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찾아 헤매었던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로부터 "생각이 깊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그 나이 또래답지 않게, 마냥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고 시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질문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탐구하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을 본 어른들이 건넨 말들이었다. '어른스러움.' 그때는 그것이 그저 좋은 것인 줄 알았다. 마치 훈장이나 메달을 목에 거는 것처럼, 어른들로부터, 어른들이 만든 그 거대한 상아탑에서부터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글쓰기를 사랑했다. 흔히 말하는 '중2병', '새벽감성'으로 대표되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 그 시기에는 밤을 새워 몰두할 만한 일이 그것뿐이었고 달리 말하자면 그것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고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시간들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썼을까? 시도 썼고, 소설도 썼고, 수필이나 단문들도 많이 끄적거렸다. 그렇게 모은 것들을 자랑스럽게 가슴 속에 소중히 보관했다.
요즈음에는 중2병이라는 거, 새벽감성에 취해서 SNS에 글을 남기는 것을 마치 있어서는 안 되는 흑역사로 치부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지만,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영혼(Soul)의 깊은 중심으로부터의 울림, 그 맑고 아름다운 파장과 이끌림, 근원적인 어떤 그리움, 빛, 온기...... 그러한 것들을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켜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 있는가? 아주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옛 표현처럼, 가슴 속에 사랑 하나도 없는 채 그저 기계처럼 사고하고 생각하기만 하는 것이 진정한 "살아 있음"인가?
하얀 바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둥글게 파장이 일어나며, 마치 수채화 물감이 번지듯이, 울림이 퍼져나간다. 나는 그것들을 손끝으로 더듬어가며 본능에 맡긴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감수성', '예술성'? 말은 그럴듯하다. 그렇게 무언가가 조금씩 완성되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그것들에 매달렸다. 왜냐하면 그 시기의 나에게 있어 글쓰기를 제외한, 실제 현실에서의 삶은 너무나 처참했고, 쓸쓸했고, 외로웠으며,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학적 감수성은 군 제대를 하면서 - 정확히는 수 개월 간의 군생활을 거치면서 -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제 내 가슴 속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감수성의 글들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현듯 흩어져버린 것이었다.
십대 시절의 온갖 갈등과 방황 속에서 어찌저찌 전문대학까지는 졸업하는데 성공했고 원한다면 미숙하게나마 사회초년생으로 뛰어들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그 끝에서 직업을 갖는 대신 철학과로의 편입을 선택했다. '그럴듯한 4년제 대학 졸업증 하나는 있어야지'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 건 별로 중요치 않았고, 다만 어릴 때부터 동경해왔던 높은 이상, 그 빛나는 상아탑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볼 수 있다는 선망과 기대에서였다. 철학이란 잃어버린 문학적 감수성을 대체할, 진리의 '남성적' 경로로 걸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철학적인 주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도 좋아했으며, 이에 대한 어렵지만 멋있어 보이는 철학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고, 그것들을 한 번쯤 "이해"해보고 싶다는 갈망, 다시 말해 "진리"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갈증 내지는 열망 비슷한 것이 늘 있어왔기에, 철학과에 한 번 들어가기만 한다면 수업은 너무나 재미있을 것이고 그 길을 먼저 걸어간 교수님들의 이야기는 보석과도 같을 것이며, 함께 그 사유의 길을 여행하는 동기들과의 즐거운 대화는 덤이었다. 꿈과 낭만과 희망에 가득찬 그 시기를 지나, 이듬해 봄이 찾아왔고 개학 첫날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나의 편입 시기와 정확하게 맞물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비대면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수는 있겠다 싶었다. 그 영향이 아마도 없진 않을 것이다.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텅 빈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현실과 가상 사이의 어중간한 빈틈에서 길을 잃어버린 채 주저앉아 있는 경험은 십대 이후로 다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개학 첫학기, 첫날, 첫 수업의 첫 교수님의 첫 음성을 듣는 순간, 내 가슴 속에서는 너무도 강렬한 파장이 울려퍼졌다. "아,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여기에는 내가 찾는 것이 없다." 철학에 대한 동경과 선망에 가득찼고 공부에 대한 열의도 넘쳤기에, 그 내면의 목소리는 곧 외면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학기가 계속될수록, 나는 빠르게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고 기대는 곧 실망과 상실로 변했다.
나는 처음으로, 이성적 사유를 통한 합리적 추론이 아닌, 가슴 속 깊은 중심으로부터의 무의식적인 '직관' 비슷한 것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이제 꿈은 없었고, 환상은 사라졌으며, 동경의 대상은 상실되어버렸다. 나의 마지막 대학 생활은 그 슬픔에 대한 애도 기간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극렬하게 변화시켰을까?
물론,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몽땅 의미 없다는 식의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철학을 (일정 부분) 존경하며, 또한 철학자들이 무언가 의미 있는 작업을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다만, 더 이상 나에게는 그것이 의미가 없었고, 가치가 사라져버렸던 거였다. 개학 첫날 내가 마주했던 철학의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밝고 아름다운 진리를 거푸집 속에 넣어서는 차갑게 굳혀버린, 생명이 없는 싸늘한 박제된 짐승들의 컬렉션 비슷한 무언가였다. 그것은 소름돋는 일이었고, 동시에 너무나 허무하고 공허했다. 수업 중에 넘쳐흐르는 철학의 용어들은 모두 공허했다. 더없이 화려하고 복잡했지만 그 속엔 텅 비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이것들이 도대체 다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꿈에서 깨지를 말 것을.
평범하게 일이나 하며, 멀리서 동경이라도 할 것을.
물론 거기에는 열정적인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많았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학기 내내 방황했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하루 빨리 졸업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휴학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만약 편입이 아니라 입학을 했더라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 충격의 시간이 얼마간 지나가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졸업하려면 어차피 논문을 써야 했고, 조잡한 수준이나마 어쨌든 철학적 아이디어는 떠올려야만 했던 거였다. 그리고 이젠 머리를 굴려서 자아내는 이성적 사유, 합리적 추론, 논리, 이상, 본질, 그러한 것들이 더 이상 내게서 빛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가슴으로 이끌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내게 남은 온기였다. 가슴이 진실이라고 확증하는 것이 아니면 단 한 글자도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내 가슴속을 더듬어 진실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내야 했다.
만약 내가 마주한 '옛' 철학들이 모두 의미 없는 것으로 (가슴이라는 재판관에 의하여) 판정되었다면, 그것의 반대쪽에 있는 무언가가 내가 원하고 찾던 것이 아닐까?
그 순간 나는 가슴 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을 발견했고, 그때 상실은 곧 기쁨으로 변했다. 그토록 갈증하고 갈망했던 시간들 동안 저 바깥에서 갈구해왔던 세월이거늘, 그것이 무색하게도 유일하게 남은 그 빛은, 이미 내 안에 처음부터 존재하던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평범'이라는 말조차 붙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것이었다. 그러자 나에겐 또 다른 열망이 생겼다. 상실을 통하여 얻은 이 조그마한 빛을,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다. 나와 같은 목마름을 가질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나의 글들은 지식이나 철학이 아니다. 이념이나 사상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체험일 뿐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의 본 모습을 고통 속에서 다시 발견한 목격담이다.
만약 당신이 이 초대에 응할 생각이 있다면, 그리하여 안개가 낀 숲 속에서 잃어버린 길을 찾고자 하는 심정이라면, 기꺼이 길을 안내해주려는 노력들에 대하여 나의 진실의 재판관들은 외면치 않으리라.
이제, 그 첫 발을 조심스럽게 떼어본다.