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쁨 #3. 하늘의 기쁨에 참여하다

by 생명의 언어


이번주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불 5번 : 전체성] "수고하고 무겁고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메이저 0번 : 바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2)

[물 2번 : 우정] "여호와는 내게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1)


이것을 저는 하나의 메시지로 증언합니다 : "하늘의 기쁨에 참여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나는 증거하는 자입니다. 증거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내게 알려주신 것만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자입니다. 이에 내가 가장 먼저 고백할 진실은 : 어리석은 자들은 부지런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지혜를 성취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의 능력이 모자라더라도 성령께서 그들로 인하여 기뻐하사 그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래 지혜는 하나님의 것이었으니, 하나님의 영께서 함께하시는 자들은 지혜를 반드시 성취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심령이 보기에, 지혜롭고 똑똑하고 슬기로운 자들은 그 자신의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모른 채로 순종하고 기뻐하는 하늘의 기쁨에 참여할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들 자신의 교만함을 기어코 놓지 못할 것입니다.


놓을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이 평생에 걸쳐서 쌓아왔던 지식과 지혜 전체를 완전히 다 버리는 것입니다. 강물에 흘려보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작별 인사를 하되 그 이후에 평생 동안 다시 그 지식과 지혜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가 어찌 그리 하겠습니까? 그에게 지혜란 곧 자기 목숨보다 귀한 것임을.


묻겠습니다. 이 지상에서, 세속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계급이 높아지고 지위가 상승하고 권력과 명예와 부가 생기거든, 죽어서 천국에 갈 보장이 정해진답니까? 한때 교회가 면죄부를 팔던 짓을 오늘날 비웃지 않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가난한 심령이 보기에는, 그들은 면죄부 사는 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세속에서의 부와 명예와 권력이 죽어서의 천국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과거 면죄부를 사던 자들을 비웃고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 자신은 진실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길을 찾지를 않습니까?


그것이 특정한 종교나 전통이나 교리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각자 나름의 길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도대체 그 길 자체를 찾지도 구하지도 열망하지도 않느냐 하는 말입니다. 내게는 죽음과 사망이 절실합니다. 나는 여전히, 지금 이 순간 즉시 죽는다면, 그 즉시 기뻐하며 편안히 눈을 감을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내년이 되면 내 나이가 서른하나입니다. 구약 시대의 그 위대했던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은 다 내 나이에 위대한 뜻을 이루었고, 심지어 내가 경외 마지않은 그분께서는 이미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입니다. 그러나 나는 타인을 구원하기는커녕 시도했다가도 실패하고서는 나 하나의 죽음조차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 나이에도 말입니다. 내가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까닭은, 이 세상에 나만도 못한 자들이 천지에 널렸음에도 그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심지어 나와 같은 이들을 미쳤다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웃고 모욕하고 조롱하더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들은 죽지 않더이까? 그들은 죽어서 하늘 앞에, 신 앞에 서지 않더이까?


어찌하여 간절하고 절실하게 진리를 찾아 헤매지 않습니까? 정답을 얻어내리라는 보장 따위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내가 뭐라고, 수십 년을 고행하고 수행했던 위대하고 고귀한 수행자들조차도 무던히 얻어내지 못한 채로 좌절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그토록 고귀한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교만한 소릴 하겠습니까. 한때는 그리했습니다. 그 시절의 나의 교만과 오만을 보고 있노라면 내 눈꼴이 시려서 차마 지켜보지를 못할 노릇입니다. 지금의 나는 겨우,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 줄 아는" 것 하나만을 성취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정답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대들은 삼국지를 읽어보지도 않았습니까? 신묘한 계책과 계략으로 하늘마저 능히 속일 수 있는 저 제갈량마저도, 기어코 천명을 이기지 못한 채로 그의 주군의 곁으로 쓸쓸히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죽어서 제갈량의 "선제여, 내가 실패했습니다! 나를 벌하소서! 내가 실패했습니다......"하고 눈물을 쏟는 제갈량을 지켜봐야 했을 유비의 참담한 심정이 어떠했을 것이며, 죽어서조차도 선황께 면목이 없었을 제갈량의 심정이 도무지 어떠했을 것인지, 나도 그대들도 오늘날 이 세상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게 천명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름이야 어쨌든 말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천명을 두려워하는 자가, 하나님의 의지를 진실로 두려워하는 자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첫번째 고백은 늘 한결같습니다 : "신을 두려워하라, 천명을 두려워하라, 하늘을 경외하라."


은혜는 그 다음의 일입니다. 경천하지 않는 자에게, 은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이 말을 결코 가벼이 듣지 마시기를 간절히 권유합니다.




첫번째 말씀에 관한 한, 저는 관상적인 이해를 시도할 것을 감히 권유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입장이 아니라, "해주는"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내 눈 앞에 삶의 어두움과 슬픔과 고난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한 영혼이 서 있습니다. 내게는 아무런 능력도 힘도 지혜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께서는 내게 명령하십니다 : "너는 가서 저 아이를 자유롭게 하여라." 주의 명령은 내게 절대적입니다. 순종치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 손에 아무것도 없더란 말입니다...... 그 모순 가운데에서 크게 혼란해하고 슬퍼하던 끝에, 마침내 나는 깨닫게 됩니다. 유일한 길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 내가 저 영혼의 어두움을 대신 짊어지면 되는구나. 길이 없었다고 변명하고 회피했던 것은, 저 영혼의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짊어지기 싫었던 것에 불과했구나."


나는 지금 이 말을 함부로 가벼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오직 이것 하나뿐입니다. 중보와 대속은 오직 그리스도께로 말미암은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주권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며, 그 주권은 성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을 온전히 계승하신 분의 능력으로 인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길에 내가 "동참"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나 자신을 감동케 하여야만, 하늘에 계신 그분을 감동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말로만 해서는 기어코 외면하고 또 회피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기도의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 "주님, 할 수만 있거든 제가 대신 그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그가 맞아야 할 채찍을 대신 맞겠습니다. 그를 대신하여 내가 대신 징계를 당하겠나이다." 내가 이 말을 할 적에 매번 얼마나 처참한지를 세상은 모릅니다. 나는 십자가를 질 때마다 처참하고 우스꽝스럽고 보잘것없는 행태를 보일 것입니다. 무서워 발광을 할 것입니다. 두려워 발악을 할 것입니다. 그게 내 실체이고, 내 본질입니다. 지금껏 거창하게 영적으로 성장해왔답시고는 설쳐대던 놈의 실체입니다. 나의 실체를 그대들 앞에 보입니다. 그 무게를, 내가 한 번도 지지 못했음에도 감히 그분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겨우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부끄러움이 있어야만, 나는 진심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심이어야만, 그분께로 기도가 올라가는 법입니다.


"수고하고 무겁고 짐 진 자들"을 볼 적에, 우리들은 그들의 어두움을, 그들의 죄를, 그들의 업을, 그들의 까르마를, 그들의 징계를, 그들의 형벌을, 향하여 이르되 "너희는 이제 더 이상 그를 향하지 말고 나에게로 오라"고 선언할 수가 있겠습니까? 두려워서 도망가지 않고서. 그 대가로, 나는 지지 않아도 될 시련을 겪을 것이고, 받지 않아도 될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오해받을 것이고, 외면받을 것이고, 가장 슬프고 아플 적에 철저히 고립될 것이고, 혼자가 될 것이며,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한숨조차도 신이 외면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현대인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인 슬픔과 공허를, 그를 대신하여 짊어질 각오가 되었습니까. 이에 내가 그대들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하니, "도중에 십자가를 지다가 실패한 데에는 변명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채찍 맞으면서 십자가를 짊어지다가 중간에 죽었으니 나는 의롭다? 천만에, 골고다 언덕의 정상까지 오르지 못했으므로 나는 지옥에 갑니다. 십자가를 지려면 끝까지 질 각오와 능력과 힘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웬만큼 알면서도, 기어코 그리스도교의 어리석고 낡아빠진 언어를 움켜쥐는 까닭입니다.


첫번째 말씀을 읽을 적에, 그분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의 내용이 그저 5성급 호텔에 누워서는 물질적인 욕구와 쾌락을 모두 다 누리고서는 그리 편안하게 가는 쉼인 줄 아는 이들이 많습니다. 천만에요. 저 말씀의 본질은, "너희는 아무리 고난받아도 아버지의 뜻을 이룰 능력이 없으므로 그 고난이 다 무용한 것이지만, 내가 너희를 축복하매, 너희가 받는 작은 고난조차도 하늘을 움직이게 하고 하늘에서 결실을 맺어지게 하도록 내가 이루어주겠다"는 뜻입니다.


본래 나 따위는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그것이 진실로 결실을 맺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많이 죽여야만 빨리 승리하거니와, 내가 아무리 대단한 각오를 하고서 전쟁터에 나가서 1명도 죽이지 못한 채로 총 맞아 죽었다 한들, 그리고 나의 죽음에 내 부모와 자식과 형제들이 눈물 흘리고 장례를 치렸다 한들, 그 죽음은 허망합니다.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지도 못했고, 수많은 죽음들을 "내가 명령했다"며 책임지지도 못한, 그저 전형적인 자기 교만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내 죽음이 그러합니다. 주님이 아니라면, 나의 죽음은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하늘에서 부질없고 허망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내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쉼을 주셨습니다 : "내 사랑하는 아이야, 내가 너를 사랑하며, 내가 너의 고난으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그분의 사랑과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분 자신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지신 십자가에 비한다면 5성급 호텔에서 편안히 숙식하면서 오징어게임의 VIP들마냥 그분의 십자가형을 지켜보고 술 마시고 비웃고 조롱한 나의 이 가벼운 시험마저도...... 하늘을 움직일 힘이 된다는 말입니다. 내게 이것이 얼마나 큰 자유였는지를 아십니까? 내게 이것이 얼마나 큰 희망이었는지를 아십니까......


그러므로, "가볍다"고 절대 착각하지 마십시오. 내 짐, 내 멍에, 내 십자가, 내 시험, 지독하게 아프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무겁고 잔인합니다. 고통은 큽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내 형제여, 그대가 아파하는 만큼 하늘에서 그대의 영은 성장할 것이요, 그대가 눈물 흘리는 만큼 하늘에서 그대의 영혼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실효성이 있다", 이 하나로 얼마나 큰 구원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여 상처받으십시오. 오늘 하루가 만약 그대에게 지독하게 고통스럽고 공포스럽고 불안한 하루로 예정되어 있노라면, 그 어두움이 깊은 만큼 영광의 주께서 그대의 이름을 아버지께 친히 아뢰어주실 것입니다. 그분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 그대 삶 속에서 그대가 전력을 다하여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십시오. 상처받으십시오. 고통받으십시오. 비웃음당하고 조롱당하고 모욕당하십시오. 그분이 우리와 함께하실 적에, 그 모든 것들이 전부 고스란히 비례하여 하늘의 영화(榮華)가 될 것입니다.




세속에서의 슬픔은 "내가 완전하지 못한데 대한 슬픔"입니다. 본래 나는 완전한 존재인데, 지금 내 현상이 완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슬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속에서의 슬픔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교만입니다. 정도가 다를 뿐, 결국 교만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뻐하십시오, 자신이 교만한 줄을 알며, 자기의 죄를 진실로 뉘우치면서 차마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회개의 눈물을 깊이 흘린 자여, 이미 그대의 가슴 안에는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대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대를 대신하여 삶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대는 오늘 하루의 고난을 담대히 극복할 능력이 없으나, 그대 안에 계신 그분은 다릅니다. 그분은 죽음과 사망마저도 호령하여 다스리신 분입니다.


나의 교만함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뼈져리게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기도할 때마다 울고 또 울었던 자는, 그 눈물과 그 시간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친밀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분께로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이이며, 내가 너의 모든 삶의 순간들로 인하여 기뻐하노라"는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그분의 음성을 직접 듣지 못했거든, 감히 내가 그분을 대신하여 그대에게 말해주겠습니다. 그대는 이미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그분께서 그대의 모든 삶의 순간들을 지켜보고 계시며, 또한 그 모든 순간들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크게 기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대가 가장 힘들고 두렵고 무섭고 떨리는 삶의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의 의로운 두 손이 그대를 붙들고 보호하고 지키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감히 그 어떤 어두움조차도 그분의 권세와 영광을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 진실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열매들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 첫째로, 오직 하나님만을 절실히 사랑하는 그 기쁨 하나로 온 세상을 사랑하고도 남음이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삶의 가장 뼈저린 시련과 고난과 슬픔 한가운데에서조차도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그분의 때가 이를 적에는 하루아침에라도 모든 기적이 능히 가능할 것임을 진실로 믿고는 하나님의 시간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인내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오직 일상 속의 가난하고 낮고 선한 자들의 곁에 머무르심을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오직 선을 사랑하고 선을 열망하며 선을 은밀히 실천하기를 진실로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오직 선(善)에 있음을 깨닫고 오직 선을 행할 적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 앞에 무릎 꿇듯이 하게 되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품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로, 더 이상 내 의지를 내세우지 않게 될 것이며, 아버지의 의지만이 곧 나의 의지인 바, 그분의 의지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아무리 내게 이해가 되지 않아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기어코 그분의 의지에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으로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과 힘과 지식과 지혜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바보 천치"가 될 때에는 능히 가능합니다. 비워진 그릇에만 성령께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바보인 채로 능숙한 자들"인 법입니다. 바로 그 바보들의 입과 손과 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하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묻겠습니다. 그대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그리스도께서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라 이르신 바로 그 말씀을 진실로 가슴 안에 언제나 품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내가 그분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좌절되고 꺾여지고 몰락하고 무너지는 와중에서라도, 기어코 그분에 대한 사랑 하나만큼은, 울부짖고 눈물 흘리더라도 놓지를 못하는 그 마음이 있습니까......


내가 진실로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만큼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요. 아니, 내 사랑보다도 더 크게 나를 사랑하시노라, 하고요. 그분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내가 그분을 아버지로 고백한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버지로서 어떠한 조건과 상황에서든 간에 나를 지키고 보호하시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육신이 죽어서 썩어 없어지고 영혼이 지옥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하더라도, 내 아버지께서 나를 결코 외면치 않으실 것이며, 나를 그때에도 영원히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진실로 아버지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십자가, 그 하나만을 보더라도 언제나 가슴이 뜨거워져야만 합니다. 진실로 그 하나만을 내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나 사이에만 알 수 있는 은밀한 "사랑"이, "우정"이, "하나됨"이, "연합"이...... 생겨나야만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우리들만이 아는 가장 은밀하고도 영광스러운 그 역사의 순간들이 내 안에서 쌓여가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아버지의 영광은 곧 내 의지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성으로 머리로 교리를 이해하고 신학을 공부한다 한들 다 무용한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신의 성품을 닮도록, 내 영혼을 순종케 하시고, 가난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고, 선하게 하시고, 온전하게 하시고,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서 만드실 것입니다. 내 영혼이 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온 천사들이 나의 영혼을 보매 너무도 아름다워 찬미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와 나의 "친밀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신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신은 그대가 아는 모든 것을 완전히 깨부술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대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삶이 무너질 것이고, 그대의 일상이 무너질 것이며, 그대의 명예가, 업적이, 지위가, 권력이 모두 다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대가 그분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무너짐의 한가운데에서조차도 그분은 그대 안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한때 그대가 잘나갈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옆에 붙어서는 하나라도 얻어가려고 했던 자들이, 그대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손을 벌리고 가난해질 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대를 조롱하고 비웃고 심판하고 단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대는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다르다"는 것을요. 그때에, 그대는 가장 외로운 새벽을 지나는 과정에서, 가장 깊은 은혜의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육신이 죽어 없어져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잊어버려도, 그분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하여도...... 그분은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는 나중에 하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랑 하나로 말미암아 두려움과 사랑은 하나가 됩니다. 아버지와 내가 설명할 수 없이 하나가 됩니다.


그때에, 그는 지상에서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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