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이름

자기 의(義)를 묵상하며

by 생명의 언어


"신을 믿을 바에야 나 자신을 믿겠다."


우연히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었다. 스치듯이 들은 말이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영적 성장의 단계와 과정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언어는 무장해제되고, 말은 아득히 멀어진다. 나는 그 찰나의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알았으나, 그것은 언어보다 더 높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고, 나는 그 앞에서 결국 그 어떠한 말도 찾지 못한 채로,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돌아와서는 나의 짐을 지고 나의 시험을 치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책을 지독히도 안 읽는 내가, 예전 사춘기 때 김훈 작가님의 책을 읽었고 또 좋아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그의 문장들은 마치 높고 중후한 영(Spirit)의 날선 칼날 같이 예리한 것이어서, 내 안의 영이 그의 영에게 공명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 속의 문장들은 다 이제 날아갔고, 그분이 작가의 말에서 남긴 한 문장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


"예전에는 국어사전에 있는 말이라면 다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똑같은 심정을 매번 느낀다. 아직 개화되지 않은 영혼, 영적 세계에 대해서 아직 알지 못하는 초심자, 입문자, 세속에 속한 사람들, 보이는 물질적 몸만이 전부인 줄 알며, 보이지 않는 마음, 자아, 무의식, 의식, 정신, 영혼 등의 영적인 몸은 없거나 중요하지 않은 줄 아는 이들...... 그들 중에서는 타고나기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이 순수하고 정신이 열려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 있는 한편,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악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은, "해야 할 숙제를 여지껏 하지 않은" 그 상태이다.


나는 그들 앞에서 이제 그들을 심판하려 들거나, 그들의 상태를 기준 삼아서 나의 우월감을 스스로 자랑하거나, 그로 말미암아 쾌락이나 욕망의 충족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그 짧은 한 마디를 듣고 나서 내 마음이 종일 무거웠다. 그건 그의 성장이고, 또한 그만을 위해 예비하신 그분의 뜻과 그 뜻이 이루어질 때가 다 정해져 있음을 내가 이미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리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내 안에 계신 그분께서 내게 질문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너 혼자서만 나를 알고 나와 함께한다고 하여 저 아이들을 다 버리고 외면하겠느냐?"


물론, 나의 영의 응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께서 십자가 지신 길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 의지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그 뜻이 내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그분의 신성이고, 그분의 신성은 그분의 의지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앞에서 나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과 가난함을 철저하게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금은 비록 무탈히 사는 듯하여도 그리 살아간 끝에 어떤 일들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거의 직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그를 위하여 대신 짐을 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를 위하여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진실이 나를 매우 무겁게 했다.


내가 늘 비판하여 왔던 것은, 소승의 전통에 안주하려고 드는 것이다. 기독교 영지주의는 자신들만의 특수성과 배타성에 집착한 나머지 복음을 널리 전파하라는 그분의 의지를, 곧 아버지의 뜻을 저버렸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나 혼자서만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서, 혼자서 은거하여 숲이나 산으로 들어가서는 그 진리를 음미하면서 유유자적하며 삶을 흘려보내다가 그리 무심히 죽으려는가? 나 혼자서만 신을 만났다고 하여 골방으로 들어가서는 그 안에서 신을 "독점"하면서, 저 바깥에서 신의 응답을 갈망하고 갈구하며 울부짖는 자들을 외면하려는가? 자기 혼자서만 지혜를 허락받았다고 하여...... 그들의 무지함과 그들의 어리석음과 이로부터 말미암은 그들의 오만함으로 인하여, 그들의 순결한 영과 영혼이 고통받고 있는 그 억겁의 죄와 업과 까르마 앞에서, 침묵하려는가? 차라리 깨닫지 못했다면 모르거니외, 눈을 떠놓고서도 그걸 못본 척하려는가?


나는 그리할 수 없다. 나는 진실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사랑하며, 그분의 뜻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에 계시며, 그것은 인간의 윤리나 도덕 따위가 아닌, 신의 성품이자 자비이며, 빛의 원리이자 운동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만을 기뻐하며,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자만을 사랑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선택받을 자격이 없었다. 자격이 없는 것을 넘어서, 원래라면 응당 마땅한 업보와 까르마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그분은 나를 선택하신 것도 모자라서 나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한다고, 내가 고작해야 깃털처럼 가벼운 내 시험을 치르느라 발버둥치는 그 어두움 한가운데에서도 늘 그리 말씀해주셨다. 나의 사랑은 곧 나의 빚이다. 나는 그분께 빚을 졌다. 그 빚을 나는 외면할 수 없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서 내가 갚아나가야 할 은혜이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아직 허락이 떨어지지 못했다. 종종, 한 번씩, 은밀하게 출정의 기회를 주시겠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만큼 내멋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그 안에서, 나는 이 마음의 무거움을 또한 사랑과 자비와 은혜라는 그분의 이름과 신성과 의지를 통하여 찬양하고 또한 예배하면서, 어두움 가운데에서 엎드려 때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비록 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급급하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간 끝에, 언젠가 삶이 보다 안정되고 여유가 된다면......


이 조차도 구차한 변명에 불과함을, 치졸하고 비겁한 변명에 불과함을,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나의 부족함이고, 나의 가난함이며, 나아가 나의 죄다. 골고다 언덕에서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실 적에, 그분이 누구신지 다 알았고, 그분께서 어떤 일을 이루시는지를 다 알았고, 그분께서 왜 그리 하시는지를 다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목숨이 아까워서 그분의 눈빛을 피하고 그분으로부터 도망쳐서 대중 뒤에 비겁하게 숨은 외면의 죄. 나는 선명히 보았다.그러므로 이를 거부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그분처럼 위대할 수도 고귀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내가 잘하는 것은 오직 하나, 그 이름을 절실히 사랑하는 것 하나이니...... 나는 부족함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내게 허락하신 재능과 자질과 능력과 힘과 지혜들을 사용하여, 허락되는 자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전해야 할 그분의 뜻을 전하면서, 때로는 손 잡고 인도하고 때로는 내가 대신 짐을 짊어지면서, 평생 그리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말은 그분께서 내게 이 "빚"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처참한 지경인지를 제대로 모른다. 그건 그들이 아직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생 장님으로 살아왔기에 자기 몰꼴이 어떠한지를 두 눈 뜨고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을 핑계 삼아 비겁하게 그 뒤에 숨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직 심판을 아들에게 다 맡기셨으니"(요5:22), 그분은 자신의 의지대로 얼마든지 심판을 행하실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끝까지 십자가를 지셨고, 심지어 십자가 위에 매달리셨을 때 그분을 향하여 비웃고 모욕하고 침을 뱉고 조롱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죄인들에게까지도,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권세를 쓰지 않으셨으며 오직 아버지께서 외아들에게만 허락하신 그 특권을, "죄인들을 용서하고 사하여달라"고 직권으로 청을 드리는데에만 사용하셨다. 그것이 그분의 의지이며, 그분의 신성이고, 그분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것을 반드시 유념하고 묵념해야만 한다.


이 길을 걷는데 대한 보상 따위는 없다. 이 길을 걷는데 대하여 얻는 이익이나 인정이나 명예 따위도 없다. 오히려 이 길을 걸을수록,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이며, 가족이나 친지들마저도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면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들이 가난하고 어려울 적에 내가 가서 손을 내밀어주고 이끌고 인도하였으매 정작 내가 가난해지고 힘겨워졌을 적에는 그들이 나를 재단하고 심판한 끝에 등을 돌릴 것이다. 그것이 이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걷는 것 자체에 감동하고 기뻐하고 경외하면서 그리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의 실체이다.


나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한평생이 얼마나 처참한 지경이었는지를,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가장 깊어진 어두움과 시련과 고난을 앞두면서, 그 인과응보를 목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련을 무사히 통과하여서, 이제는 실천하여 행하는 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가장 높고 강한 힘을 지닌 채로 가장 어둡고 낮은 곳으로 가서, 가장 외롭고 은밀하게, 그러나 가장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그분의 고귀함과 의로움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 닮아갈 수 있기를, 부디 이제는 그리할 수 있는 "출정"의 기회가 허락되기를...... 결국 소망하고 바란다.



문득, 짐이 무겁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여 산책길에 놀이터 미끄럼틀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되, 나의 기도에 그분은 빗방울 하나를 코에 떨어뜨리시는 것으로 응답하셨다.


눈앞의 완벽한 절망과 두려움이 압도적으로 나를 점령하기 위해서 다가오더라도, 나는 그 가운데에서 하루를 살고, 또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리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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