시험의 단 1%라도 면해주지 않으시는 그분의 잔인하리만치 엄격한 의로움과 그 고귀함을 사랑했고, 열망했다.


그러한 고로, 지난 수 년간의 나의 영적 성장의 여정들은, 영혼의 어두운 밤들은, 내게 있어서 "고요한 지옥" 한가운데였다. 나는 특별히 깨어 있는 영으로, 그 모든 지옥 같은 시간들을, 내면의 슬픔과 아픔과 상처와 외로움과 쓸쓸함과 허망함들을, 온전히 깨어서 지나와야만 했다. 그리고 육의 상황들은 갈수록 무너져갔으며, 지금, 나는 더 이상 받을 시련조차 없을 만큼 벼랑 끝을 밟고 있다. 차라리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뭐라도 해보련만, 완벽하게 아무런 대책이 없고 그 어떤 퇴로도 없는 고로, 오히려 편안할 지경이다. 매번 응답은 오지 않았고, 매번 역사는 늦추어졌으며, 겨우 싹튼 희망은 때가 되면 잔인하리만치 다 거두어가셨다. 내가 진실로 함께할 것이라 믿었던 형제들과 강제로 작별해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죄와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신성과 진리 그 자체를 외면하지는 말아달라는 작별인사였다. 현실은 갈수록 무너져갔고,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으며, 끝없는 기약 없는 기다림만이 이어졌다.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언제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움은 깊었다. 새벽은 길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매번 포기하지 않았고, 도망치지 않았으며, 매번 그분의 음성을 들었고, 들은 고로 순종했으며, 지금까지 살아 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 곧 그분께 대한 나의 충성과 열망의 표증이다. 나와 하나님의 관계성은 사랑이나 은혜가 아닌 충성이기 때문이며, 그 충성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내 심장 안에 새겨져 있으니 : "기사는 왕의 의지에 질문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순종한다."




내게 이 길이 쉬운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지금, 나는 운명의 기로를 밟고 서 있다. 아마도 이 문을 통과하게 된다면, 더 많은 영혼들에게 더욱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도록 허락받을 것이나, 만약 이 문을 건너지 못한다면 나는 뒤를 기약할 수가 없다. 나누고 싶어도,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함부로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능력과 힘과 재능과 자질과 지혜들은 다 나의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내게 주어진 것이었으므로, 오로지 주신 분의 주권 하에 쓰임받아야 할 뿐이다.


만약 그것들을 나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서 썼더라면, 지금쯤 나는 대단한 사이비 교주가 되었든지, 아니면 이미 진작에 천벌을 받아서 죽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오직 지금의 시기 한가운데에서 증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육의 고통은 무의미한 윤회일 뿐이지만, 영의 고통은 고통받은 만큼 반드시 성장한다. 이것이 영적 성장의 길을 걷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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