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연재 방식 설명하기
새로운 브런치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평소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내친김에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저의 다른 브런치북들과는 달리, 이 책은 아마도 꽤 자유롭고 가볍고 편안하게 쓰게 될 듯합니다. 진리와 신성에 대해서 다소 무겁게 글을 썼던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신께서 제게만 허락하신 능력과 매력들을 살려서, 많은 분들이 말씀의 참 맛을 느끼고 즐기실 수 있도록 함께 자유롭게 유영해보려고 해요.
본격적인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몇 가지 일러둘 것들이 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교회 바깥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다만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며 기쁨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저는 교회나 기독교의 교리, 신학, 체계 등을 참고하기도 하고 몰입하거나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기존의 체계나 틀에 구속받지 않고, 그리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은 신께서 저를 교회 바깥에 두신 이유이기도 합니다(저 스스로 그렇게 느낍니다).
따라서 기존의 교리적, 신학적 관점에서, 정통 기독교인의 신앙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이 책의 방식 자체가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저의 모든 글들 전체가, 언뜻 보기에는 기독교인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이더라도, 여러 부분들에서 저는 정통 기독교와는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 점을 감안하시어, 특정 종교에 집착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신앙을 추구하시는 분들을 위한 책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분들께는, 그분들의 신앙을 존중하고 예의를 표하면서, 정중히 이 책에서 떠나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종교적 신념이 강하신 분들을 위해서 먼저 이것을 안내드리려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 책에서는 성경 말씀에 대해서 다룰 것입니다.
다만, 저 자신도 그러하듯이, 성경 전체를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구약의 그 특유의 "계보들"에서 저를 포함하여 상당수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신앙인들과 영성인들이 좌절을 겪고는 합니다.
저는 신앙이 그저 엄숙하고 경건하기만 한 방식으로 남겨지는 것은, 말씀을 박제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께서 오늘날의 백성들이 그 글자와 언어들을 자유로이 유행어도 만들고 글자를 가지고 장난도 치는 모습들을 보시면서 너무나도 기뻐하실 것과 같은 맥락으로,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주실 때에는 자녀들이 말씀 앞에서 무작정 두려워하면서 그저 글자 자체를 신처럼 숭상하기를 바라지는 않으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말씀이 일상 속에서 진짜로 생명이 되고, 동반자가 되고, 의지할 데가 되며, 말씀을 즐기고, 향유하고,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너무 지나친 종교적 형식과 틀을 넘어선 있는 그대로의 자유로운 신에 대한 찬양이고 예배라고 믿습니다.
사실, 저라는 인간의 영혼 자체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좋든 나쁘든 좀 삐딱하고 엉뚱하죠.
저의 장점은 "연결하기"입니다. 저는 타로카드를 처음 배울 때에도, 본능적으로 여러 장의 카드들을 조합하고 연결하여 이야기(스토리, 해석)의 구조를 읽어내고 이를 자유로이 풀이하는 일에 아주 능숙했습니다. 이 점에서 저는 분명한 재능을 타고났습니다.
오쇼젠 타로를 이용하여 상담을 진행할 때에도, 오쇼젠 타로 각각이 지닌 영적인 메시지들도 물론 훌륭하지만, 그 카드들을 여러 장 연결했을 때 그 안에서 드러나는, 내담자만을 위한 고유한 영적인 메시지들을 읽어내고 전해드릴 수 있었고, 이 자체에 제게 상담 받으신 내담자 분들께서 너무나도 기뻐하셨던 순간들을 여전히 제 가슴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재능을 살려보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매주 연재할 때마다, AI의 도움을 받아서 성경 전체에서 무작위로 말씀 구절 3개를 주제로 삼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연결"하기 위하여 오쇼젠 타로 3장도 AI에게 무작위로 전달받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양자를 연결하여 나타나는 고유한 숨겨진 "메시지"들을 읽어내고 이것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이 방식에 대한 혹시 모를 오해를 먼저 풀어야 할 듯합니다. 이것은 점(占),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을 치는 방식이 아닙니다. 말씀을 이용해서 길흉화복을 점치거나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그러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말씀의 "참 맛"을 알고, 또한 말씀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마음과 열망을 되찾고자, 이와 같이 새로운 방식으로 영적인 메시지들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종교적 관점들에서는 불편해보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충분히 안내를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
저는 오직 저의 재능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배타성을 넘어서" 말씀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과 매력과 생명들을 온전히 체험하고 즐기고 삶 속에서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의 형식은 대략 다음과 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1. 주제 : 그 주의 연재글의 메인 주제.
2. 하위 주제 : 인공지능을 통해서 추출받은 3개의 말씀과, 3장의 오쇼젠 타로카드.
3. 풀이 : 이에 대한 해설과 풀이.
글쓰기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럼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동안 말씀을 나와 내 삶과 무관한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왔다면 이 책을 통해서 말씀에 담긴 살아 있는 신성과 생명의 아름다움과 매력과 깊이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관념적인 것은 최대한 멀리하되 살아 숨쉬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언어와 말들로 채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매주 월요일 오전 8시에 연재될 것입니다. 일주일을 시작하시는 "말씀 이야기"로 받아서 읽으실 수 있도록 준비하려 합니다. 물론 분량도 그에 맞춰, 너무 부담스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매주 신문 연재나 웹툰, 웹소설 같은 걸 읽으시는 느낌과 비슷하게요.
저에게 있어서 이러한 방식들, 그러니까 사람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난 요소들 사이에서의 어떤 연결성 같은 것들을 직관적으로 읽어내고 찾아내는 것은, 그 안에 숨겨진 진리를 직접 체험하고 맛보고 몰입하고 체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열쁨'이라는 단어는, 열망 + 기쁨입니다. 이것은 영혼(Soul)의 에너지와 빛을 표현하는 언어이고, 저는 이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아마도 제 묘비명에는 "경외, 열망, 기쁨", 이렇게 세 단어가 쓰여질 것 같아요.
이것이 제게 언제나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혼자만 알기 아까운 이러한 기쁨들을 "양식"으로 주변에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즐거움들을, 열망과 기쁨들을 전하는 책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인공지능은 제미나이 무료 버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프롤로그이니까 그냥 넘기기 뭣해서, 한 번 실험을 해볼까요? 지금 전달받은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시119:105]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전5:18]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물의 10번 : 조화 (Harmony)
무지개 5번 : 소외 (The Outsider)
구름의 왕 : 통제 (Control)
사실 이것은 "묵상"을 체험하기 위한 방편 같기도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말씀 자체는 물론 귀한 것이지만, 이렇게만 읽으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당황하게 됩니다. 마치 아무 지시도 명령도 없이 불쑥 낯선 곳에 던져진 고아마냥 말입니다.
그래서 우선, 첫번째 말씀을 조화 카드와 연결해보겠습니다. 오쇼젠에서 조화 카드는 "죽음과 삶이 하나를 이루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참고로 이 책에서는 모던 타로의 의미가 아닌 오직 오쇼젠 타로의 메시지만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그리스도적 언어로 풀이하면, "생명과 하나가 되다, 생명 안에 들어오다"는 뜻입니다. 상당히 직관적이지 않습니까?
나의 내면이 언제나 생명으로 가득하여 흐르는 것, 그리하여 죽음도 삶도 잊고 그저 생명 안에서 생명의 흐름에 자기를 내맡겨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사도 요한이 증거한 요한복음의 본질이거든요. 이미 다 아시겠지만, 저는 요한복음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 책의 말씀들은 어딘가 좀 다른 느낌이 들어요.
그리하여 첫번째 말씀에서, 우리는 "내 발 밑의 어두움을 비추고, 나의 길을 밝히시는" 주의 말씀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의 매우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즉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다른 표현으로는, 내면의 신성)와 하나될 때, 그것이 곧 생명이고, 그 생명과 하나가 되는 순간, 내 안에서 자유롭고 영원하게 흐르는 그 생명의 흐름을 통해서 주께서 내게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의 신성(이때의 신성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신성이 내 안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을 나의 영혼이 깊이 느끼고, 체험하고, 그 안에 몰입할 때, 그분의 신성과 나의 영혼이 하나가 되며, 그 하나된 것이 곧 생명이니, 생명이 내 안에서 흐르게 됩니다. 그 생명은 자아나 마음과는 전혀 다른 결이라는 것을, 느껴본 사람은 다 알지요. 그렇게 생명과 하나되었을 때, 주께서는 다른 특별한 방식(예: 환시, 환영, 계시 등)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생명을 통해서 나를 비추시고 밝히시고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말씀을 "소외" 카드와 연결해보겠습니다. 오쇼젠에서 소외는 단순히 아웃사이더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지배당합니다. 그래서 "집단 안에 속하고 싶은 집착"이 늘 광기처럼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두려움, 공포, 불안)이 언제나 강처럼 흐릅니다. "내가 소외당하면 어쩌지? 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바로 이 지점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게 어법이 좀 옛날 시대 느낌이어서 그렇지, 오늘날의 그리스도적 언어로 풀이하면, "너희 내면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뜻"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예수님, "그리스도의 신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니까요.
즉, "집단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듯 보이지만(세속적 만족, 욕구의 충족 등), 정작 내면으로는 "감사가 없는 상태", 즉 언제나 결핍과 불안이 내면에 흐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의도적으로 소외 안으로 들어가고 수용할 때", 그때에 바로 주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새로운 내면의 상태가 어느 순간 나타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때, 감사는 어떤 특정한 윤리적, 도덕적 주문이나 명령이 아닙니다. "언제나 내 안에서 신성이 함께하시므로", 굳이 더 이상 집단에 속하려 드는 결핍이나 불인의 어두움의 의도에 속거나 지배당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삶의 모든 순간마다(특히 집단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순간에도)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때의 감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주께서 드러나실 때의 내면의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범사에 감사가 일어날 때, 그것이 곧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며 길을 비추고 밝히신다는 증거"라는 거지요. 감사가 곧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세번째 말씀을 "통제" 카드와 연결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자아(ego)의 의도, 즉 모든 것을 인식/분별하고 통제/억압하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구조와 작동을 뜻합니다. 왜 통제할까요? 의식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는 "통제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공포"가 강처럼 흐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마음과 자아이며, 이것은 나의 본래 모습이 아닌 망상적 자아이고 환상입니다.
즉, 마음은 자기 자신과 타인과 세상 전체를 획일화된 방식(인식/분별)으로 통제하려고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가 따로 계십니다. 내 마음으로는 분명히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은데, 살아남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 기다려라"고만 말씀하십니다(생명의 흐름을 통해서 나의 영혼이 말씀을 느끼는 것입니다).
즉, "자아와 마음"의 작동과, "내 안의 그리스도의 말씀의 작동"은 명백히 다른 방향을 향하며, 거의 모든 순간마다 충돌합니다. 그러나 앞선 두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듯이, 마음이 통제하고 싶은 대로 하면 당장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위험이나 변수 등에 의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는 길입니다. 대개의 경우에 모두가 다 그러합니다.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음의 조급함에 굴복하여 내일이라도 일용직 노가다에 나가는 것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더 큰 병을 얻어서 치료비가 없어 빚을 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건 예시일 뿐이지만요.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자아와 마음(나의 생각, 내 마음)으로는 내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뜻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신의 뜻을 이해하기 때문에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은 때때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집단으로부터) 소외당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그것을 당장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다음과 같이 내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
"내가 내 삶을 통제하는 게 안전한가, 신께서 내 삶을 인도하시는 게 안전한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후자가 더 안전하고 확실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세 말씀을 연결한다면, "생명과 연결되어 하나가 되면, 세속적 풍요와 인정으로부터는 잠시 멀어지더라도 더 큰 영혼의 평화를 얻을 것이고, 이것이 나의 두려움, 공포, 불안에서 비롯한 집착과 통제에서 벗어나 나를 안전하고 확실한 길로 이끄실 것이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자아와 마음이 통제하는 대로 하면, 언뜻 보기에는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고 벼락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죽음과 사망의 길로 빠뜨리는 사탄의 전형적인 전략이죠. "빚 내서 여기에 투자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며 데이터와 자료와 근거를 제시해서 그를 빠뜨리게 만들고, 그 다음에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서 무너뜨린 이후, 갖은 변명을 대거나 아니면 잠적해버립니다. 이게 "두려움, 공포, 불안"이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내 통제대로 할 때, 나는 이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지배, 장악, 기만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살아날 길은 없는가? 꼼짝없이 죽게 생겼는가? 아니지요. 내 안의 생명을 느끼고, 체험하고, 몰입하며, 그 생명의 흐름을 통해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때, 주께서 내 안에 거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결핍되고 불안했던 내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비웃음당하고 조롱당하며 외톨이가 되더라도, 놀랍게도 감사와 평화가 있게 된다"는 놀라운 증거를 발견합니다.
주의 말씀은 때로 내 눈에 불안해 보이기만 합니다. 도대체 어쩌시려고 이러시는지를 나날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바로 이것이 "무의식의 함정과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자유와 승리를 쟁취할 유일한 안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세 말씀을 연결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이십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거하는 곳에 자유가 있느니라." (고후3:17) 놀랍게도 이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말씀이 존재하지요.
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 "내 안의 생명의 흐름으로 나를 이끄시는 주를 전적으로 믿는 것", 그러니까 믿음 하나만 하면 됩니다. 너무 쉽지 않습니까? 믿고 맡겨드리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물론 과정에서는 잠시 내 눈에 불안해 보이더라도, 이는 내가 주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종국에는 마침내 참된 자유와 영원한 승리로 이끄시게 됩니다.
어떤가요? 그냥 무작정 말씀을 읽을 때보다, 그 안에 숨겨진 참된 진리와 생명을 더욱 선명히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는 해설하는 저의 부족함 탓이니,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
연결하고 풀이하면서 저 또한 깨닫는 바가 큽니다. 올해 내내, 주님께서는 저를 "풍요로운 생명은 넘치도록 허락하시면서도", 당장 눈앞의 외적인 삶, 현실적인 상황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아주 일관된 방향으로, 끊임없이 무너뜨리고, 좌절시키고, 갑자기 개입하셔서 중단하시고 무너뜨리시는 수순을 거쳐왔습니다. 당연히 그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는 그때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올해가 제 인생 전체에서 가장 길었지요.
그러나 제가 가장 잘한 것 하나는, 그때마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막막해하면서도, 결국 끝에서는 "내 뜻대로 마시고 주의 뜻대로 하소서", 그분에 대한 충성과 열망과 믿음을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인연이 끊기더라도, 내 안의 생명의 흐름 하나만을 믿고 이를 통해서 나를 인도하시는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따랐다는 것입니다.
내 눈에는 당장 바깥에 나가서 활동을 시작해야 하고, 일자리도 구해야 하는데, 그분께서는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하지 않으시고, 정작 내가 발버둥쳐서 나갔을 적에는 매번 중단시키고 다시 골방으로 돌아오게 하셔서는, 영적 체험과 이를 증언하는 글쓰기는 풍족하고 넘치도록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사람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길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나를 이 오랜 어두움의 반복과 지배로부터 영원히 해방시켜 주실 진리입니다("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4:6, 즉 내 안의 생명의 흐름을 통하여 나를 이끄시는 주께서 곧 진리이며 나를 자유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제 글을 읽는 분들은 저와 같이 교회 바깥이거나, 혹은 제도권의 틀 안에 소속되지 못하면서도 신앙과 영성은 놓지 못하는 분들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그러하듯이,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때로 미쳤다고 하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며, 혹자는 안타까워하면서 걱정해주는 척 기만하고 단죄하려고 듭니다. 아마 여러분 각자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서 여기까지 걸어오셨을 것입니다.
오늘, 프롤로그를 통해서 저희에게 주시는 말씀은 아주 선명합니다 : "너희 안의 생명을 믿고 생명과 하나되라, 내가 너희를 세속의 어두움에서부터 영원한 자유로 이끌 것이니, 너희는 너희 자신의 마음에 지배당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라."
믿지 않는 자, 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또한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십시오. 그들은 그들만의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다만 우리들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이미 알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이제 믿는 것 하나만을 하면 됩니다.
열쁨 : 열망과 기쁨의 언어, 를 시작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매주 월요일, 이와 같은 말씀과 이야기를 들고서 찾아오겠습니다. 부족함이 많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